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림책 작가도, 평론가도 아닙니다. 여럿이 그림책을 함께 읽고 나누는 모임에 속해있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림책이 좋아 가까이 두고 읽습니다. 아이들 어렸을 때는 물론 다 자란 후에도 그림책은 계속 제 곁에 함께했습니다. 30년 가까이 일해 온 노인복지 현장의 일상에서 그림책은 작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제 관심 분야인 나이 듦과 죽음의 아픔을 그림책은 어떻게 담아내는지 궁금했습니다.
2015년 가을, ‘50+세대들(1955년에서 1963년생인 베이비부머를 포함해 50세부터 64세까지를 일컬음)’과의 그림책 수업을 시작으로 지금은 그 대상이 65세 이상으로 확대돼 여러 도서관과 노인 복지관에서 ‘어르신 그림책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르신 그림책 수업은 그림책과 인생의 키워드들을 연결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함께 고민하고 나누는 시간입니다. 그림책을 중심으로 한 독서토론이나 그림책 내용을 바탕으로 하는 또 다른 창작 활동과는 여러 가지로 다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노년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독서력을 지닌 베이비부머의 노년 세대 진입을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림책과 어르신들이 만나 만들어나가는 ‘어르신들의 그림책 세상’에도 변화가 일어날 게 분명합니다. 제가 깊이 있는 이론이나 학문적인 배경을 갖춘 건 아니지만 어르신 그림책 수업의 경험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노인 그림책 독자에 대한 이해와 그들을 어떻게 적극적인 그림책 독자로 이끌어낼지를 고민할 때 조금의 참고는 될 것 같습니다. 사회복지사로서 어르신들과 그림책을 읽으며 느낀 경험과 여러 그림책 전문가들의 의견이 더해진다면 그 길을 찾는 일이 좀더 쉬워지지 않을까요.
우선, 그림책에 대한 어르신들의 감수성은 어린이들이나 젊은 사람들과는 다른 색깔과 결을 지닙니다. 어린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도 하고, 삶의 나이테 없이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눈물과 뭉클함과 가슴 떨림이 그림책 사이사이로 스며들곤 합니다. 어린아이의 책이라고만 알던 그림책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이 깨지면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노라고 고백하는 분들을 만납니다. 아이들이 그림책을 통해서 느끼고 누리는 즐거움, 상상력, 공감을 어르신들도 그대로 아니 오히려 삶의 깊이와 시간의 길이만큼 더 폭넓고 깊게 경험하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어르신들이 그림책을 만나면 ‘읽기’에 대한 부담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예전에는 문맹이라고 했던 비문해가 아무래도 다른 연령대에 비해 많은 노년층은 글을 읽고 쓰기에 생각보다 큰 부담을 느낍니다. 비록 문자 해득이 가능하다 해도 노안과 시력 저하에 언어 표현력과 이해력이 떨어지다 보니 책에 대해 거리감을 갖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노년층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고 여러 곳에서 노인 인문학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지적(知的)으로 나이 들기’ 같은 말이 심심찮게 들려오지만 여전히 많은 어르신들이 책이나 글과는 담을 쌓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그림책의 장점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어르신들이 그림책을 만나고 그림책을 보게 되면 어느새 세대 공감과 소통의 길이 열립니다. 부모 자식이 함께 늙어가는 것으로도 모자라 조부모, 증조부모로까지 폭이 넓어지면서 조부모-부모-자녀 3대를 넘어 4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머지않아 100세 시대가 되면 5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일이 현실이 될 게 분명합니다. 세대 간 불통과 갈등과 전쟁이 아닌, 공감과 교류를 통한 공존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실감 나는 때에 그림책은 가장 윗세대 어르신들과 어린 세대를 잇는 소중한 끈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도 남습니다. 나를 위해 혹은 내가 그냥 읽는 그림책이, 손주들을 위한 혹은 손주와 함께 읽는 그림책이 되는 순간 어르신들의 그림책 세상은 아무런 경계도 구분도 없는 자유로운 소통과 교류의 세상이 됩니다.
