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나는 그곳
밤의 숲에서
임효영 글·그림 / 40쪽 / 14,000원 / 노란상상
노인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 침대 발치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해로동혈을 약속하며 의좋게 살던 아버지가 떠나신 후, 단단히 마음을 붙잡고 버티던 시간도 바람처럼 지나가 버리고 더는 혼자 살 수 없어 남들 다 싫다는 요양원에 스스로 들어왔습니다. 새 친구들과 사귀며 적적함을 덜고 싶었지만, 요양원에 계시는 분들은 대부분 치매로 사리 분별이 어렵거나 말 한마디 못하고 종일 누워있는 처지이니 그 사이에서 어머니는 정신이 맑아 오히려 힘이 듭니다.
『밤의 숲에서』 속 아무것도 남아있는 게 없는 할머니는 열 명이나 되는 자식들 집을 오가며 살아갑니다. 할머니에게 관심을 쏟을 여력이 없는 자식들에게 할머니는 괜찮다고, 사는 건 원래 분주하고 골치 아픈 거라며 되레 위로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다른 자식의 집으로 가던 중에 할머니는 길을 잃고 밤의 숲에 들어섭니다. 언젠가부터 할머니 머리에 생겨난 파란 털 한 가닥을 사람들은 싫어했지만 숲속의 친구들은 근사하다며 여기저기서 말을 걸어옵니다. 산고양이와 동박나무와 구름 같은 친구들 덕분일까요. 가슴속에 묻어둔 채 까맣게 잊고 살았던 것들이 떠오릅니다. 다들 ‘할머니’라고만 불러 어느새 잊어버리고만 ‘피비’라는 예쁜 이름, 나는 딸도 엄마도 아닌 ‘그냥 나였다’는 사실 같은 것들 말입니다.
엉덩이는 크고 둥그레지고 다리는 점점 가늘어지는 할머니. 거기에 깃털까지 자라나 한 마리 새가 된 할머니. 그제야 숲은 할머니의 집이 되고 힘찬 날갯짓으로 그리움마저 비워낸 할머니는 한없는 가벼움으로 날아오릅니다. 낮잠을 주무시는 어머니의 엉덩이는 이불에 감싸여 둥글게 부풀어 보이고, 이불 밖으로 빠져나온 발목은 새 다리처럼 가늘어 부러질 듯 위태롭습니다. 어머니에게도 깃털이 자라나 훨훨 날아갈 준비를 하시는 건 아닐까요.
결국 노년은 ‘여기와 그곳’이 포개진 생의 마지막 경계에 이르러 일평생 지고 온 무거운 짐과 기다림, 그리움과 끝내 부둥켜안고 놓지 못하던 마음까지 모두 내려놓는 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어르신들 계신 곳이 바로 밤의 숲입니다.
밤의 숲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보이는 생의 진리, 삶의 신비!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할머니는 이제 새가 되어, 담담하지만 가슴에 와 얹히는 글과 푸른 밤의 빛을 가득 품은 그림 속으로 우리를 손짓해 부릅니다. 꽁꽁 감추는 바람에 좀처럼 알기 어려운 노년의 속마음과 그 안에 담긴 작지만 무거운 소망을 자연스럽게 일러주는 귀한 책입니다. 우리 모두는 나이와 상관없이 결국은 쉬지 않고 밤의 숲을 향해 걸어가는 존재들이니까요.
유경_사회복지사, 시니어 그림책 활동 강사, 『그림책과 함께하는 내 인생의 키워드 10』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9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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