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파하는 힘’ 우리 그림책작가들을 만나다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최혜진 지음 / 해란 사진 / 336쪽 / 18,000원 / 한겨레출판
대부분의 독자에게는 인터뷰 기사 쓰기가 쉬울 거라는 생각이 일반적일 것이다. 질문 몇 개 던지고 나오는 답변 받아 적고 정리하면 되지 싶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인터뷰 글쓰기는 창작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우선 대상 작가의 책을 모두 읽어야 한다. 책 한 권 낸 신인을 인터뷰하는 건 드문 일이고 다수의 작품을 통해 작품 세계가 확고하게 서있는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많이 읽어야 한다. 그림책 몇 권, 많아야 열댓 권 읽는 게 뭐 그리 대수냐는 반문이 들어온다면 섭섭하다. 그림책 안에 얼마나 읽을거리가 많은지, 읽을 때마다 얼마나 새로운 느낌과 생각이 새록새록 솟아나는지는 아는 독자만 안다. 작가의 책만 읽어서는 안 된다. 작가와 그의 책에 대한 분석과 평, 감상을 가능한 많이 찾아 읽어야 한다. 인터뷰는 필자와 작가와의 대화이지만, 더 넓게는 그 자리에 독자도 참여시키는 일이다. 평자와 독자의 생각과 의문도 아울러 논의되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남들이 모두 하는 말, 작가가 노상 듣는 질문을 또 하는 지루한 인터뷰로 만들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이 곡예 같은 단계를 모두 거친 뒤에 가장 중요한 단계가 남는다. 인터뷰어가 작가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어떤 중심 혹은 뼈대를 파악하는 일이다. 만일 여러 작가를 인터뷰한다면 그들의 각기 다른 세계와 개성을 명료하게 분류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이 일에는 작가의 세계관뿐 아니라 인터뷰어의 세계관이 개입된다. 이 작가의 작품들이 어떻게 나의 세계관을 확인해주는가, 확장해주는가, 방향을 틀어주는가, 바로잡아주는가 그래서 나에게 어떤 반성과 감동, 깨우침을 주는가 같은 것을 인터뷰어는 추적하여 밝히고 싶고, 그것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 한다. 자기 세계관이 제대로 서있고, 그것을 더 넓히고 싶다는 겸손한 열망이 있는 인터뷰어만이 좋은 인터뷰 글을 쓸 수 있다.
최혜진은 그런 좋은 인터뷰 글을 쓰는 드문 필자 중 한 사람이다. 『유럽의 그림책 작가에게 묻다』보다 한층 단단하면서도 폭넓게 유연해진 그의 세계가 권윤덕, 소윤경, 이수지, 유설화, 고정순, 이지은, 유준재, 노인경, 권정민, 박연철 열 명의 그림책작가들과 만나 또 어떻게 근사하게 출렁이는지를 『한국의 그림책 작가에게 묻다』에서 보여준다. ‘자리바꿈의 이유, 자립을 위한 흔들림, 과정으로 존재하기, 인정욕구에게 질문하기, 의문문의 쓸모, 바닥에서 선택한 웃음, 놀이가 태도가 될 때, 기다림이라는 의지, 작고 사소한 기쁨의 목록, 자립을 위한 흔들림’ 열 작가의 인터뷰 제목들이다. 제목만 보고도 누구에 대한 이야기인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앞서 적은 작가 이름과 같은 순서가 아니다. 연결시켜 보길 바란다).
저자가 머리글에서 밝히는 그림책과의 인연, 그림책을 어떻게 만났고 그림책을 통해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는 아마도 많은 독자가 공감하는 바일 것이다. 그는 “조용하고 위태롭게 곪아가던 무렵” 만난 그림책 앞에서 “성난 마음이 잠잠해지고 귀가 열”리며 “어둠 속에서 전구 하나가 반짝 켜”지는 느낌을 받았고, “이상하게 기운이 났다.” 그림책은 확실히 이런 치유 기능이 있다. 그래서 그림책에 관한 책에는 흔히 이런 단어들이 따라온다. 심리, 마음, 치유, 상담, 위로, 회복, 공감.
하지만 최혜진은 거기서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자기 자신을 넘어서 작가와 작품들의 속을 헤아려본다. 한국의 그림책 시장과 작가들의 형편에 눈길을 보낸다. 판매며 평가며 지원 모든 면에서 너무나 척박한 환경인데도 한국의 그림책은 나날이 빛난다. 그는 그 ‘기이한 힘’에 주목하고 그것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오래 생각한다. 그러다 ‘돌파하는 힘’이라는 말을 만난다.
그림책작가들이 책 속에 한 세상을 만들고, 거기에 자신의 전 존재를 쏟아붓고, 현실의 어려운 삶에도 그림책을 포기하지 않는 힘, 그것이 이 필자가 붙잡은 중심축이었다. 그렇게 열 명의 작가가 발휘하는 다양한 힘이 조명을 받았다. 그 힘은 우리 삶이 흔들리고 뒤틀릴 때 바로잡아주고 다독여주고 빛을 밝혀주는 기능을 한다. 그것은 작가들의 힘이고, 한국 그림책의 힘이지만, 그에 앞서 최혜진의 힘이다. 그에게 힘이 있기 때문에 한국의 그림책작가들에게도 힘이 있음이 밝혀지는 것이다.
그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혹은 정리하면서 다른 작가의 글을 즐겨 인용한다. 아서 프랭크의 “누군가가 우리의 고통을 인정한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고통을 보낼 수 있다.” 같은 말들이다. 아서 프랭크가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아서 프랭크, 헨리크 입센, 고병권, 아룬다티 로이 등등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하는 이름들이 그의 글에서 쏟아진다. 하지만 다른 경우와 달리 나는 다소곳이 그런 구절들을 받아들인다. 제 지식을 뽐내는 말이 아니라 그 작가와 그 작품, 그 상황을 가장 적절하게 요약하고 설명하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이것도 최혜진의 힘이다. 이렇게 힘 있는 인터뷰어를 갖게 된 우리 그림책은 정말 운이 좋다.
김서정_동화작가, 『판타지 동화를 읽습니다』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아침독서> 2021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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