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편집자의 역할

그림책깊이읽기2

by 행복한독서
“편집자가 되기 위한 기술적인 일을 배우기 위해서는 6개월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그 나머지를 배우기 위해 당신은 평생을 바쳐야 한다.” -맥스웰 퍼킨스


출판 편집자의 업무

“출판 편집자는 작가가 쓴 원고의 내용을 검토하고 내용의 손상 없이 원고의 교정, 교열, 윤문 작업을 한다. 원고를 받아서 출판물의 디자인을 검토하고, 편집 작업의 순서와 방법을 설정한다. 작가와 출판 기획자와의 상의를 통해 책의 내용에 맞는 판형, 글씨체, 디자인 등 편집 양식을 결정하고 편집 양식에 따라 원고의 내용을 편집한다.”

직업 정보에서 알려주는 출판 편집자의 업무는 20세기 최고의 문학 편집자로 일컬어지는 맥스웰 퍼킨스가 말한 6개월이면 어느 정도 익힐 만한 내용들이다. 그렇다면 편집자가 되기 위해 평생을 바쳐서 배워야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또 그림책 편집자는 위의 내용과 무엇이 다른가?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서로에게 여백을 주며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장르로 대부분 40페이지 내외의 구성을 갖춘다. 때론 글 없이 그림만으로 완성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이미지 본위의 책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림책 편집자는 글 원고와 그림 원고 모두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는 데에 근본적인 특이점이 있다. 그림책 편집자가 하는 업무의 범위는 출판사의 규모, 관리 유형, 그리고 재무 상태와 같은 여러 조건들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편집자의 업무는 편집 업무와 비편집 업무로 나뉘어볼 수 있으나, 여기서는 주로 작가들과 함께 일하는 것과 관련된 편집 업무에 주력해보려 한다.

프랑스의 그림책 전문 출판사인 에꼴의 편집장이던 아르튀르 웹슈미트는 1999년에 한국을 방문해 편집자의 역할에 대해 크게 두 가지로 이야기했다. 하나는 무엇보다도 그 작가가 좋은 작가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하며, 다음으로는 좋은 작가에게서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자극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시각을 미국의 출판사 하퍼의 편집자였던 우셜라 노드스트롬으로부터 배웠다고 고백했다.


왜 우셜라 노드스트롬인가?

우셜라 노드스트롬(Ursula Nordstrom, 1910~1988)은 ‘어린이문학계의 맥스웰 퍼킨스’로 불려졌다. 맥스웰 퍼킨스에게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F. 스콧 피츠제럴드, 그리고 토마스 울프와 같은 작가들이 있었다면, 노드스트롬에게는 모리스 샌닥과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토미 웅게러, 셸 실버스타인 등의 작가들이 있었다. 현대 그림책의 역사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주목받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비롯한 많은 그림책들이 노드스트롬에 의해 편집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작업을 한 작가들 또한 그녀를 훌륭한 ‘그림책 편집자’로 회상하고 있음은 편집자로서 그녀가 보여준 역할 또한 그림책 편집자의 범주 내에 있을 것이라 판단된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jpg ⓒ시공주니어(『괴물들이 사는 나라』) 미국에서 어린이의 ‘화’를 다룬 최초의 그림책.

편집자로서 노드스트롬의 모토는 ‘나쁜 아이들을 위한 좋은 책을’이었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 어른들 대부분은 아이들의 세계는 순수하고 아름답고 깨끗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노드스트롬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더 살아있고, 더 숨쉬고, 더 더럽고, 더 두려움을 느낀다고 믿었고 그런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펴냈다. 이로써 어린이책이, 어른의 눈높이에서 쓰인 도덕주의적 작품에서 아이들의 감정과 상상력, 그리고 문제를 보여주며 아이들이 주체적인 독자가 될 수 있도록 바꾸는 데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뉴욕타임스』가 노드스트롬이 편집한 책을 ‘어린이문학의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라고 칭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점들은 필자로 하여금 그림책 편집자의 역할에 대해 알아가기 위한 모델로서 우셜라 노드스트롬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림책 편집자 우셜라 노드스트롬이 보여준 역할


1. 새로운 아이디어에 열린 마음을 가져라 -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아이들을 이해하기

우셜라 노드스트롬은 “그림책 편집자는 작가가 최대치로 이끌어낸 새로운 아이디어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림책 편집자로서 새로운 아이디어에 자신을 열어준다는 것은, 노드스트롬이 보여준 것처럼 아이들의 감정과 생각, 그리고 상상을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예전에 아이였고, 그 사실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라고 말하며, 이를 어린이책 편집자의 큰 자격으로 내세웠던 노드스트롬은 자신의 어린 독자들과 그들의 감정을 존중했다. 덕분에 그녀는 아이들의 삶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외로움, 부모의 이혼과 같은 다양한 주제에 관한 그림책을 출판했고 세대를 뛰어넘어 아이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2. 작가 발굴

창의적인 작가들을 발굴하는 일은 그림책 편집자에게 언제나 중요한 일이다. 하퍼에서 편집자로 33년을 일하는 동안 노드스트롬은 사무실 문을 늘 열어두었다. 약속 여부와 무관하게, 또 무명작가라 하더라도 그녀는 모든 작가들을 늘 환영했고 시간을 내어 자신의 열정과 따뜻한 감성으로 그들의 재능을 북돋우어주었다. 루스 크라우스, 토미 웅게러, 존 스텝토, 루스 호반 등의 작가들도 무명이었을 때, 열려있던 그 문을 통해 노드스트롬을 만났고, 그림책작가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 또한 노드스트롬은 아주 작은 재능을 가진 누군가를 알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작가를 발굴하는 편집자의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했다.


