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대표 프로그램 2 - 책이는당나귀
‘책이는당나귀’는 서울 봉천동에 있는 작은 동네책방입니다. 여행작가인 ‘골방’이와 도서관 사서인 ‘쫄보’가 운영하죠. 책방 이름을 처음 들으면 틀리시는 분이 많아요. 책 ‘읽는’ 아니냐고요. 남미 콜롬비아에 가면 스페인어로 ‘Biblioburro’, 한국말로 ‘당나귀도서관’이 있어요. 안데스산맥에 자리한 콜롬비아는 교통이 불편해 책을 접할 곳이 마땅치 않아요. 그래서 사서선생님이 당나귀에 책을 싣고 산골 마을 아이들을 찾아다니죠. 쫄보가 이 일화를 듣고 감동해서 책방 이름을 책이는당나귀로 지었어요. ‘문화적 혜택이 부족한 동네에 책을 배달하는 역할을 맡겠다’란 뜻을 담았습니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골방이와 쫄보는 부부예요. 왜 이런 별명을 붙였냐고요? 책방을 열 때 카운터 겸 집필 공간으로 손바닥만 한 골방을 만들었어요. 매일 이곳에 앉아 책방 일을 처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골방’이란 이름이 붙었죠. 아내의 별명인 쫄보는… 이유를 말 안 해도 다 아실 것 같네요. 쫄보는 도서관에 출근하다 보니 책방에 있을 시간은 없어요. 대신에 각종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기획부장 역할을 맡고 있지요. 언뜻 골방이가 책방 주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궂은일을 도맡은 머슴이랍니다.
책이는당나귀를 지인들은 ‘책.이.당’이라고 줄여 부르곤 합니다. 짧고 귀여운 어감이라 그런가 봐요. 제가 여기에 한자로 ‘冊以黨’이란 뜻을 붙여봤어요. 풀이하면 ‘책으로 만나는 사람들’이란 의미입니다. 포인트는 집 당(堂)이 아니라 무리 당(黨) 자를 쓴 점이에요. 단순히 책을 파는 책방을 넘어 ‘책을 매개로 사람과 소통하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작년에 꾸준히 진행한 모임 중 하나가 ‘머든지 글쓰기’입니다. 이 모임을 통해 친분을 쌓은 참가자들이 ‘신춘문예에 소설 투고하기’를 목표로 삼은 적이 있어요. 이에 모임을 ‘소설 습작반’으로 전환해 8주에 걸쳐 투고할 작품을 써나갔죠. 참가자가 자발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낙오자가 없도록 서로의 어깨를 다독이며, 공동의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모습. 이것이야말로 제가 책이당을 통해 보고 싶었던 장면이었어요. 앞으로도 ‘자발적인 문화 공동체’가 꽃필 수 있는 밑거름이 되고자 합니다.
책이는당나귀는 작은 동네책방이지만 특정 장르를 고집하지는 않아요. 처음에는 여행 전문 서점을 열까 생각했지요. 제가 여행작가 생활을 하며 책도 몇 권 냈으니까요. 하지만 책방을 이용할 손님들을 고려해야겠죠? 이 지역은 주택가라서 소소하게 읽을 다양한 책을 찾는 편이에요. 그래서 책방을 오픈할 때 서가의 반은 제가 추천하는 책으로 채우고 나머지는 비워두었어요. 동네 주민들이 즐겨 찾거나 추천하는 책으로 채우려고요. 책방은 주인 혼자 만드는 곳이 아니라, 독자와 함께 채워가는 곳이어야 하니까요. 그래도 책을 고르는 원칙은 하나 있습니다. ‘직접 살펴본 책만 소개한다’ 입니다. 추천하고 싶은 책은 (거의) 매일 한 권씩 SNS에 소개하고, 메모지에 손글씨로 소개 글을 써 책에 붙여둡니다. 좋은 책을 소개하는 게 책방 주인의 임무 아니겠어요?
책이는당나귀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지도 궁금하시겠네요. 2020년을 결산해보니 나름 다양한 모임을 열었더라고요. 온·오프라인 독서모임인 ‘달책’, 온라인 독서 인증 프로그램인 ‘읽기 전에 잠들면 안 돼 클럽’, 아이패드로 그림을 함께 그리는 ‘머든지 드로잉’, 독서 편식을 고치기 위한 ‘굿바이 편독’ 같은 모임이 진행되었어요. 동네 작가나 예술가와 연계해 ‘시나리오 작가 되기’와 ‘드로잉 작가 되기’ 수업도 열고, 주변 공방과 손잡고 ‘남미 복돼지 도자기 워크숍’ 같은 원데이 클래스도 열곤 합니다.
책이는당나귀의 시그니처 프로그램인 ‘달책’을 좀더 자세히 소개할게요. 이름은 들어봤지만 두꺼워서 감히 손을 못 대는 ‘벽돌 책’을 읽어보자는 차원에서 기획했어요. 다만 두껍고 어려우니까 한 달에 한 번 모여서는 낙오자가 많을 것 같아 문제였죠. 그래서 1~3주 차는 온라인으로 감상을 나누며 진행 상황을 확인합니다. 마지막 4주 차에 책방에 모여 온라인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마무리하고요. 책은 소설 한 권, 논픽션 한 권을 세트로 묶어 강제로 읽혀요. 소설만 편식하면 안 되니까요.
지금까지 소설로는 『모비 딕』『죄와 벌』『백년의 고독』『흑산』『성』『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논픽션으로는 『코스모스』『총 균 쇠』『죽음이란 무엇인가』『사피엔스』『팩트풀니스』『강의』를 읽었습니다. 매주 함께 읽고 점검하다 보니 낙오자도 적고 책도 더 깊이 읽게 되어 만족도가 높답니다.
코로나19가 진정되면 꼭 해보고 싶은 모임은 ‘여행 글쓰기’입니다! 모두들 속으로 ‘코로나 끝나기만 해봐! 엄청 여행 가주마!’라고 벼르고 있지 않나요? 떠나지 못했던 갈증을 담아 여행지에서 느낀 경험을 글로 쓰는 겁니다. 제가 지금은 책방에 발이 묶여 꼼짝 못 하지만 전에는 여행작가였잖아요? 저도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겠어요. 참여자들과 함께 신나게 ‘여행 수다’를 떨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상 책이는당나귀 골방이었습니다.
이준명_책이는당나귀 공동대표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1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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