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도감

새로운 생명체, 엄마를 관찰하는 시간

by 행복한독서
엄마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나를 만나게 되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엄마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요. 계속 연구하다 보면 언젠가는 밝힐 수 있겠지요?가끔 엄마의 밤을 지켜봅니다.


엄마 도감

권정민 글·그림 / 48쪽 / 13,000원 / 웅진주니어


거미는 어떻게 거미줄을 뿜어낼까. 파리지옥은 왜 곤충을 잡아먹을까. 아이들은 자신과 다른 생명체에 관심이 많습니다. 곤충도감과 식물도감이 마르고 닳도록 넘겨보면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갑니다. 고릴라가 눈을 크게 뜨고 입술을 오므리는 것은 긴장된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구나, 두렵고 화가 날 때면 정수리 부분의 털이 곤두서는구나 하고 만난 적도 없는 그들을 이해합니다. 그러다 엄마가 버럭 소리를 지르면 아이는 생각하죠. 엄마는 왜 저럴까. 하지만 굳이 답을 찾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엄마가 또 저러나 보다 정도로 엄마에 대한 관심을 꺼나갑니다. 신비로운 생명체를 찾아 지구 너머 우주 구석구석을 누비는 인간의 탐구심도 유독 엄마라는 생명체에 관해서는 무심하게 고개를 돌립니다. 아이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24시간 곁을 지키며 시중을 들어온 엄마는 더 이상 새로운 생명체가 아닌 지루한 환경이 되어버립니다. 늘 존재하므로 더 궁금할 것이 없는 엄마. 엄마가 되고 보니 어쩐지 분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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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도감』은 생명 탄생의 경이로움에 밀려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엄마라는 종족을 아이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책입니다. 엄마가 된 후로 가장 궁금했던 건 정말로 모든 엄마들이 이런 생활을 하는가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왜 나는 그걸 몰랐을까. 아기에 관한 보고서는 날짜별로 쌓여있는데 아기와 함께 생겨난 엄마라는 종족에 대해서는 아무도 연구해놓지 않았더군요. 온갖 아름다운 형용사로 엄마를 치켜세울 때는 언제고 정작 엄마의 노동과 건강에 대해서는 하찮게 여기는 세상의 분위기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힘들다는 말을 꺼내는 건 아이에게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지니 입을 틀어막게 됩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세상에 혼자 내던져져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나만의 중심을 잃어버리는 엄마들. 누구도 돌봐주지 않는 그들의 시간을 생각하며 『엄마 도감』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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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긴 달았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주인공은 다름 아닌 저 자신입니다. 보통의 인간이 아닌 새로운 생명체라는 느낌을 표현하는 데에 도감이라는 형식이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을 들여 관찰하고 기록해야만 만들 수 있는 도감에 누구도 관찰할 생각이 없는 엄마를 붙이니 ‘도감’과 ‘엄마’가 묘하게 충돌해 재미가 생겨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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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도감은 독자보다 많이 아는 전지적 시점으로 서술되지만 이 책은 엄마에 대해 제대로 알 리가 만무한 아기를 화자로 세웠습니다. 모든 가치를 순위로 매기는 세상에 전혀 물들지 않은 아기의 목소리와 시선을 통해 독자가 더 편안하게 엄마의 있는 그대로를 바라봤으면 했습니다. 물론 이런 철저한 계산으로 아기 화자를 가공해낸 것은 아닙니다. 엄마라는 역할은 아이를 통해서만 성립되는 것이니 계획이랄 것도 없이 처음부터 아기의 시점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죠. 매일매일을 가장 가까이 붙어 지내던 아기의 시점이 오히려 거리를 확보해준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집니다.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아이러니와 수수께끼로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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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엄마 도감』에 대한 기획을 시작한 후로 여러 번 덮었다 펼치기를 반복했으니 어쩌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를 책입니다. 엄마라는 사사로운 글감을 책이라는 공적인 공간에 펼쳐놓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덮었고, 저의 가장 취약한 시절을 다시 들추어보는 것이 불편해서 덮었고, 누가 더 약한지 아이와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아 부끄러워 덮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거리는 더 확실하게 생겨났고 엄마라는 글감이 결코 사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아한 모성 신화의 언어에 압도되어 기대에 부응하는 엄마가 되어보려고 울음을 삼키는 사람들. 괜찮은 엄마가 아니라는 생각에 자신을 미워하고 벌주고 있을 사람들. 그 시절의 저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은 하찮지 않습니다. 불완전해도 괜찮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려운 시기를 지나가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귀한 사람입니다. 존엄한 인간으로 살고 싶다고 말해도 괜찮습니다”라고요.


권정민 작가는 방송작가로 활동하다가 그림책의 세계에 이끌려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는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그림 사전』이 있습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1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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