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그림책의특징

그림책 깊이 읽기

by 행복한독서

두 손으로 펼쳐볼 수 있는 크기, 길어야 열여섯 장면 내외의 그림책은 짧고 간단해 다 읽는 데 5분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짧은 책은 어린이들에게 대하소설보다도 더 크고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맥스를 따라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 다녀온 아이가 느낀 즐거움이 <아바타>의 놀라움에 뒤지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수많은 그림책들이 모두 독자의 사랑을 받지는 않는다. 날마다 엄청난 양의 그림책이 쏟아지지만 그중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독자들을 매혹하는 그림책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아이에게 그림책을 골라주는 부모부터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들까지, 그림책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다 궁금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뚜렷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는, 영원한 궁금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답은 바로 옆에 있다. 오랫동안 아이들에게 사랑받아온, 아이들이 진심으로 빠져들어 갈 수 있는 이른바 명작 그림책들이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명작 그림책을 통해 아이들을 매혹하는 그림책의 특징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특징, 주인공과 설정

그림책은 어린이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고려해 내용이 열여섯 장면 내외로 짧다. 따라서 그림책 이야기는 복잡하지 않고 간결한 흐름을 가지게 된다. 이야기가 간결할수록 플롯이나 줄거리보다는 주인공이나 설정의 매력이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요소가 된다. 잘 짜인 이야기가 필요한 어른용 책과 달리, 그림책은 복잡한 줄거리보다는 단순하고 선명하게 다가가는 것이 핵심이다.


첫 장 첫 줄을 읽는 순간부터 독자를 매혹시키는 한 권의 책을 보자. 『꼬마 돼지』(오드리 우드 글 / 돈 우드 그림 / 보림)의 설정은 간단하다. 내 열 손가락에 각각 꼬마 돼지가 한 마리씩 산다는 것, 그뿐이다. 고작 손가락에 돼지가 산다는 게 대체 뭐라고. 하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아이의 세상은 현실과 판타지가 공존하기에 오히려 하늘을 날고 괴물을 만나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아이의 일상을 공유하듯 눈높이를 딱 맞춘 세밀한 설정이 아이를 진심으로 재미있게 하는 것이다.

만일 이 책에서 손가락에 사는 돼지들과 함께 아이가 모험을 하거나 다른 사건이 있었다면 이야기는 또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오롯이 이 설정에만 집중한다. 내 손가락에 사는 돼지를 한 마리 한 마리씩 소개하는 데 무려 다섯 장면을 할애하고, 별말 없이 더울 때와 추울 때, 목욕할 때와 진흙 놀이할 때의 돼지들을 보여줄 뿐이다. 이는 혼자 앉아서 손장난을 하며 궁싯궁싯 상상 놀이를 하는 대부분 아이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한 것이기에, 독자인 아이들은 진심으로 공감하고 즐거워한다. 엄청난 모험 스토리가 없어도 매력적인 설정을 잘 잡아낸다면 일상적인 내용만으로도 최고의 그림책이 될 수 있다.


두 번째 특징, 전개 방식

그림책의 플롯은 짧은 분량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아주 정교한 구성이 요구된다. 복잡하면 어렵고 늘어지면 지루하며 뻔하게 전개되면 독자는 흥미를 잃기에, 이 흐름은 열여섯 장면 안에서 적절하게 나뉘어 짜여야만 한다. 잘 만들어진 그림책은 서두에서 단숨에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흥미를 놓치지 않게 전개되다가 결말에서는 놀라움과 만족감 그리고 안도감을 준다. 물론 모든 전개가 빼어나지 않아도 서두나 결말 어느 하나라도 독자를 만족시킨다면 그 책은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판타지 속에서 기차 여행을 하는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존 버닝햄 글·그림 / 비룡소)에서 가장 매력적인 건 반복되는 구절의 리듬감이다. 이 리듬은 아이들을 강력하게 매혹시켜 책을 본 아이들 열이면 열 모두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를 따라하게 만든다. 작가는 이를 통해 주인공의 모험 이야기를 편안하게 전개시키는 것이다. ‘새로운 동물이 등장하고’ ‘실랑이를 한 후’ ‘함께 노는’ 3박이 본문 내내 무려 여섯 번이나 반복되지만 독자들은 전혀 지루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쉽고 간단하게 이야기를 납득하게 된다.


3박 구조를 자세히 보자.

주인공은 난데없이 등장한 코끼리에게 내리라고 하지만(1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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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태워달라고 애원하고(2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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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코끼리와 함께 여행을 계속하게 된다(3박).

