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준비된 책방, 조은이책

장동석이 만난 책방인 - 조은이책 조은희 대표

by 행복한독서

큰길에서 골목으로 들어서자마자 ‘조은이책’이라고 적힌 정갈한 간판이 보였다. 골목 저쪽은 어스름이 짙어가는데, 책방만은 환한 빛을 골목까지 내비쳤다. 조은이책 조은희 대표. ‘책밥’ 좀 먹은 사람이라면 다 아는 베테랑 편집자이자 기획자인 그이가 서울 성산동에 책방 문을 연 건 올해 1월 15일. 그러고 보니 올해 1월 어느 날인가 몇몇 지인들과 저녁을 먹다가 “조은희 대표가 책방 문을 열었다”고 해서 무작정 찾아갔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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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희 대표는 ‘출판사 그만 두면 책방을 해야지’라고 오랫동안 생각했다고 한다. 물론 출판사를 하려고도 생각해봤다. 비교적 큰 출판사를 거치면서, 비록 스트레스는 많았지만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재미와 기쁨을 맛본 터였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독립해야 할 시기를 놓친 측면도 있고, 한편으로는 ‘독립할 용기’를 내지 못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책방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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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관련한 일은 두루 해봤지만
‘잘 만들어진 책’을 독자에게 직접 파는 일을 해보지 못했으니
그게 좋겠더라고요.


책방 문을 열고 그곳을 사무실 삼아 전문인 출판 기획을 해야겠다고도 생각했다.


책방을 생각한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조 대표의 취미 중 하나가 책, 특히 그림책과 관련한 캐릭터들을 수집하는 일이다. 국내 캐릭터는 물론이고 해외에 나갈 때마다 사들여온 그림책 캐릭터들이 집을 점령할 태세였다. 20년 넘게 수집한 그림책 캐릭터들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예전에는 ‘애들도 아니고 어른이 무슨 인형을?’ 이런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마니아의 시대 아닌가. 거기다가 그걸 공유하는 데 책방만큼 좋은 곳이 또 있으랴. 집 곳곳에서 숨죽여 지내던 캐릭터들이 책방 시작과 동시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실제로 그림책과 잡지가 진열된 방의 서가 곳곳에는 인형은 물론 각종 캐릭터 관련 장식품들이 자리 잡고 있다. 조 대표는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캐릭터인 미피 인형과 관련한 그림책을 보여주며 사람 좋게 웃는다. 흥미롭게도 그 미피 인형이 양손에 붓과 팔레트를 들고 있고, 옷은 고흐의 「아몬드꽃」 그림으로 장식되어있다. “오래 전부터 출판 콘텐츠는 종이에만 머물지 않고, 요즘 말로 ‘콘텐츠 융복합’을 하고 있었어요. 우리가 잘 몰랐던 것뿐이죠.” 책방을 방문하는 여러 사람들이 캐릭터들도 팔라고 요청하지만 팔 수는 없다. 조 대표의 손때가 묻은 애장품이기 때문이다. “다시 사러 갈 수도 없고, 그런 분들에게는 눈으로만 호사를 누리십사 권해요.”

캐릭터를 수집한 일부터 시작하면 조은희 대표의 책방 준비는 20년이 훌쩍 넘는다고 봐야 한다. 해외 출장 때마다 책방 탐방을 다녔는데 “사심 담아 서점을 둘러본 것은 10년 정도”라고 말한다. 탐방에 그치지 않고 여러 곳에 세계 책방 이야기를 풀어냈다. 지난해에는 『기획회의』에 ‘서점 탐험가’라는 타이틀로 1년간 세계 곳곳의 서점을 소개했다. 단지 소개에 머물지 않고 독자와 어떻게 유대를 쌓아가는지, 나아가 도시와 어떻게 상생하는지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연재 마지막에는 욕심을 조금 더 부렸다. 상하이에서 콘텐츠 사업을 하는 후배에게 요청해 중수거(鐘書閣), 다인수쥐(大隱書局), 헝산허지(衡山和集) 등 서점 세 곳의 대표나 매니저들의 인터뷰를 잡아달라고 미리 부탁하고는 상하이로 날아갔다. 조 대표는 그중 옛 프랑스 조계지를 문화 지역으로 탈바꿈시킨 헝산허지 서점이 우리에게 시사점이 많다고 했다. 낡은 술집 거리에 있는 옛 별장 네 곳을 리모델링했는데, 서점을 중심으로 전통 의류 디자이너숍, 남성 전문 라이프 스타일 편집숍 등이 자리를 잡았다. 헝산허지 서점은 상하이시로부터 부지를 임대해 새로운 형태의 문화 클러스터를 만들어냈다. 조 대표는 “책방에서 시작된 변화가 동네 하나를 바꾼 것을 보고 놀랐다”면서 “조은이책도 성산동에서 그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은근히 피력했다.


