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에 이야기를 불어넣는 화가

작업실에서 만난 젊은 작가 6 - 장선환

by 행복한독서
장선환 작가-ⓒ김지원.jpg ⓒ김지원


강화도 갯벌, 한 발 내딛는 순간 발아래에서는 수많은 게의 무리가 움직였다. 갯벌에 이렇게 많은 생명이 있다는 것에 그는 깜짝 놀랐다. 세계 5대 갯벌 중 한 곳인 우리의 갯벌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즐기고 놀았으면 싶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그림책이 『갯벌 전쟁』이다.


『갯벌 전쟁』에는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책임 있는 어른들의 행동과 언어들이 게들을 통해 쏟아져 나오고, 더 자세히 보면 보았음직한 낯익은 장면들도 여기저기 숨어있다. 고전으로 꼽힐 만한 영화의 명장면이 오마주로 나타나는 건 장선환 작가만의 특징 중 하나다.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 2」 「글래디에이터」 심지어 계백 장군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황산벌」을 연상하게 하는 장면도 그림책 어딘가에 숨어있다.


코믹한 장면들의 연속인데 이 캐릭터들은 무척 긴장감 있고 엄숙하기 때문에 웃을 수 없다. 등장하는 갯벌 생물들의 이름들은 물론이고 개체 하나하나의 표정들도 살아 움직이는 생명처럼 제각기 다르다. 실제로 아이들의 눈은 깨알처럼 박힌 숨은 그림들을 어김없이 찾아낸다. 갯벌에서 십만이 넘는 게의 대군들이 전쟁을 치른 후 펼쳐진 광경은,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가로 1미터의 큰 그림으로 절정을 이룬다. 장대한 스케일의 구상 작업은 김포공항이 보이는 서울 방화동 작업실에서 펼쳐졌다. 그곳에서의 7년은 하늘과 땅이 그대로 이어진 들판 그 자체였기에 화폭에서도 어렵지 않게 그릴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의 작업을 무척 재미있게 그러나 별다른 수정 없이 출판사에 넘긴다. 그것은 행운이면서 작가의 역량을 모두 믿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장선환-작업실-ⓒ김지원.jpg


집이었던 김포 고촌, 그리고 방화동에 이어 일산에 자리 잡은 그의 작업실은 투명하다. 두 화가가 일하는 곳에서 함께 쓰는 곳을 제외한 3분의 1 만큼이 장선환 작가의 공간이다. 이곳의 앞뒤는 길에서 훤히 내다보인다. 마치 쇼윈도 안에 있는 것처럼 일하는 모습이 전면 유리를 통해 사람들에게 내비쳐진다. 건물의 양옆이 길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이런 풍경이 싫지 않다고 했다. 자신이 무얼 하든 빤히 보이기 때문에 게으름을 피울 수 없다는 압박감이 자신을 긴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일주일에 며칠씩은 화실 겸 작업실로 찾아오는 어른 수강생들에게 그림 그리는 것을 보여준다. 나머지 시간은 새로 작업하는 그림책에 전념한다. 그리는 작업은 화실에서 하지만 사실상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이미 오래전부터 경험한 일들과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얻는 경우가 많다.


첫 그림책이자 자신의 아이에게 주는 탄생의 선물이기도 한 『네 등에 집 지어도 되니?』는 아이가 태어나기 10개월 전부터 시작해 아이와 함께 세상에 나왔다. 딱 그 기간에 작업한 우연의 일치가 더해진 결과물이어서 작가는 더 애착이 간다. 그림책을 아이에게 선물로 안겼을 때 그림만으로 흥미롭게 빠져들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룡을 그리면서도 공룡과 함께 살았던 수많은 생명체도 함께 보여주려는 마음이 화면에 가득하다. 특히 파충류의 절정기였던 중생대 백악기와 쥐라기에 서식했던 다양한 식생을 한 화면에 보여주는 방식이 마치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영상을 보는 느낌을 그림책에서 실현하고 있다.

장선환-스케치-ⓒ김지원.jpg

그렇다고 늘 웅장하고 스케일이 큰 구도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그는 평범한 일상에서 이야기를 찾고 그다음에 그의 개인기가 발휘된다. 그의 어린 시절도 그리 특별하지는 않지만 어른들은 그의 끼를 방해하지 않았다. 처음엔 반대가 있었지만 학교에서 사생대회를 나가면 늘 상을 받아오기 때문에 그의 재능은 일찌감치 인정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술대학 진학을 하게 되었을 때도 집안에서 허락했다. 서울 강북의 맨 끝 북한산 자락의 방학동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덕택에 지금의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훨씬 전부터 농촌과 같은 모습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는 흔하게 볼 수 없는 반딧불이도 어린 시절 익숙하게 보며 자랐다. 그가 가장 많이 보고 자란 것은 기찻길이었다. 철도와 관계있는 일을 하시던 아버지는 그에게 기찻길을 놓을 때 쓰이는 도구들을 그림으로 그려 주시곤 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아버지는 도구를 만지는 기술뿐만 아니라 그림도 잘 그리셨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가 떠오르는 명대사가 그와의 대화에서 나왔다. “아버지 왜 우리는 강남에서 안 살아요?” “거기는 철도가 없으니까.”


그만큼 그의 인생의 중요한 부분은 창동의 철도 기지역이었다. 최근에는 먼저 떠나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만든 그림책이 나오기도 했다. 새 한 마리가 물고기를 잡아서 새끼에게 가져다주는 당연한 이야기를 평범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생존’이란 모두에게 살아가는 과정이지만 그러나 때때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절박함도 있다는 것. 독도에 서식하는 쇠제비갈매기를 캐릭터로 삼아 알에서 갓 태어난 새끼를 위해 먹이 샤냥을 나간 아빠 새의 움직임을 본다. 물고기를 입에 문 채로 가마우지 떼에 공격을 받는 장면들은 실제로 보고 있는 것처럼 역동성 있게 묘사된다. 둥지에서는 아빠 새가 오기를 기다리는 모습 또한 절박하고 애처롭다. 바다와 하늘이 한 가지 색으로 어우러진 자연 풍경만으로도 그림 보는 맛을 즐길 수 있지만 독자의 감상 중에는 내면의 울림에 눈가를 적셨다는 글들도 보인다.


작가는 그때의 아버지를 생각해낸다. 월급날이면 어김없이 가장 먹고 싶은 것을 사 들고 오시는 모습을. 지금까지의 주인공들은 동물들과 로봇이었는데 다음에 준비할 그림책은 기찻길, 즉 선로와 아버지가 등장할지 모른다고 얘기한다.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보아온 기찻길. 길을 길게 잇는 일을 아버지께 바치고 싶은 작가에게 우리는 애정과 기대를 또 걸어본다.


정병규_어린이책예술센터 대표, 『우리 그림책 작가를 만나다』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0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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