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고 즐거운 우리 엄마, 사토 와키코를 만나다

by 행복한독서

빨 수 없는 것을 빨아버리는 유쾌한 상상력으로 어린이 독자를 흥분시켰던 사토 와키코의 『도깨비를 빨아 버린 우리 엄마』는 그림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작품이다. 사토 와키코의 작품 대부분은 생활 그림책으로, 보편적이면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힘이 넘치는 엄마와 엉뚱 기발한 호호 할머니 캐릭터는 정형화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게 한다.


『도깨비를 빨아 버린 우리 엄마』는 1991년 한림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뒤이어 『씽씽 달려라! 침대썰매』 『화가 난 수박 씨앗』 『혼자서 집보기』 등으로 사랑을 받아온 그녀가 한국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 처음 방한했다. 여든셋이라는 고령의 나이에 이웃 나라로 나들이를 단행하는 것이 쉬운 결심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한림출판사의 뜨거운 열정이 사토 와키코 작가를 만나고 싶어 하는 독자들의 갈망을 이루게 해주었다. 작가를 만나기 전 독자들은 어떤 모습을 상상했을까? 『도깨비를 빨아 버린 우리 엄마』에 나오는 엄마처럼 태풍도 날려버릴 것 같은 다부진 모습을 떠올렸을까? 아니면 호호 할머니의 엉뚱 발랄한 모습을 떠올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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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따사로운 햇살에 바람까지 살랑살랑 섞인 빨래 말리기 딱 좋은 날, 작가의 원화전이 열린 순천그림책도서관에서 사토 와키코 작가와의 만남이 있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그림책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직접 운영하는 작은그림책미술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그마하고 소녀 같은 외모의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엔 힘이 넘쳤다.


무사시노에서 아버지와 함께 보낸 어린 시절

작가는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무렵 결핵성 폐렴으로 각혈을 하자 그해 여름 요양을 위해 시골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집 주변에는 숲이 있었고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집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가재나 새우, 송사리가 사는 작은 강도 여러 개 있었다. 숲 안쪽에는 샘이 있었는데 와키코는 뽀글뽀글 솟아오르는 샘물 속 들여다보기를 아주 좋아했다.


“뽀글뽀글 올라오는 물속에 요정이나 괴물이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작은 생명의 존재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그들이 장난을 걸어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해가 꼴딱 넘어갈 때까지 밖에서 친구들이랑 뛰어놀았지요. 요양을 위해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를 가게 되었지만 저는 무사시노(武蔵野)의 아름다운 환경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어요. 몸이 약해 열 살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아버지는 자연 속에서 많은 시간을 저와 함께 보냈어요. 지붕에 올라가 밤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하고, 마당에 돗자리를 펴 놓고 밥을 먹기도 하고, 군고구마를 굽기도 하면서 마치 호호 할머니에 나오는 장면처럼 유년기를 보냈지요. 아버지는 식물도감을 들고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설명해주는 것을 좋아했는데 하루는 숲으로 들어가 “와키코, 잠깐만 멈춰봐” 하시더니 양손을 마주쳐서 크게 손뼉을 치시는 거예요. 숲에 있던 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는 장면은 눈부시게 아름다웠지요. 그 장면을 보여주며 즐거워하셨던 아버지의 따뜻했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이렇게 아버지와 함께 보냈던 무사시노의 추억은 그녀의 작품에 좋은 토대가 되어주었다. 무사시노의 자연과 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그녀에게 진한 그리움의 냄새가 묻어났다. 마이니치신문사 사회부 기자였던 아버지는 문학을 좋아하는 분이었다. 아버지는 직접 쓴 동화나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을 읽어주기도 했고 무사시노의 자연을 닮은 ‘떡갈나무 숲의 밤’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 만담이나 라쿠고(樂語)를 좋아했던 부모님 덕에 와키코는 어릴 때부터 재치 있고 세련된 일본어를 듣고 자랐다. 울림이 있는 아름다운 말들은 무사시노의 자연과 하나가 되어 와키코의 몸으로 녹아들었다. 이렇게 보낸 유년 시절의 귀한 경험들이 자연스럽게 그림책의 소재가 되었고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작품을 만들었다.


실제 엄마 모습이 담긴 그림책

이렇게 행복한 추억을 많이 만들어준 아버지는 와키코가 열 살이 되었을 때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엄마 혼자서 두 딸을 키워야 했다.

“당시 나이든 여자가 돈을 번다는 게 그리 쉬운 환경이 아니었어요. 힘들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여성 혼자서라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도깨비를 빨아 버린 우리 엄마』에 나오는 엄마 캐릭터는 실제로 강하게 살아온 본인의 엄마를 모델로 한 것이기도 하고 자신에게 던지는 여성상이기도 했다.

“실제로도 빨래하기를 좋아해요. 대부분의 빨래는 세탁기에 돌리지만 양말은 꼭 손으로 비벼서 빠는 편이에요. 빠닥빠닥 문질러 빨았을 때 양말이 깨끗해지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부모님으로부터 모든 사물에 영혼이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와키코는 하늘 위에 사는 존재들에 대한 궁금증을 늘 가지고 있었다. 하늘 위에 떠다니는 구름에도, 천둥 번개에도 신이 있을 거라는 생각과 어떤 신이 살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도깨비를 빨아 버린 우리 엄마』 속에 고스란히 담겼다.