우리기차에서내려3.jpg ⓒ비룡소(『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한 박자 안에서 만나고 갈등하고 친구가 되는 이야기가 간단하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독자는 이 익숙한 구조를 통해 뒤에 이어질 내용을 예상하며 이야기를 안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코끼리 다음에 물개가 등장하고 주인공이 또 내리라고 하지만 독자는 물개의 하소연이 이어진 후 주인공이 받아줄 것을 예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가 아니었다면 이 이야기가 이토록 쉽게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을까? 이렇게 쉽게 공감될 수 있었을까? 이 책은 반복 구조의 쓰임새가 얼마나 효과적인지 아주 잘 보여준다.


세 번째 특징, 공감

어쩌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캐릭터나 줄거리보다도 ‘공감’일 것이다. 멋진 주인공이 세상에 다시없는 모험을 한들 독자가 그 이야기에 공감을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니, 주인공이 멋지다고 생각되는 것도 처음부터 공감에서 비롯되는 것일지 모른다. 독자가 작품에 몰입할 때는 주인공에게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는 순간이다. 내 마음을 알아준다는 생각이 들 때 정서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티치』(팻 허친스 글·그림 / 시공주니어)는 ‘성장의 의미’라는 주제가 돋보이지만, 그보다 독자들이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주 속 시원한 결말로 얻는 감정의 해소라 할 수 있다. 옛이야기 중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인기 있는 것이 무엇인가. 형제간의 갈등을 다룬 『신데렐라』나 『콩쥐팥쥐』 아닌가. 그러니 『티치』의 결말은 정말 아이들의 속을 뻥 뚫어준다.

이 책은 첫 장면부터 아주 철저하게 티치의 입장을 보여준다. 그리고 누나와 형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을 꼬박꼬박 크기 비교를 하며 콕콕 집어준다. 책의 서술 방식은 아주 객관적이어서 서운함이나 우월감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냉정한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티치에게 감정이입한 독자에게는 억울함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이 방식이 오히려 더 자기를 생생하게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그림책 속 상황에는 다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오로지 물건의 크기만 비교하여 언제나 티치가 서운했다는 것만을 강조한다. 이 얼마나 편파적이며, 늘 피해의식을 가졌던 수많은 티치들이 얼마나 하고 싶었던 말이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티치가 가져온 씨앗이 자라 형보다도 훨씬 커지는 결말이 짠 나오면 독자들은 그야말로 입이 저절로 벌어지게 된다. 이건 속 시원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만족스럽고 또 만족스러운 결말인 것이다.


네 번째 특징, 그림

그림책은 말 그대로 ‘그림’책이므로 내용이 그림에 의해 전개되어야 한다. 그림은 단순히 이야기의 내용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전체를 시각화함으로써 그림책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페이지를 따라 이어지는 그림들이 각각의 위치에서 전체적인 플롯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따라서 그림책의 그림은 한 장면보다는 앞뒤 화면과의 연결이 중요하며 이 흐름을 어떻게 만드는가가 그림책 연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아이가 집에 홀로 갇혀버린 『앨피가 일등이에요』(셜리 휴즈 글·그림 / 보림)는 아이와 엄마를 동시에 보여주는 재미있는 구도를 통해 더욱 유쾌하게 만들었다. 단면도처럼 그려진 그림이 문을 사이에 두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양쪽을 동시에 보여주며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드러낸다. 집 밖의 엄마와 집 안의 앨피가 마주선 상태로 절박하게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보라. 엄마와 앨피가 서로 다른 공간에서 답답해하는 상황은 책의 접히는 부분이 만들어낸 실제 물리적인 거리감 때문에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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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 재미있는 시점을 문이 열릴 때까지 반복하며 점점 고조되는 상황을 실감나게 연출했다. 시점의 재미는 여기서 다가 아니다. 양쪽이 똑같이 고조되어 나가다가 엇박자를 내기 시작하면서 더욱 흥미로워진다. 바깥의 엄마와 동네 사람들의 호들갑은 점점 심해지는 데 반해, 안쪽의 앨피는 울음을 그치고 해결 방법을 찾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바깥의 어른들은 전혀 알 수 없는 이 상황을 오직 독자만 아는 것이니 독자로서는 점점 더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이 모든 재미는 양쪽으로 분할되어 시침을 뚝 떼고 독자가 소동을 관전하게 해준 ‘시점’의 공이 아닐 수 없다.

앨피가일등이예요-2.jpg ⓒ보림(『앨피가 일등이에요』)


지금까지 매력적인 그림책의 특징을 네 가지로 분석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이 네 가지뿐이겠는가. 이렇게 한마디로 요약해서 대답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에 대해 조금이라도 실마리를 얻고자 그림책 속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공통점을 묶어 정리했다. 물론 다른 방향으로 분석한다면 다른 각도에서 답이 나올 수도 있다. 그림책은 그만큼 무궁무진한 세상이니 말이다.


권승희_『좋은 그림책의 기본』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7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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