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얼굴을 한 책방 피스북스

장동석이 만난 책방인 - 피스북스 김소희 대표

by 행복한독서

10대 중반에 한 수도원에 들어가 70년 넘게 한 번도 문밖출입을 하지 않고 용맹 정진한 수도사가 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 첫머리를 장식한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라는 말로 유명한 이, 바로 15세기에 활동한 교부 토마스 아 켐피스다. 생각해보면 그에게 책이 있는 구석방은 ‘평화’의 다른 말이었을 것이다. 번잡한 세상사를 잊고 책의 세계에 안온하게 몰입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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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 독서당로에 위치한 ‘피스북스’는 이름처럼 평화를 추구하는 작은 책방이다. 하지만 피스북스의 평화는 작고 아담한 구석방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화를 더 적극적으로 품음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함께 지향해야 할 그곳을 바라보는, 외려 세상을 품은 큰 책방이다.

‘전쟁을 극복하는 평화, 갈등을 화해하는 평화, 다름을 인정하는 평화, 일상을 담아내는 평화’

라는 피스북스의 지향이 어쩌면 모든 걸 말해주는지도 모른다.


피스북스는 한국과 베트남의 아픈 과거사를 극복하고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하자는 취지로 설립된 한베평화재단의 지원으로 2018년 10월에 문을 열었다. 하지만 산하단체가 아닌 주식회사로 시작했다. 단지 책방에 머물지 않고 평화의 더 다양한 측면을 담아내기 위해서다. 대표는 어린이도서관 ‘책읽는엄마 책읽는아이’를 18년 동안 꾸렸던 김소희 씨가 맡았다. 피스북스가 지향할 세 가지 큰 그림을 그린 사람이 바로 김소희 대표다. 김 대표는 “생존을 위한 모색을 끊임없이 하겠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의 혹은 사람들 사이의 평화 감수성을 높이는 일”이 피스북스의 첫 번째 목적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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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북스의 중심은 평화를 담은 책들, 그리고 책 이야기로 소박하게 모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평화책방’이다. 평화라는 주제에 충실하고 보편적 이해를 돕는 책들이 서가를 채우고 있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간다. 평화란 단지 전쟁이 없는 안온함이 아니라 일상에서 겪어내야 하는 “팽팽한 긴장”이기도 하다. 결국 낙태나 최저임금, 페미니즘, 소수자, 약자 등의 문제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즉 다름을 이해하는 방식을 이야기하는 것도 평화의 할 일이다. 살펴보니 이 같은 이해를 돕는 책들이 서가를 오밀조밀하게 채우고 있다. 김 대표는 “일상에서 한마디 대화조차 어려워진 시대이기에 더더욱 평화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면서 “피스북스의 책들이 그 길잡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책방 한가운데를 차지한 ‘평화마켓’도 피스북스를 이루는 한 축이다. 누구나 생산을 경험하고, 스스로 소비를 경험하는 작은 시장인 평화마켓은 작은 공동체들의 연대를 통해 무엇이든 독점되지 않고 순환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공간이다.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개인의 창작품들은 내가 생산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경험케 하고, 한편으로는 자잘한 일상 경험을 통해 연대한다는 것, 궁극적으로는 평화를 몸소 배우게 하는 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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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마켓은 피스북스의 세 번째 축인 ‘평화여행’과도 잇닿아 있다. 현재 구상 중인 평화여행 프로그램 중에 ‘미얀마 연대 기행’이 있는데, 전쟁고아 등을 보살피는 현지 학교와 연대해 그곳에서 생산한 상품을 들여올 예정이다. 연대 기행 여행자들은 자기 돈을 내고 현지에 가서 간단한 손 기술 등을 가르치고 그렇게 생산된 작은 생산품들을 피스북스에서 다시 판매할 예정이다. 생리대 같은 상품은 현지 여성들의 위생을 개선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베트남 평화기행과 기억과 추모 여행, 조선 난민사를 찾는 여행도 속속 진행 중이다.


피스북스는 “평화를 탐하고, 논하고, 쟁하여” 우리 삶에 혁명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카데미도 함께 시작했다. 평화활동가를 세우는 4학기 전문가 과정인 ‘평화아카데미’는 성공회대에서 평화학을 가르치는 이대훈 교수가 교육위원장을 맡았다. ‘평화’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는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실무 위주의 교육 커리큘럼을 제공할 예정이다. 김소희 대표는 “인생을 전문 활동가로 살려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실무적 교육, 그리고 평생 지원이 가능한지 평화 아카데미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논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평화인문학, 평화특강 등 다채로운 강좌와 만남들이 아카데미를 통해 상시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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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일하는 사람은 김소희 대표를 포함해 상근자가 3명, 반상근자가 1명이다. 이들이 모든 일을 할 수 없어 평화마켓, 평화여행, 평화아카데미 등 각각의 사업마다 기획위원단을 꾸리고 있다. 김소희 대표는 청소년과 대학생들이 평화여행에 참여해 평화 감수성을 높이고, 자신들의 재능을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은근하게 내비쳤다.

사실 피스북스의 위치를 처음 들었을 때 ‘4층?’이라는 부정적 반문이 앞섰다. 몫 좋은 곳에 있는 작은 책방들도 여러 가지 사정을 견디지 못해 문을 닫거나 규모를 줄였다. 그런데 4층이라니. 김소희 대표는 “주제가 있는 책방이고 평화를 사랑하는, 요즘 말로 ‘평화 덕후’들이 초기에 드나들고 있어 4층이라는 공간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피스북스를 기획하고 대표를 맡아 동분서주하는 김소희 대표는 스스로의 역할을 “초기 세팅을 잘해 두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18년 넘게 어린이도서관 ‘책엄책아’를 맡아 일하면서 개인의 것이 아닌 공공의 영역으로 확대·발전하기를 바랐던 것처럼, 피스북스도 애초 시작이 그러하듯 공공의 영역에서 온전한 터를 이루기 바란다.

어쩌면 한베평화재단이 모태이기 때문에 여느 작은 책방, 혹은 동네책방보다 여유로울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은’ ‘동네’ 책방이라는, 하여 일상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은 비슷한 처지다. 책방이 제 기능을 해야 위에 열거한 마켓, 여행, 아카데미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김소희 대표의 바람처럼 피스북스가 2년 후에는 사람들의 눈에 더 잘 띄는 1층에 터 잡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평화의 감수성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권한다. 피스북스를 한 번쯤은 찾아가 평화의 얼굴로 웃어달라고.


장동석_출판평론가, 『뉴필로소퍼』 편집장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19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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