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책 읽는 즐거움이 있는 곳, 책방산책

장동석이 만난 책방인-책방산책 홍지연 대표

by 행복한독서
직장 다닐 때 막연하게
‘마흔 되면 헌책방 해야지’
라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인천 배다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답다고 해야 할까. 인천시 계양구에 위치한 ‘책방산책’ 홍지연 대표가 스스럼없이 웃으며 책방산책을 시작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인천 배다리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홍지연 대표는 어려서부터 책이 좋았다. 지금이야 겨우 헌책방 골목이라는 이름으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지만, 홍 대표 어릴 적에는 새 책 총판도 몇 곳 있을 정도로, 책으로 시작해 책으로 끝나는 곳이었다. 당연히 놀 데가 거기밖에 없었다. 한여름 이곳저곳 다니다 보면 책방 아저씨들이 시원한 물도 주었다. 한글을 깨친 후로는 파본 책 한 권씩 줄 때도 있었다. 그 재미에 배다리 골목을 여기저기 누볐고, 대학 다닐 때는 책방에서 아르바이트를, 직장 다니면서는 ‘마흔 되면 헌책방 해야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책방산책의 시작은 2016년 9월이 아니라, 이미 홍 대표 어릴 때부터 시작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홍지연.jpg


홍지연 대표는 아이가 네 살 때인 2012년 인천 계양에 터를 잡았는데, 그곳에서 공동육아를 했다. 어쩌다 보니 ‘경단녀’가 되었고, 더 이상 사회생활은 못하겠다고 생각했을 때 ‘진짜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활동을 하고 있었고, 책방을 하면 책과 아이들을 함께 만날 수 있겠다 싶었다. 서울도서관에서 책방 관련한 강좌도 듣고,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도 여러 번 가봤다. 애초에는 헌책방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 반응은 똑같았다. “왜 책방을 하려고 그래?” “임대료 감당 못한다.”


헌책방 하려고 오랫동안 알아본 끝에 지금 자리가 눈에 띄었다. 바로 앞에 놀이터가 있는 게 가장 좋았다. 마을공동체운동도 함께하고 있던 터라 이곳이 제격이었다.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면 무엇이든 내 역할이 있겠거니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동육아를 함께하던 사람들은 “책방 하려면 빨리 하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2016년 9월 문을 열게 되었고 공동육아, 마을공동체, 마을학교를 함께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제 제법 친밀해진 이웃들이 책방의 단골들이다.

그 단골 중 단연 일등은 아이들이다. 책방산책을 방문한 날은 뜨겁다 못해 따가운 한여름 햇볕이 내리쬐는 날이었는데, 35도의 더위를 피해 책방으로 피신한 두 소년이 재잘거리며 책을 읽고 있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연신 웃음이 만발하던 두 소년은 시원한 물 한 컵씩 마시더니 다시 뙤약볕으로 뛰어들었다. 책방산책 홍지연 대표가 소년들을 바라보며 한마디 덧붙인다. “요즘 같은 때는 찬물 준비해놓는 게 일이에요. 놀이터에서 뛰놀다가 물 찾으러 제집처럼 들어오거든요.”


제집 화장실처럼 드나들고 냉장고 찬물도 저희들 것이지만 홍 대표는 “아이들도 눈치는 있다”고 말한다. 손님이 있으면 말소리도 조금 줄일 줄 알고, 다른 아이들 위해 물도 조금 남길 줄 안다. 그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홍 대표는 “내가 돌보는 게 아니라 애들이 나를 사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단다. 속 모르는 사람들이 “사회사업하냐”며 속을 긁을 때면 힘이 빠지지만 “아이들 보면 마음이 다시 유해진다”고 홍 대표는 말한다. 아이들도 홍 대표의 진심을 조금은 안다. “여기저기 가봤는데, 여기가 제일 낫대요. 책을 사든 안 사든 대접해서 좋다나요. 그런 아이들 때문에 책방 하는 거죠.”

