밥·춤

노동의 순간, 흥겨운 춤이 되다

by 행복한독서

우아한 몸짓, 날렵한 손놀림, 사뿐한 발걸음을 보세요!

춤을 추는 듯 보이지만 사실 모두 열심히 일하는 중이지요.

세탁소 아주머니는 사라락 사라라락~ 퀵서비스 아주머니는 휘리릭 휙휙~

저마다 일터를 무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이 멋진 춤사위로 펼쳐집니다.

주변을 둘러보세요. 우리 동네는 매일 춤추고 있어요.



밥·춤

정인하 글·그림 / 38쪽 / 13,000원 / 고래뱃속



동네 세탁소 아주머니가 고리가 달린 막대를 들고 옷을 내립니다. ‘차라락 착착! 차라락 착착!’ 규칙적인 소리로 비질을 하는 환경미화원도 보이고요. 야채 가게 아주머니는 오늘도 꽃무늬 몸빼바지를 입고 채소를 팔고 있네요. 구둣방 사장님도 같은 자리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구두를 손질하는 중입니다. 동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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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춤』은 평범한 사람들이 특별해지는 순간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저는 일하는 모습을 춤으로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오래 반복해서 노련해진 노동의 동작을 책이라는 무대 위에 올리면 어떨까 하고 말이지요. 그러고 보니 세탁소 아주머니가 고개를 들고 팔다리를 쭉 뻗어 세탁물을 내리는 모습이 발레 동작을 닮았고, 야채 가게 아주머니가 대파를 비닐 봉투에 담아주는 동작은 검무처럼 날렵합니다. 밥 배달 아주머니는 밥과 반찬이 담긴 쟁반을 쌓고 또 쌓았는데도 걱정 없다는 표정으로 종종종 걸어가요. 아무도 못 보는 사이에 폴짝 뛰어올라 캉캉춤을 출 것 같습니다. 목수의 동작은 동남아시아 어느 나라의 전통 춤을 닮았고, 목욕탕의 세신사는 쿵푸의 한 장면처럼 위풍당당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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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기획은 처음에는 전시를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5년도 더 전의 일이네요. 그때는 등장하는 인물이 훨씬 많았어요. 전시장 벽면에 여러 동작의 사람들이 따로, 또 같이 추는 군무처럼 펼쳐져 있었기 때문에 보는 이에게 한눈에 다가가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획을 책으로 만들기로 하고 보니,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진행되는 책의 속성에 맞게 흐름이나 리듬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풀리지 않으니 일단 덮어두었고, 다른 일들에 우선순위가 밀리곤 했지요.

그렇게 한참이 지난 어느 날, 약속 장소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느닷없이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후다닥 핸드폰을 꺼내 메모했는데 그것이 최종 원고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신기한 경험이었지요. 그렇게 한참 묻어두었던 작업을 다시 꺼내게 되었습니다.


일단 원고가 풀리니 그림은 노력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공들여 오래 매만지는 그림이라기보다는 순간의 긴장감이나 느낌이 중요한 그림이었기 때문에 자연히 망치는 그림이 많이 나왔어요. 처음에는 비싼 종이를 버렸다며 속상해했는데 하면 할수록 값비싼 종이가 폐품이 되어 쌓여도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변하더라고요. 조금은 종이의 기에 눌리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흑백의 인물 그림은 아크릴 물감을 사용했는데, 여러 단계의 질감 표현이 가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라질 듯 흐린 면은 부드럽게 나아가고 진한 하드블랙의 꾸덕한 질감은 거칠게도 표현이 되거든요. 여러 층의 어울림으로 그림에 리듬감을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맑은 수채 물감으로 가볍게 올리듯이 색을 넣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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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춤』은 여성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힘찬 몸짓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조금 더 주제를 좁혀 노동의 순간을 춤으로 그리자고 결심하고 나서 직업군을 고민하는데, 제가 특정 직업군을 남자로 떠올리고 있더라고요. 왜일까요? 여성도 그 일을 하는데 말이지요.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고정관념이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몸을 움직이며 일하는 여성’을 그리고 싶었지요. 미디어에서 자주 보여주는 날씬한 젊은 여성이나 엄마의 모습만이 아닌, 삶의 현장에서 두 다리로 지탱하며 살아가는 다양한 성격과 모습을 가진 여성들을 말입니다.


집에 돌아오는 늦은 시간, 아직도 세탁소 불이 밝습니다. 세탁소 아주머니는 뭘 하나 괜히 들여다보게 됩니다. 귀가 후에 고단해서 어깨나 무릎에 파스를 붙이며 지친 한숨을 ‘후우~’ 내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삶을 헤쳐 가는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걱정과 불안으로 끙끙대는 대신 ‘와하하!’ 하고 웃어넘기는 흥과 대범함이 있지요. 배우고 싶은 모습 중 하나입니다.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떤 느낌으로 받아들일지 궁금합니다. 그저 미소 짓기만 해도 족하겠지요. 그저 책을 즐기면 좋겠습니다. 슬쩍 춤을 춰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춤을 추면 기운이 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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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하 선생님은 풍경과 사람들을 천천히 바라보고 이리저리 생각을 굴려 책을 만듭니다. 담백하고 아름다운 그림과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그림책작가입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 『요리요리 ㄱㄴㄷ』 『밥·춤』이 있습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7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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