도깨비2-ⓒ한림출판사(『도깨비를 빨아 버린 우리 엄마』) copy.jpg ⓒ한림출판사(『도깨비를 빨아 버린 우리 엄마』)


사과밭에 자리한 작은그림책미술관

엄마와 언니가 무사시노를 떠나고 와키코도 그 마을을 떠나야 했던 날, 어느 출판사 편집자가 “사과밭이 아름다운 마을이 있는데 가보지 않으실래요?” 해서 오게 된 곳이 지금 사는 오카야시(岡谷市)다. 이곳에서 지금의 남편이자 ‘작은그림책미술관(小さな絵本美術館)’ 관장인 다케이 토시키를 만났다.


“남편은 고등학교 때 큰 병을 앓아서 입원과 통원을 반복하는 생활을 했었어요. 그때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지요. 그 후 다케이는 문고를 만들고 서양의 오래된 그림책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어요. 도쿄에서 오카야로 이사를 하자 원화를 보러 도쿄까지 가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직접 미술관을 만들어 원화를 빌려와 여기서 전시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남편에게 말했어요. 남편은 흔쾌히 그러자고 했지요. 남편이 모아온 책과 제가 그린 그림을 전시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만든 것이 사과밭이 있는 오카야시에 자리한 작은그림책미술관이에요. 국가로부터 지원받지 않고 순순하게 개인이 운영하는 작고 소박한 미술관이라는 의미로 작은그림책미술관이란 이름을 붙였어요.”


오카야시도 도시 개발 정책으로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들이 점점 없어져 갔다. 미술관 앞으로 도로가 생기고 건물의 일부를 줄여야만 했다. 그때 자연이 아름다운 곳에 미술관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지금부터 20년 전 나가노현(長野県) 야츠가타케(八つが岳)에 작은그림책미술관 분관을 만들게 되었다. 야츠가타케에 있는 작은그림책미술관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 폭 안겨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림을 보러 가는 것 이외에도 산책하면서 느릿하게 흐르는 시간을 즐기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다.


호기심 가득한 장난꾸러기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와키코는 벽에 가득 그림을 그려서 부모님께 혼나기도 했다. 종이를 가져다주면 늘 종이 밖으로 넘쳐 나오게 그림을 그렸다. 저녁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까지 손발이 새까매지도록 밖에서 뛰어 놀았던 와키코는 몸은 가늘고 약했지만 달리기도 잘했고 특히 철봉도 잘하는 호기심 많고 다부진 아이였다.


“천둥 번개가 치는 여름날이면 시다 못해 쓴 밀감을 입에 물고 창밖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어요. 무엇이든 피하지 않고 부딪히는 편이었지요. 어느 날 신장이 나빠져서 적출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수술이 끝난 다음에 의사 선생님께 신장을 보여 달라고 했어요. 모범생이고 여성스러웠던 언니와는 달리 저는 늘 무엇인가 궁금했던 것 같아요. 특히 벌레를 좋아했는데 송충이를 잡아서 현관 손잡이 위에 올려두면 언니가 그걸 보고 기겁을 해서 소리를 질렀어요. 그 모습을 보는 게 재미있었지요.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너는 배 속에다 고추를 떼놓고 나왔지?” 하며 곧잘 저더러 남자아이였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말씀하셨어요.”

이렇게 말하는 그녀 얼굴에는 장난기가 한가득이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되고 싶은 어린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을 한다.

“여러분,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마세요. 그게 바로 상상력의 근원이랍니다. 즐겁고 재미있고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는 어린이라면 앞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그녀에게는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후쿠잉칸(福音館)에서 발행하는 월간 잡지인 『어린이의 친구(こどものとも)』에 어떻게든 작품이 실리고 싶어 여러 차례 그려 갔으나 땅에 팽개쳐지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다급한 마음에 유명한 작가의 그림을 흉내 내서 갔더니, 편집장이 와키코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누군가를 흉내 내서는 안 됩니다. 당신에게는 당신만의 언어가 있어요. 자신이 살아가는 방법과 가치관, 살아온 환경과 경험이 자신의 언어가 되는 것이고 그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은 작가가 되는 길이에요.”

와키코는 자신의 언어로 그리는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가장 자기다움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만든 작품 중 하나가 『도깨비를 빨아 버린 우리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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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작품은 아버지와의 추억 이야기

모든 것은 뿌리가 있게 마련이다. 삶을 넘어선 창작은 없는 듯하다. 호리호리해서 금방이라도 허리가 접힐 듯한 그녀는 건강이 좋지 않아 이웃 나라인 한국으로 독자를 만나러 오는 것을 망설일 정도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할 때면 무척 신이 났다. 창밖을 스쳐가는 들판을 보며 일본이랑 똑같다며 반가워했다. 아마도 아버지와 함께 뛰놀던 무사시노 마을을 떠올린 걸까? 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는 연신 방긋거리며 열 살 소녀가 되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줄 가장 큰 재산은 나중에 그들이 되돌아볼 수 있는 추억거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작품으로는 늘 마음속에 함께 있기 때문에 굳이 꺼내서 이야기로 만들지 않았다는 아버지 이야기를 써볼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여든셋의 그녀는 일본으로 돌아가면 아흔일곱 시아버지의 세끼를 지어야 하는 며느리다. 하루에 세끼를 만드는 일은 참 고달픈 일이라며 살짝 투덜댄다. 툴툴거리면서도 오늘도 시아버지의 저녁을 준비하고 있을 그녀가 오랫동안 건강했으면 좋겠다.


황진희_그림책 번역가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7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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