제가 어르신들과 그림책 수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많은 분들이 어르신들을 위한 그림책을 소개해달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어르신들과의 수업을 위해 아무런 전제 조건 없이 그림책을 고릅니다. 똑같은 그림책도 모두가 다 다르게 읽고 느끼고 받아들이게 마련이니 어르신이라고 해서 따로 만들어진 그림책이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혼자 그림책을 읽다가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해 점찍어두기도 하고 아니면 어르신들과 나눌 이야기 주제를 먼저 정한 뒤 그에 맞는 그림책을 고르기도 하니 딱히 정해진 규칙이나 기준은 없는 셈입니다. 다만 경험을 나눌 수는 있습니다. 제 경험은 어르신 개인이 그림책을 취향대로 골라서 읽거나 독서 모임에서 의논해 그림책을 정한 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를 제외하고, 10~20명이 함께하는 수업에 해당된다는 점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제 수업은 같은 그림책을 1인당 한 권씩 손에 들고 읽으며 진행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기 때문에, 제가 앞에 서서 그림책을 잘 보이게 펼쳐 들고 한 장씩 넘기며 읽어드리거나 컴퓨터를 이용해 한 페이지씩 큰 화면에 띄워놓고 읽습니다. 그러므로 어르신들의 집중력을 고려해 글이 많은 그림책, 혹은 그림의 표현 기법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구분이 안 가는 색상으로 되어 있는 그림책의 경우는 깊이 생각해서 목록 선정 여부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르신의 특성을 고려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각과 청각이 둔해지고 기억력, 특히 단기 기억이 약화되고 우울증 경향이 늘어납니다. 경직성이 증가하고 융통성이 없어지면서 자꾸만 과거를 돌아보게 됩니다. 물론 어르신이라고 해서 다 똑같지는 않지만 대체로 일치하는 이런 특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무조건 그림책을 읽어드리거나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다는 아닙니다.
생활이 넉넉하지 않아 단칸방에 사는 네 식구가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은 끝에 결국 치매 걸린 할머니를 받아들여 함께 살게 된다는 내용에 그림도 잘 표현된 그림책이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의 관심사인 치매는 물론 가족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깊이 공감할 거라 판단해 함께 읽고 나누었지만 수업 후의 반응은 정반대였습니다.
그러니 문제의 해결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어르신 그림책읽기의 애초 목표를 점검해봐야 합니다. 시력 저하 등 여러 이유로 책에서 멀어져가는 노년 세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그림책은 독서의 즐거움을 맘껏 누릴 수 있게 합니다. 더불어 아름다운 그림은 행복감을 높입니다. 동시에 그림책 속 이야기를 바탕으로 삶을 돌아보면서 최선을 다해 살아온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한다면 자존감 또한 높아질 겁니다. 한편으로는 아이들도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을 노년 세대가 함께 읽음으로써 아래 세대들의 감성을 이해하고 한 걸음 다가가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사노 요코 글·그림 / 상상스쿨)
씩씩한 고양이와 함께 사는 아흔여덟 살 할머니는 아주 건강했지만 “하지만 나는 할머니인걸”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가만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할머니의 아흔아홉 살 생일에 고양이가 냇물에 양초를 다 빠뜨리고 겨우 다섯 자루만 들고 옵니다. 촛불 다섯 개에 다섯 살이 되어버린 할머니는 달라집니다.
“하지만 나는 5살인걸…. 어머, 그렇지! 5살이면, 고기 잡으러 가야지.”
나이는 싸울 것도 아니지만 굳이 맨발로 달려나가 남보다 앞서서 맞아들일 것도 아닙니다. 지금 내 나이에 맞게 잘 살고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좋은 생각 많이 하고 좋은 사람 많이 만날 계획을 세워보면 어떨까요.
『미스 럼피우스』(바버러 쿠니 글·그림 / 시공주니어)
어른이 되면 아주 먼 곳에 가볼 거고, 할머니가 되면 바닷가에서 살겠다는 어린 럼피우스에게 할아버지는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는데, 그건 ‘세상을 좀더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라고 합니다. 세상 구경을 다 마치고 바닷가 마을에 정착한 럼피우스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리고는 주머니에 꽃씨를 넣고 다니며 곳곳에 뿌리고 또 뿌립니다.
나이 들어 일선에서 물러서면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할 힘도 없고 지혜롭게 조언을 할 능력도 자격도 없다고 느껴지곤 합니다. 그럴 때일수록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확고한 결심이 필요합니다. 작은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기가 바로 그 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당장 우리에게 혜택을 주지 않아도 다음 세대에게 기쁨을 줄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원한 이별』(카이 뤼프트너 글 / 카트야 게르만 그림 / 봄나무)
모든 게 언제나처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또한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다섯 살 에곤은 이제 남아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교실에 남아서 나머지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아빠와 영원한 이별을 하고 여기에 남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어린 에곤이 솔직하고 담백하게 죽음과 사별, 상실을 이야기합니다.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단 한 명도 죽는 일 없이 오늘을 넘긴다 해도, 세상에는 죽음이 넘쳐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가능하면 피하거나 미루려고만 합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음이 다가올지 모르므로 지금 여기서의 시간을 좀더 충실하게, 진정한 사랑을 나누며 살아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림책 속 죽음 이야기가 아프고도 아름답습니다.
유경_사회복지사, 시니어 그림책 활동 강사, 『그림책과 함께하는 내 인생의 키워드 10』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8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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