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의 시간과 열정으로 펴낸 한국 그림책 100년사
우리 그림책 이야기
정병규 지음 / 264쪽 / 15,000원 / 행복한아침독서
코로나 팬데믹은 모든 일상생활을 정지시켰다. 여행은커녕 일상적인 학교생활도 출근 형태도 생활의 맛과 멋인 작은 모임까지도 금해야 했다. 일상은 생계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생산과 유통, 최저 수준의 커뮤니케이션만이 용납되었지만 견뎌야 했다. 비일상을 일상으로 지내는 동안 인간의 지혜는 새 문화도 만들었다. 찻잔을 마주하던 만남은 컴퓨터 화면을 마주한 만남이 되었고 그 상황에서 새것에 대한 창작욕을 불태웠고 제작을 감행했다. 새 형태의 만남으로 전환되면서 우리는 인간이 추구하는 만남은 형태가 아니라 대화 내용임을 알았고 방법과 과정을 떠난 새로운 창출로 본능적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일상을 가다듬었다. 역사는 그렇게 만들어지는가 보다.
팬데믹 속에서도 한국 출판계는 꾸준히 새 그림책을 만들어냈다. 화면 너머의 대화는 이 상황에서 보이는 것을 찾게 했고 그러한 발견이 새로운 주제로 다듬어지며 많은 이야기가 그림책을 채웠다. 일본에 사는 내게 이러한 한국 그림책과의 만남은 단절된 국제 교류의 새로운 활동장을 찾게 했고 일본 출판계에 한국 그림책을 소개하게 되었다. 그 결과 ‘자극적이며 참신한 작품’이란 평가를 들었다. 부러울 만큼 열정적인 활동에 대한 찬사다. 그림책은 담긴 이야기를 읽기 위한 소재가 아니라 생각을 담고 감정을 공유하며 대화를 열기 위한 매체이다. 세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함께 즐기며 그러한 과정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는 커뮤니케이션의 효과도 새삼 실감했다.
『우리 그림책 이야기』는 바로 이런 궁금증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풀어주었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가 발명되고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인 한글이 창제된 한반도. 그런 기술과 소프트웨어가 있어도 어린이를 위한 책이 만들어진 것은 1913년, 최남선이 출판한 『아이들보이』부터다. 어린이의 관심을 끌기 위해 표지에 그림을 담은 정기간행물 제작은 지금으로부터 108년 전이다. 이후의 한국 그림책 역사 100년을 정리한 『우리 그림책 이야기』는 외국에서 관심을 보이는 한국 그림책의 현주소와 정체성을 가늠함과 동시에 늦었지만 우리 자신을 돌이켜 보게 한다.
2005년 필자는 출판계의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 파주출판단지에서 기획된 어린이 그림책 축제 행사의 하나인 그림책 전시 기획에 관여하게 되었다. 임진강 건너를 바라보는 불안과 긴장감도 함께 담고 찾아간 겨울의 예술센터는 한마디로 쌀랑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것은 그림책에 대한 자료도 지식도 경험도 없지만 이제 막 새싹이 트기 시작한 한국 그림책에 대한 뜨거운 정열과 호기심과 성실함으로 가득 찬 관계자들의 모습이었다. 그중 한 분이 바로 어린이 그림책 전문서점을 경영하던 이 책의 저자다. 어린이 그림책이 제작은 되었지만 사회적 인식 부족과 유통 구조의 미흡함으로 많은 어려움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담담히 의무를 수행하듯 책방을 지켰다. 그러나 그것도 모자란다는 듯이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그림책 자료를 찾아 수소문하고 누군가 소장하고 있다는 소문에는 전국 어디라도 발길을 옮기면서 만난 자료를 정리하고 목록을 만들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상세한 데이터를 중심으로 펼친 내용은 누구도 이 책을 읽으면 한국 그림책의 현주소가 어디며, 한국적 그림책 이미지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며 이해하고 납득하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아주 다양한 일이 있지만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수익을 얻기 위한 일과 수익과 거리가 먼 일이다. 특히 수익과 거리가 먼 일은 누군가가 해야 하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는다. 그림책 제작은 수익과 거리가 먼 일이라고 한다. 그럼 그림책 연구는? 연구 중에서도 가장 빛과 거리가 먼 분야, 게다가 주머니까지 털어야 하는 일이라 나서는 이가 없다. 그런데 가끔 나서는 이가 있다. 노력과 투자에 대한 칭찬과 보답을 바라서가 아니라 본인이 좋아서 스스로 만족하고 취하는 정열적인 사람이다.
저자는 그렇게 그림책에 빠져 20여 년간 시간과 열정을 한국 그림책에 투자했다. 게다가 그렇게 모은 자료를 『우리 그림책 이야기』에 담아 모두에게 펼쳐주었다. 그러한 노력과 성실함에 경의를 표하며, 감사의 마음을 ‘서평의 말’로 전하고 싶다. 아울러 이 훌륭한 저작물이 앞으로 많은 그림책 관계자들에게 새로운 창작의 기반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함께 담는다.
신명호_그림책 연구가, 『그림책의 세계』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아침독서> 2021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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