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생각

살쾡이 삼 형제의 눈으로 본 도시의 기록

by 행복한독서
살쾡이 삼 형제가 세상 밖으로 나왔어요. 도시의 아스팔트 위를 지나 밀려오는 자동차와 사람 사이를 비껴 잃어버린 엄마를 만나러 갑니다. 살쾡이 삼 형제는 엄마를 찾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사는 도시에는 흔적 없이 사라져가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엄마 생각

이종미 글·그림 / 42쪽 / 13,500원 / 보림


몇 년 전, 보림출판사로부터 로드킬 그림책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누워 계신 엄마 생각에 가슴이 먹먹한 여름이었는데, 올가을 엄마 자리는 비어있고 책이 나왔습니다. 엄마라는 궁궐에서 영원히 추방당하고 이제 막 그림책이란 세계의 문으로 들어선 느낌이 듭니다.


주인공은 살쾡이 새끼 세 마리이고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도시 외곽에 있는 숲속 도로에서 살쾡이 어미가 자동차 사고를 당하고 사라집니다. 모든 것을 지켜본 산비둘기가 숲속에 남은 살쾡이 새끼들에게 어미의 행방을 알려줍니다. 빛 좋은 초여름 아침, 새끼들은 어미를 찾아 낯선 도시로 나옵니다. 우여곡절 끝에 새끼들은 깜깜한 밤이 돼서야 어미가 있는 곳을 찾아내고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처음에는 비극적 결말로 가려 했다가 편집자의 제안으로 해피엔딩이자 열린 결말로 바꾸었습니다. 덕분에 어미와 새끼가 서로를 잃어야 하는 아픔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림에서 쓴 재료는 캔버스 천과 아크릴물감입니다. 재료가 낼 수 있는 우연한 효과를 화면에 그대로 남기는 걸 좋아하지만 이번에는 도시의 딱딱하고 매끈한 질감을 살리고자 우연한 이미지 없이 의도적인 붓질만으로 대상을 그렸습니다. 그림에 주로 등장하는 살쾡이와 자동차의 특징을 찾고자 고심했습니다. 살쾡이 캐릭터는 최대한 여리고 순해 보이게 잡았습니다. 실제 살쾡이는 양미간에 세 개의 검은 줄이 있어 무척 드세 보입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원하는 건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얼굴이기에 검은 줄을 생략했습니다.


멀리서도 세를 과시하며 달려오는 자동차의 광택이 흥미로웠습니다. 번쩍거리는 표면이 내면의 질주 본능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아 모든 자동차를 번들거리게 강조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면 누구나 주제를 잘 드러내면서도 아름다운 스타일을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좋은 것은 도도해서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책 한 권 끝낼 때마다 후회와 아쉬움이 밀려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미련이 다음 작업의 원동력이 되니 인생에서 득실을 따지는 건 무의미한가 봅니다.


평소 도시를 배경으로 그림책을 한 권 만들고 싶었습니다. 시골에서 보낸 10년 삶만 진짜 같고 40년 넘는 도시 생활은 가짜로 여겨져 이상했습니다. 분명 도시살이에도 장점이 있는데 왜 단점이 주는 부정적 감정에만 빠져있는지 그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휴대폰 카메라 하나 들고 동네인 파주 금촌을 돌아다녔습니다. 어미를 찾아 나선 살쾡이가 되어 낯선 눈으로 도시를 보았습니다. 인도와 차도가 뒤섞인 길에서는 자동차 한 대도 길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자동차는 임금님 행차인 듯 거만하게 직진했고 보행자는 시종처럼 구석으로 물러나며 길을 비켜줘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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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중앙로 한복판에 서보았습니다. 좌우로 자동차 물결이 폭포처럼 흘러갔고 숲에서 유배당한 가로수들은 좁은 인도 끄트머리에서 굉음과 공해와 공포를 견디고 있었습니다. 행인들은 저마다 이어폰을 끼고 중요한 업무 수행을 하는 듯 휴대폰에 몰두하며 오갔습니다. 허리를 기역 자로 구부린 노인이 손수레를 전봇대 옆에 기대 놓고 종이 박스를 접었고 길고양이는 먹거리를 찾아 쓰레기봉투를 뒤적이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앞 넓은 대문으로는 자동차가 드나들었고 아이들은 좁은 쪽문으로 줄줄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검은 비닐봉지 하나가 까마귀처럼 전선 위로 날아갔습니다. 도서관 앞에서는 하얀 실뭉치 같은 개 한 마리가 도로로 뛰어들었습니다. 버스와 트럭 사이에서 빨간 목줄을 휘날리며 위험한 곡예를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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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속도와 편리함에 눈먼 자에겐 천국이지만 발길 닿는 대로 걷고 싶은 영혼에겐 지옥이었습니다. 피와 살이 있는 생명체는 이미 자동차의 질주를 방해하는 미천한 존재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신호등을 읽지 못하고 횡단보도를 알 리 없는 생명체는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길 위에서 대대로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시스템 밖으로 밀려난 내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경쟁에 뒤처져 그림자로 살다 가야 하는 또 다른 사람들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이 그림책은 허구이지만 실재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기록입니다. 나를 위해 금 그어 놓은 안전지대가 오히려 타자에겐 위험 지대로 탈바꿈한다는 증거물입니다. 도시에 살면서 나도 모르게 켜켜이 무의식 밑바닥에 쌓인 절망인 동시에 희망을 찾으려 하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삶이 주는 공포에 휩싸여 눈앞이 깜깜할 때 오히려 어둠을 직시하면 좋겠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눈을 크게 뜨고 기다리면 죽어있던 빛이 되살아나 길을 밝혀줄 겁니다. 힘이 되는 누군가의 자리가 비었다면 기억에서라도 그 누군가를 살려내십시오. 사랑받고 칭찬받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살아있는 한 따뜻한 먹이와 안전함이 보장되는 곳에 무사히 도착하리라 믿습니다.



이종미 작가는 밀라노에 있는 유럽 디자인 학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습니다. 『개미들이 졸졸졸』 『아가야 뭐하니? 손이랑 놀아요』를 쓰고 그렸으며, 『해님달님』 『선녀와 나무꾼』 『겨울을 만났어요』 『늑대도 친구가 필요해』 등을 그렸습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8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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