조은이책.jpg 세계 책방을 탐방하며 20여 년간 수집한 그림책 캐릭터가 서가 곳곳에 장식된 성산동 동네책방 조은이책. ⓒ정인하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지자체가 이런 일들을 아직은 보여주기식 사업으로만 생각할뿐더러, 조은이책이 그 변화를 담아내기에는 아직 시작점에 서있을 뿐이다. 문화 클러스터가 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거의 모든 작은 동네책방이 그렇듯 책을 받기도 어렵고 팔기도 어렵다. 거의 모든 책을 현매로 거래해야 하는 어려움, 그마저도 제때 받기 어렵다는 건 책방으로서는 치명타다. 동네책방의 어려움을 아는 사람들이 한두 권 구매해주는데, 열흘을 기다려야 책을 받을 때도 있다. 조 대표는 “대개의 책방 주인들이 그런 경험이 있겠지만, 온라인서점에 주문해서 독자에게 전달한 일도 있다”면서 웃는다. 책 팔아서 책방 유지하는 건 언감생심, 하루에 책 한 권 팔리지 않는 날이 많다.


조은희 대표는 출판 생태계에서 계속 일하고 싶은 마음이다. 언젠가는 지금 대표로 있는 출판사에서도 물러날 텐데, 그래도 조은이책을 통해서 출판 생태계에서 계속 일하려고 한다. “비록 작지만 책방이라는 공간에서 저자와 출판사가 이어지고, 독자들이 한껏 지식과 지혜를 충전할 수 있다고 믿어요. 어려움을 알면서도 시작한 이유도 거기 있고요.”


조은이책이 지금 터에 자리 잡은 것도 그런 이유다. 다소 외진 동네지만 젊은 세대가 비교적 많고 그이들이 서서히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초기에는 “여기서 책방을 한다고?”라는 의아함과 호기심, 걱정의 눈초리가 주였다면, 지금은 그래도 한두 사람씩 출입을 시작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책은 사지 않더라도. 상암동에 직장이 있는 이들 중에는 퇴근길에 일부러 들러 책을 구경하고 한두 권씩 구매하는 이들도 있다. “초기에는 책이 한 권도 안 나가면 내가 사기도 했는데 이제는 좀 덤덤해졌어요. 일부러 찾아오시는 분들 보면서 저도 힘을 좀 내는 거죠.”


지금까지는 그랬고, 앞으로는 어찌할 계획이냐고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그이의 성정을 닮았다.

“한두 해 하고 말려고 시작한 거 아니니까 10년, 20년 길게 보고 일해야죠. ‘책 읽어주는 할머니’ 되는 게 제 꿈이었어요.”

책 읽어주는 할머니가 되기 전에도 할 일은 많다. 외국인들이 한국책을 보면서 한국을 좀더 깊이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중장기적인 목표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언제든 드나들며 책을 보면 좋겠다. 이런 생각들이 영글면서 책방도 더 단단해지리라 그이는 믿고 있다. 조은이책 문을 나서며, 오랜 인연에 감사하게 된다. 든든한 선배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는 안도감이 조은이책에서 뿜어져 나오길 기대한다.


장동석_출판평론가, 『뉴필로소퍼』 편집장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19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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