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할 일, 20년 더 해보려고요

장동석이 만난 책방인 - 책과아이들 김영수·강정아 공동대표

by 행복한독서

6시가 되기도 전, 공연장은 이미 만석이었다. 이 작은 공간에 어떻게 이 많은 사람이 들어왔을까 싶어, 대략 헤아려보니 150명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무대의 막이 오를까, 기다리는 눈빛은 모두 해맑았다. 드디어 막이 오르고, 객석은 이목을 집중했다.

“어린이문학을 즐기고 어린이문학 정신을 지켜나가는 동네책방”인 부산 ‘책과아이들’의 9번째 생활연극 「투명한 아이」의 막은 그렇게 올랐고, 1시간 15분여 관객들은 웃고 울었다. 7개월 동안 기획하고, 2개월여 맹연습 끝에 올린 공연은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는, 누군가의 말마따나 “인생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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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강정아 공동대표가 1997년 연말 책과아이들의 문을 연 이유는 단순하다. “전집이 아닌, 조금이라도 덜 상업적이고 좋은 책들을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부산에서 서점을 열기 전, 이미 수원에 살면서 어린이책 동아리 모임을 했던 터였다. 내 아이에게 읽히고 싶은 책들, 옆집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더 재미있겠다 싶어 시작한 일이 부산에서 서점으로 이어졌고 20년을 훌쩍 넘겼다.

고향인 부산에 처음 내려올 때만 해도 강정아 대표 혼자였지만, 불과 3년 후 남편 김영수 씨도 합류하면서 서점은 서서히 제 궤도에 올랐다. 두 사람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게 내 꿈이었고, 우리가 할 일이었다. 내가 바라는 사회 만드는 일인데, 그런 걸로 뭘 계산을 해요?


소식지도 매달 만들었다. 우편요금 조금 아끼려고 동네 회원들은 직접 찾아가 우편함에 넣기도 했다. 아빠는 운전을 맡고, 엄마와 아이들은 아파트 우편함을 향해 뛰었다. 강정아 대표는 “온 식구들이 배달을 도맡았던 그때가 재미있었다”면서 “옛날에 농사지을 때 이렇지 않았을까요?”라며 밝게 웃는다. 생각해보면, 아이들과 책을 읽는 것이 농사짓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애써 씨를 뿌리고, 결실하기까지 간난신고(艱難辛苦)를 이겨내야만 결실할 수 있는 일이 농사라면 책을 읽는 일도, 그것의 결실도 결국 농사임에 틀림없다. 책과아이들을 이제껏 유지하게 한 마음자리가 권정생·이오덕 선생에게 나온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책과아이들은 연중무휴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일요일과 월요일이 휴무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다 보니, 사실상 쉬는 날이 없는 것과 같다. 어린이들·엄마들과 함께 운영되는 프로그램들이 많지만 최근 강 대표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일은 토요일마다 아빠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책방 나들이하는 모습이다. 하루라도 아빠들이 아이와 함께 책방에 와서 그림책을 함께 읽고 몸으로 뒹구는 모습을 보면 세상 기쁘단다. 실제로 공연이 있던 날에도 대개는 아빠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아이들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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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사람들 사이에서 강정아 대표는 ‘책방 큰엄마’로 불린다. 한동안 책방을 열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수시로 찾아왔었다. 프레젠테이션까지 준비해서 손님을 맞기도 했다. 모르게 보고 간 사람들도 여럿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책방 열겠다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 요즘 추구하는 책방 모델도 아닐뿐더러 젊은 세대에게는 나름 벅찬 규모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책방 큰엄마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소매를 걷어붙이려고 한다. 김영수 대표가 그런 강 대표를 보고 웃으면 말한다.

“옛날에는 우체통만큼 책방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 요즘은 미용실만큼 책방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둘이 이야기하면서 웃곤 해요.”


우체통만큼, 미용실만큼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은 단지 책방 숫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두 사람이 공히 마음을 쓰는 일은 청소년들과 함께 책을 읽는 일이다. 책을 읽고 자기만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청소년이 많아져야만 우리 교육 현실도 제 갈 길을 다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책과아이들에 터 잡은 중학생들은 특강 내용이 정해지면 스스로 6개월을 공부하고 자기들만의 자료집을 만들고 발표회를 한다. 방문 당시에도 중학생 두 명이 자정 무렵까지 이틀 후에 있을 『코스모스』 특강 자료를 만들고 있었다.


강정아 대표는 세상이 ‘중딩’이라고 부르는 청소년들을 데리고 『레미제라블』을 함께 읽었다. 어디 그뿐인가. 프랑스 혁명사와 사회민주주의까지 공부했다. 고등학생들을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은 없지만 책과아이들에서 자란 아이들은 늘 책방 주변을 서성거린다. 그래도 아쉽다. 세상은 1등만 기억하는 시스템으로 자꾸만 낯빛을 바꾸고 있어 책과아이들을 찾는 청소년들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강정아 대표의 말이다.


언젠가 대학에 간 한 아이가 찾아와서는 ‘밖으로 다녀보니 이런 데가 없더라’는 말을 하더군요. 그 말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작년에 다소 침체되었는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려고요.


책과아이들이 한 번도 책방이 아닌 적은 없었지만, 앞으로는 “조금 더 책방이고 싶다”고 김영수 대표는 강조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든 이유가 ‘좋은 책 함께 읽자’는 것이었고, 이 프로그램들을 통해 한 권의 책이라도 더 사서 읽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조금 더 책방이어야만 흔한 말로 ‘롱런’할 수 있고, 롱런해야만 매일 눈에 밟히는 아이들과 책과 더불어 노닐 수 있기 때문이다. 수원에서 처음 동아리 모임을 시작했을 때 그 마음, 바로 초심이다.

사실 더 한적한 곳으로 들어가 시골 책방을 하고 싶은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내 두 사람은 “책방이 사람들 곁에 있어야지” 하면서 결국 “조금 더 해보자”고 늘 결론을 내리곤 했다. “마음을 잘 지키는” 김영수 대표와 “한번 하면 끝까지 하는” 강정아 대표가 지난 세월 만들어온 책과아이들은 단지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다. 마을의 문화 공간으로 짐짓 잊혀가는 인심(人心)을 되살리는 고향 같은 곳이면서, 신자유주의의 높은 파고를 함께 넘는 방파제 같은 곳이 바로 책과아이들이다.

1-책과아이들(부산).jpg 어린이문학을 즐기고 어린이문학 정신을 지켜나가는 동네책방, 부산 책과아이들. 일러스트 정인하


‘어린이문학의 정신’을 지키고 실천하는 길을 한결같이 달려 23년이다. 그 길을 함께 달려온 자녀들이 더 뿌듯해하는 걸 보면서, 김영수·강정아 대표는 “우리가 허투루 살지는 않았다”는 자부심을 느낀다. 아주 짧은 시간 책과아이들에 머물렀을 뿐인데, 그곳의 여운은 길었다. “앞으로 20년 더 해보려고 한다”는 두 사람의 다짐과도 같은 말이 자꾸만 귓가에 맴돈다.



장동석_출판평론가, 『뉴필로소퍼』 편집장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19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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