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에서 만난 젊은 작가 7 - 김중석
어느 날부터 괴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음이 편안해지자 붓이 자유롭게 움직였다. 무엇을 묘사할 필요가 없어졌다. 상상에 색을 더해서 그려나갔다. 더 자유롭게, 내 멋대로 그렸다. 그림은 원래 그러는 거니까.
얼마 전 ‘갤러리 우물’에서 작가의 개인전이 열렸다. 걸린 그림들은 말 그대로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아주 작은 한옥 공간의 한쪽에 마련된 갤러리에는 쉽게 상상하기 힘든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괴물들과 딱히 특정하기 어려운, 형체를 알 수 없는 그림들이 수십여 점 걸려 있었다. 그림작가가 그림책 원화전이 아닌 다른 그림 전시를 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다.
이 전시에 오기까지 그의 지나온 길을 따라가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뜻밖에도 현재의 작가 생활을 하게 된 데에는 마치 낯선 고장을 두리번거리며 여행하듯 여러 가지 일을 거쳐 온 미로가 있었다. 이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동안 어떤 일을 했어도 공허감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그의 말 때문이었다.
고향에서 멀지 않은 대도시에서 학교를 마친 뒤 대학에 시간강사로 나가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역동성 있는 곳은 간판 제작 업체에서 일할 때였다. 디자인 하고 현장에서 사인물이 설치되는 과정까지를 한동안 직접 경험하고, 같은 회사에서 아파트 외벽 도장과 백화점 내외부 사인물까지 수년간 일했었다.
이런 일은 작업의 전 과정을 몸으로 겪는 일이어서 지금도 현장에서 그림책 전시를 직접 펼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양한 경험을 했던 쓸모 있는 시간이었다. 또 비슷한 시기에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디자이너의 기본 원리를 바탕으로 사용자가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시각화하는 작업을 하는 데 그의 역할은 프로그램 개발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었다. 인터넷 세상이 활발하게 열리기 전후의 일이었다. 이 역시 지금 와서 생각하면 아주 도움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일들의 현장은 힘든 노동력만큼 충분한 대가가 주어지지 않았다. 지역사회에 살면서 마치 주경야독처럼 일하는 한편 작가로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었지만 이미 그 무렵엔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직업인으로 생활인으로 살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인가는 계속 숙제처럼 따라다녔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에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얽히게 되는 사람들과의 연고 관계가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거북했다. 고교 때 학생회장을 하기도 했던 무던한 성격의 그였지만 태생적으로 그런 점에는 잘 맞지 않았다.
그 돌파구는 어쩌면 우연처럼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부산에서 다니던 회사가 서울 사무소를 운영함에 따라 거주지를 서울로 옮겨오게 되었다. 때마침 어느 신문사 문화센터가 진행하는 강좌를 찾게 된 것도 그에게 기회였다. 낮에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 강의를 들으러 다니는 진짜 주경야독 생활을 또 했다. 여기서 강의에 나온 선생님께 그가 그린 그림을 보여 드렸는데 뜻밖에도 그림책 제안을 하셨다. 미지의 세계로 안내를 한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길이지만 가기로 했다. 처음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서서히 어린이책과 동화 그림을 그렸다. 점점 전집류 그림책 작업도 이어갔다. 동화책의 삽화 요청도 늘어나기 시작했고 일이 많아지자 회사를 그만두고 그림 그리는 일에 전념했다.
이제 시작이었다. 2003년 제5회 보림 창작그림책 공모전에 우수상으로 『아빠가 보고 싶어』가 수상작이 되면서 어쩌면 이 길을 가는 데 희망을 품어도 될 것 같았다. 이 그림책은 작가의 글·그림 창작으로 첫 작품이지만 작가의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아있다. 그럼에도 이제 그림책으로 공식 데뷔를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그가 작업한 많은 작품 중에서 특히 2004년에 출간된 『나는 백치다』는 지금도 여전히 인기 있는 스테디셀러다. 『나오니까 좋다』에서도 작가의 분위기는 그림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저 ‘나오니까 좋다’라는 말속에는 유유자적하듯 사는 그의 성격과 생활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번에 새로 선보인 『그리니까 좋다』도 이런 성품에서 나오는 연작으로 보인다. 이번 그림 에세이집에서 풍기는 기상천외한 48가지의 물체들은 실체가 없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모두 저마다 독특한 캐릭터를 뽐내는 개체들이다. “나에게 그림 그리기는 놀이이고 쾌락이었다”는 그의 말처럼 어쩌면 놀이처럼 즐겼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놀이는 오랫동안 묵힌 묵은지처럼 그리 간단하게 보이지 않는다. 힘들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그림들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당한 무게감을 느낀다.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그의 마음이 통했는지 순천의 할머니들은 평생 만져볼 기회조차 없었던 붓과 물감을 들었다. 그가 진행한 그림책 만들기 수업 중 한 곳이었던 순천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한글을 배우는 할머니들과 함께 그림을 그린 이야기는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라는 그림책으로 출간되어 국내외에 순회 전시까지 열리고 있다. 이른바 ‘순천 소녀시대’ 열풍이었다.
그이기에 가능했던 일은 이제 그의 걸음처럼 느리게 빛을 발하고 있다. 어떤 때는 작가들의 전시를 해주는 기획자의 모습으로. 또 어느 때는 어른들과 함께하는 그림책 만들기로 나타나는 그이지만, 앞으로는 그림책 속 괴물들이 어떤 모습으로 다르게 변해서 나타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다만 확실한 건 오늘도 내일도 여전히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모습이다. 사실은 그 자체가 이 작가에게는 가장 치열하게 사는 방법일지 모른다.
정병규_행복한그림책연구소 소장, 『우리 그림책 작가를 만나다』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0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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