책방산책.jpg 아이들이 제집처럼 드나들고 이웃들과 함께 읽고 책 이야기 나누는 인천의 마을 책방, 책방산책. 일러스트 정인하


시작 때는 홍 대표의 바람대로(?) 헌책이 많았다. 부부의 책이 대부분이었고, 신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헌책 중에는 여기저기서 기증받은 책도 많았다. 단골이 생기고 그들이 필요한 책을 주문하면서부터 새 책을 조금씩 늘려나갔다. 지금은 새 책 비중이 조금 높은 편이고, 늘리는 중이다. 아이들이 언젠가는 ‘자기 구매’를 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발길해서인지 엄마·아빠, 할아버지·할머니도 책방산책을 자주 찾는다. 할아버지·할머니는 헌책 향수가 있어서 그런지 오실 때마다 한 권씩 꼭 사 가신단다.

홍 대표는 책방산책이 “마을 공유 공간으로 쓰임새도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지난해 1월에는 책방 앞 놀이터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마련하기 위해 강좌를 열기도 했다. 10주간 함께 읽은 ‘『열하일기』 완독클럽’도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 주민 독서 모임을 정기적으로 열 수 있다는 일종의 자신감인 셈이다.


호응이 좋은 ‘새벽 책방’도 더 자주 해보려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 이상, 자발적으로 동의한 아이부터 어른까지가 대상이다. 자발적으로 동의한 아이들만 대상으로 한 이유는 익히 아는 대로다. 엄마, 간혹 아빠 손에 이끌려온 아이들은 스스로도 힘들고 주변 사람들도 힘겨울 수밖에 없다. 새벽 책방은 완독의 즐거움이 있는 시간이다. 옆에 있는 친구들이 책을 읽으니 본인도 읽을 수밖에 없다. 3시간 동안 꼼짝도 안 하고 책을 읽는 아이들이 있는데, 가끔 “분위기 때문에 꼼짝 못 하고 있었다”고 고백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새벽’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11시까지만 했는데, 이제 1시까지로 늘렸다. “처음 새벽 책방 했을 때 자주 오던 고등학생이 그러는 거예요. ‘10시에 학교 끝나고 2시간만 책 읽고 가려고 했는데’라고요. 그래서 1시까지로 늘렸는데, 그 친구는 이번에 안 왔어요.”


즐거움이 가득한 것 같지만 어려운 점도 있다. 재정적인 문제가 나오리라 생각했는데 홍 대표는 ‘혼자서 일하는 어려움’만 이야기했다. 문 닫고 내 일 해야 할 때, 공적인 일이라도 할라치면 주변 사람들이 한마디씩 한다. “어디 아프냐?” “왜 맨날 문 닫냐, 장사는 언제 할 거냐” “왜 이렇게 늦게 문 여냐” “왜 이렇게 일찍 문 닫냐” 등등. 단골들, 특히 아이들 학교 보내고 잠시 여유로운 시간에 책방에 오고 싶은 엄마들에게는 미안함이 가득하다. 보통 저녁에 손님이 많이 와서 2시에 책방 문을 열기 때문이다. 홍 대표는 “좀더 잘해서 아르바이트라도 쓰고 싶다”고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3년쯤 되고 보니 홍 대표도 여유가 좀 생겼다. 작은도서관 납품도 작지만 시작했고, 이제는 이런저런 공모 사업도 해보려고 한다. 종종 후원하겠다는 분들이 있는데 “그거 말고 선결제 해줘요”라고 말할 여유도 생겼다. 여전히 벅찰 때가 많지만 “책 읽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 그들이 주문하는 책을 보면서 몰랐던 존재를 알게 되는 일, 그런 책들을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일이라 즐겁다”고 말한다. 책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늘려가며, 100명 단골이 곧 생겨나길 기원하며 책방산책의 문을 나선다.


장동석_출판평론가, 『뉴필로소퍼』 편집장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19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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