3. 작가들에 대한 관심

노드스트롬은 “원고에 정확하게 바로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편집자는 그에 대해 묻고 또 물으며 질문을 이어가는 것이 좋다”고 말하며, 편집자가 작가들에 대해 가지는 관심과 호기심이 사적인 일들에 한정되지 않기를 강조했다. 작가의 전반적인 배경에 대한 편집자의 정직하고 민감한 관심만이 편집자를 향한 작가의 신뢰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4. 무엇보다도, 해를 끼치지 마라

편집자는 작가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일이 작가들의 창의성을 증진시켜야지 해를 끼치게 해서는 안 된다. 노드스트롬은 “내가 편집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작가에게 공간을 주고 창의성을 증진시킬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일뿐이다”라고 하면서 이 점을 강조했다. 더불어 그녀는 편집자들은 “자신들의 크고 무거운 편집의 발을 아주 예민한 원고들 위에 올려놓고 있음을” 보다 더 절실하게 깨닫기를 바랐다.


5. 작가들에게 귀 기울여라

“편집자는 반드시 작가들의 말에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고 노드스트롬은 늘 강조했다. 작가란 그들이 듣고 존재하는 매 순간을 새로운 이야기로 창조할 수 있는 사람들이므로 그들과 어떤 이야기를 하든 그 속에는 이야기 씨앗이 늘 꼬물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 씨앗을 찾아서 자라날 수 있도록 의뢰하고 햇빛과 공기와 물을 주는 것 또한 그림책 편집자가 해야 할 일이다.


6. 작가들을 이해하라

작가들이 작업을 하고 있든 아니든 간에 편집자에게는 그들을 이해하는 일이 참으로 중요하다. 작업 과정에서 잘 되어가고 있냐는 편집자의 물음이 작가에 따라서는 관심으로 다가갈 때도 있고, 간섭으로 다가갈 때도 있다. 노드스트롬은 이런 차이를 알아내는 것이 편집자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지만, 그걸 알아내는 것은 늘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편집자는 창의적인 작가들이 창작하는 것을 돕기 위해 보다 섬세하게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그 노력이 전제될 때 작가들이 이야기를 지어내고 그 속에 감정을 표현하게끔 도와주는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7. 작품을 수정할 때, 작가의 창의력을 사랑하라

작가에게 있어 수정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며, 편집자는 수정 과정에서 작가와 함께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노드스트롬은 작가와 함께 수정 작업을 할 때면, 작가의 원래 아이디어를 기억하며, 원고의 방향을 잃지 않도록 도왔다. 더불어 편집자가 작업 수정에 참가할 때 작가들의 창의력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편집자가 얻으려는 것은 ‘작가’의 머릿속에 있는 것이지 ‘편집자’의 머릿속에 있는 것이 아님을 스스로에게 주지시키면서 말이다.


8. 역량 있는 작가가 내리막길로 들어섰을 때

노드스트롬은 작가가 창작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은 그들을 발굴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작가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때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작가의 벽’에 부딪혀 애를 먹는 경우, 편집자는 인내하면서 압력이 아닌 관심으로 이들을 격려해야 한다고 했다.

노드스트롬은 작가가 예전에 보여준 수준에 못 미치는 작품을 가져오더라도, 그들이 창작에 대한 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그 작품을 출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노드스트롬에게는 편집자와 작가 사이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작가의 창의력을 유지시키는 일이 작가의 훌륭한 원고들만을 선별해서 출판하는 것보다 더 중요했던 부분이었다.

깊은밤부엌.jpg ⓒ시공주니어(『깊은 밤 부엌에서』) 노드스트롬은 샌닥이 들려주는 어린 시절에 귀 기울이다 이야기 씨앗을 찾았다.


그림책 편집자, 그 완성을 위해

모리스 샌닥이 20대 초반에 첫 작품을 낸 이후부터 중년의 작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때까지 노드스트롬은 그의 편집자였다. 샌닥은 그 과정을 “노드스트롬은 나에게 최고의 엄마였고, 최고의 선생님이었으며, 그리고 최고로 멋진 친구였다”라고 회상했다. 두 사람이 보여주는 이러한 관계의 변화는 편집자의 역할이 작가의 역량에 따라 가변적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샌닥이 초보 작가일 때나 중견의 작가가 된 이후에도 그를 향한 노드스트롬의 ‘배려와 자극’은 지속되었다. 작가의 창의력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 그림책 편집자의 이러한 역할은 작가 자신이 스스로를 향한 탐구를 멈추지 않게 했고, 샌닥은 그 결과들을 그림책에 담아낼 수 있었다.

근래에 그림책은 단지 어린이를 위한 책만이 아니라, 0세에서 100세까지의 독자를 지향하며 그 층을 넓혀나가고 있다. 그림책과 어린이책을 펴낸 노드스트롬은 편집자로서 작업을 통해 책임을 져야 하는 독자는 어린이임을 강조했다. 이는 그녀가 독자 대상을 어린이에 집중해서 그림책을 만들어왔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노드스트롬이 편집한 그림책들이 어른들과 아이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는 것을 볼 때, 그녀가 생각한 ‘어린이’는 자신과 다른 어른들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어린이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대상이 아니었을까?

그림책 편집자로서 노드스트롬의 역할을 고찰하면서, 그림책 편집자가 되기 위해 그녀가 평생을 바쳐 배운 ‘나머지’의 영역은 아이들을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무엇보다도 작가들의 창의력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늠하게 된다.


오승현_글로연 편집장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0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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