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석이 만난 책방인 - 생각을담는집 임후남 대표
호수를 옆에 낀, 나름 큰길까지는 ‘여기 어디쯤이면 괜찮겠는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 좌회전하는 순간 ‘이건 아닌데’ 싶었고, 인적이라곤 없는 시골길을 따라 올라가면서는 ‘길을 잘못 든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3~4분 올라갔을까, 아담한 안내 간판이 보인다.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에 위치한 ‘생각을담는집’은 지난 20여 년 다닌 책방 순례 중 가장 외진 곳에 위치한 동네책방, 아니 시골 책방이었다. 웃음으로 반갑게 맞이한 임후남 대표가 한마디 건넨다.
2018년 7월 문을 연 생각을담는집은 책방 이름이면서 임후남 대표가 운영하는 1인 출판사의 이름이기도 하다. 방송사 기자로 정년퇴직한 남편은 더는 도시살이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임 대표는 잡지 편집장으로 오랫동안 일해온 터라, 귀촌한다고 마냥 한가롭게 생활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한적한 곳에 터 잡고 북카페를 하면서 작업실 겸 쓰려고 했었다. 실제로 책방 입구 오른쪽 벽면의 널찍한 서가는 임 대표가 오랫동안 탐독했던 갖가지 책들로 가득하다. 손님이 많지 않을 때면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편집 작업에 몰두한다. 손님이 오면 차 한 잔 내드리고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래서인지 책방도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뒷마당 소나무 숲에 반해서 덜컥 저지르긴 했지만, 처음 들어올 때는 걱정도 많았어요. 그런데 하루 자고 나니까 걱정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어요. 그때 생각했죠. 안 팔리면 내가 보고 싶은 책 산 거다 생각하자고 말이죠.”
이런 마음을 먹은 데는 동네책방의 현실도 작용했다. 동네책방들은 대개 현매로 책을 갖추어놓는다. 당연히 반품은 언감생심이다. 팔리지 않으면 고스란히 떠안고 가야 하는 게 현실이다. 임 대표는 떠안고 간다고 생각하지 않고 ‘나에게 선물한다 생각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겠지만 서가에 자리 잡은 책들이 한결같이 함량이 높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하루에 책방을 찾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고. 임 대표는 거리낌 없이 말한다.
“하루에 한 사람, 아무리 많아도 세 명…. 아, 주말엔 좀 많아요. 한 열 명 남짓, 대개 가족 단위 손님이 많고요.” 보이지 않게 한숨이라도 쉬려는 찰라, 더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이 외진 곳까지 찾아오고, 주인장 서운해할까 봐 책 한 권 사 가지고 가는 손님들 마음이 참 예뻐요. 저도 동네책방 처음 생길 때 구경 삼아 많이 다녔거든요. 예의상 책 한 권씩 꼭 구입했고요. 그런데 제가 책방을 하고 보니까 그런 분들이 특별한 사람이구나, 감동해요. 책방하는 즐거움을 하나씩 배워가는 중이죠.”
생각을담는집을 시작하기 전부터 임 대표는 ‘하고 싶은 일은 뭐든 하는 사람’이었다. 책방을 하고 보니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아졌다. 각종 강연을 하나둘 만든 이유다. 외진 데 누가 찾아올까 걱정이 아예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임 대표의 말이 걸작이다.
“내 집에서 강연을 듣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어차피 있는 공간, 듣고 싶은 강연과 음악회를 마음껏 기획해봐야죠.”
마침 한국작가회의의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 서점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소설가, 동화작가, 시인들을 강사로 초청할 수 있었다. 지역 문화재단과도 몇몇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2월 말에는 무작정 정혜신·이명수 선생에게 전화를 걸어 강의를 요청했다. 아무런 단체의 지원도 없는 강좌를, 단지 『당신이 옳다』에 얽힌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덜컥 전화를 했던 것이다. “참가비 만 원을 받기로 했지만, 여기까지 누가 올까 싶어 두 분 사례비는 제가 알아서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무려 65명이 책방 공간을 가득 메웠고, 정혜신·이명수 부부는 떡 한 말을 해와 수강생들과 풍성한 잔치를 벌였다. 사례비도 받지 않고 두 사람은 자리를 떴다. 책방 안 했으면 이런 기적을 어디서 맛볼 수 있을까, 임 대표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임 대표의 구상은 강좌에서 머물지 않는다. 지난 4월 중순에는 요리 교실을 열었다. 워낙 음악을 좋아하는지라 곧 크고 작은 음악회도 열 생각이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로만 구성된 작은 연주에 이미 30여 명이 다녀간 바 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생각을담는집에는 백건우 선생의 피아노 선율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생각을담는집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북스테이다. 4층 건물 중 1층은 서점, 2층은 임 대표 부부의 생활공간이고, 3층과 4층을 북스테이 공간으로 활용한다. 3층에는 세 개의 숙소가 있고, 4층에는 너른 공간이 있어 다양한 활동을 병행할 수 있다. 강연 일정에 맞춰 북스테이를 하면 일석 다조다. 함량 높은 강사의 강의를 듣고 함께 풍성한 식탁도 나눌 수 있다. 하룻밤 편하게 자고 일어나 뒷산을 가볍게 산책하고 돌아와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릴 수 있다. 북스테이를 경험한 임 대표 지인이 그랬단다. “이건 ‘문화 샤워’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북스테이를 꼭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평창대관령음악제 때문이다. 공연장과 숙소가 멀지 않아 공연장의 감동을 밤중까지 이어갈 수 있었다. 서울 등 대도시 음악회라면 집으로 돌아가는 막히는 길에서 그 감동을 모두 쏟아놓을 게 뻔하다. 하지만 생각을담는집에서의 하루라면, 비록 근사한 음악회는 아닐지라도 편한 마음으로 책과 음악을 즐기고, 그 여운까지 잡을 수 있다. “공간이 있으니까 뭘 할까 고민해보는 거죠. 그냥 두면 뭐하겠어요. 오는 사람 기다리면서 있을 순 없잖아요.”
그렇게 말하지만 임후남 대표는 조심스럽다. 대개의 동네책방이 임대료 때문에 힘들어하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동네책방 창업이 한때의 바람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어찌 보면 생각을담는집도 여전히 출발선에 서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오지와도 같은 책방을 찾는 이들은, 책방을 냈다는 소문을 들은 지인들이 대부분이고, 그들의 손에 이끌려 온 이웃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즐거워요. 안부를 묻기 위해 찾아온 이웃과 음식을 나누고 음악을 듣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모두요.”
도심의 답답함을 떠나 한나절이라도 책 한 권과 찬 한 잔의 여유, 잔잔한 음악의 향연에 몸을 맡기고 싶다면 생각을담는집을 권한다. 그곳에서 인심 좋은 임후남 대표가 기다리고 있다.
장동석_출판평론가, 『뉴필로소퍼』 편집장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19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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