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 특성화 책방3 - 여행책방
코로나 이전의 시대는 여행이 일상이었다. 나도 연휴와 휴가 때마다 되도록 멀리 떠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코로나로 여행은 멈추었다. 대형 여행사들의 2분기 매출은 지난해 2분기에 비해 70퍼센트 넘게 줄었고 국가의 경계는 단단히 막혔다. 그런 현실에도 모두가 다시 여행을 꿈꾼다. 과거의 여행이 소비 중심이었다면 이제 여행은 가치 중심으로, 소규모로 변화할 것이다. 동네 여행이 뜨고 동네 소비가 늘 것이다. 그리고 동네 여행의 중심에 특성화 책방들이 있다.
특성화 책방 중엔 여행을 주제로 한 여행책방이 많다. 대부분 여행책방 운영자는 책과 여행 모두를 좋아해서 시작했다고 말한다. 책과 여행은 닮았기 때문일까. 책방이 여행과 닮아있기 때문일까. 여행책방을 찾는 손님들 역시 마찬가지다. 여행을 좋아하는 개인은 자신을 표현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며 독립출판물이나 작은 책방에 관심을 가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개성 있는 여행책방 몇 곳을 소개하면, 서울 연남동 골목 안에 있는 ‘여행책방 사이에’는 도시를 주제로 한 여행 에세이와 인문서를 주로 다룬다. “왜 여행책방이라 이름 붙이셨어요?”라는 질문에
라고 답하는 운영자는 어린이 출판 일을 함께하고 있다. 여행책방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이에는 사람들과 함께 책방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도쿄 책방 여행, 대만 책방 여행은 물론 치앙마이 카페 여행, 베트남 쌀국수 여행 등 작가와 함께 특별한 여행을 떠나고, 책방에선 여행작가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팟캐스트와 유튜브도 진행한다.
또 다른 책방은 충무로 근처 스페인이 그리워 차린 ‘스페인책방’이다. 스페인 사진집과 여행 에세이를 꾸준히 펴내던 독립출판 제작자 커플이 연 책방이다.
“사무실이 혼자서 일하는 공간이라면, 책방은 사람을 만나는 공간이잖아요. 책을 만드는 일도 너무 좋고 재미있는데, 책을 만들고 나서 가장 좋은 건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어요. 다른 제작자를 만나고, 알아가고, 이야기 나누고, 또 다른 일을 꿍꿍이하고. 그런 것들이 너무 좋아요.”
스페인이라는 명확한 테마가 있는 책방이라 스페인을 좋아하거나 여행을 다녀왔거나 준비 중인 사람이 많이 찾는다. 스페인과 관련된 책을 중심으로 소개하며 관련 모임을 연다.
이 외에 여행작가가 운영하는 ‘새벽감성1집’과 관악구의 여행책방 ‘여행마을’, 외국인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경복궁 옆 ‘서울셀렉션’ 등이 있으며, 전국 곳곳에서 여행책방이라는 이름으로 운영 중이다.
그리고 여행책방이라 이름 붙지 않았지만 여행책방과 결이 맞닿은 책방도 많다. 필자가 운영하는 ‘책방 연희’는 도시인문학서점으로 국내외의 도시, 동네 책을 주로 다룬다. 도시를 이야기하며 여행을 빼놓을 수 없기에 여행책도 많다. 서울, 제주, 경주와 같이 여행자가 많이 찾는 도시는 물론 충주, 영월, 춘천, 대전 등 여행지와 일상생활지로 도시와 동네를 여럿 소개하고 제주, 경주, 서울의 동네를 기록하는 출판물과 지도를 직접 만들기도 한다.
또한 서울시에서 운영 중인 ‘서울책방’은 서울의 모든 것을 소개한다. 책방 이름만큼 온통 서울인 책방으로 서울의 과거, 현재, 미래 혹은 여행, 역사, 관광, 건축, 미술, 문화, 환경, 자연, 축제, 주거, 책방, 시장, 문화재, 스포츠 그리고 사람까지. 서울의 다양한 주제는 물론 서울역사편찬회, 서울연구원,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서울시 산하단체에서 발행한 자료집과 도록을 유일하게 구매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고즈넉한 서촌에 자리한 ‘역사책방’은 역사 전문 책방으로 역사와 관련한 국내외 도서를 다루고 서울의 곳곳을 함께 답사하고 여행한다. 이번 5~6월에도 서촌 답사와 백제의 길을 따라, 장충단 공원 산책, 정동 답사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반나절 여행으로, 서울과 역사를 알아가는 코스로도 제격이다.
이 외에도 속초, 제주 등의 여행지에서는 책방 방문 자체가 여행으로 여행책방의 또 다른 기능과 역할을 톡톡히 하는 곳이 많다. 최근 젊은 세대는 책방 한두 곳은 꼭 여행 계획에 넣고 책이나 책방에서 판매하는 굿즈를 기념품 대신 구매하는 일이 늘고 있다. 한 예로 국내 서핑의 성지 양양에는 영화감독이 운영하는 서핑책방 ‘파란책방’이 있다. 파란책방은 서핑을 즐기러 온 서퍼들을 위한 책방으로 서핑 후 책과 음료를 즐길 수 있다. 서핑과 바다에 관련한 책과 헌책이 있고, 책방 안에서만 열람 가능한 책이 있다. 책방 앞마당에는 캠핑 온 것과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캠핑 의자가 놓여있고 종종 캠핑 의자 사이 모닥불이 피어난다.
여행책을 소개하고 나누는 일에서 벗어나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여행책방. 이제 여행책방으로의 여행을 통해 새로운 여행을 준비할 시기다. 여행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전과는 다른 여행으로 여행의 장소, 시기, 방법이 변할 것이다. 관광지 훑기와 SNS 보여주기식 여행이 아닌 개인 경험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여행, 남들과는 다른 소규모로 개인에 맞춰진 여행이 증가할 것이다. 어쩌면 여행책방의 여행 콘텐츠와 프로그램이 여행 문화의 변화를 이끌지 모른다.
구선아_책방 연희 대표, 『퇴근 후, 동네 책방』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0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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