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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Mar 08. 2022

당신의 연약함이 특별함이다

동네에서 만난 작가 2 - 정아은

소설가에게는 실례되는 말이지만, 정아은 작가의 독서 에세이가 흥미로워 뒤늦게 등단작까지 내리읽었다. 시작은 『엄마의 독서』였다. 전업주부, 페미니즘 같은 트렌드에 맞추었나 지레짐작하다 소름이 돋았다. ‘이렇게 솔직하게 글을 쓰는 작가가 있구나’ 하고 많이 놀랐다. 등단하려 애쓰던 무렵 질투 때문에 다른 작가의 글을 읽을 수 없었던 이야기, 남편의 한마디에 폭발해 집 밖을 서성이다 돌아오니 둘째가 어두운 거실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사연을 읽으며 독자로서 함께 울었다.


이 책을 후배에게 소개하며 ‘엄마의 분노’를 알고 싶다면 읽어보라고 권했더랬다. 시간이 흘러 또 한편의 독서 에세이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을 읽고는 다시 놀랬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원망하고 분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시스템을 탐구하는 길로 성큼 나아가 있었다.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은 말하자면 그 공부의 기록이다. 이 책에서 언급한 도서는 그 자체로 훌륭한 레퍼런스다. 심지어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궁금하도록 만든다.


정아은 작가는 2013년 『모던 하트』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고 이후 2015년 『잠실동 사람들』을 펴냈다. 두 권의 소설은 구태여 따지자면 세태소설이랄까, 흡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았다. 대단위 아파트 단지에서 만날 법한 일군의 여자들, 부자 동네에 기생하듯 없이 사는 사람들, 똑떨어지지만 재수 없는 후배, 대학 간판을 우려먹으며 사는 무기력한 남자 등을 통해 휩쓸리듯 떠밀려 살아가는 우리 삶의 한 단면을 그려냈다. 세심한 관찰로 직조해낸 인간 군상이 너무나 생생해 단번에 겪은 일인듯 현실감을 안겨준다. 작가에게는 재능이 분명하지만 관찰의 대상이 된 누군가에게 본의 아닌 아픔을 주었다. 겁 없이 소설을 써낸 성취감만큼 대가를 치러야 했다. 두 권의 소설을 펴낸 후 정신과 치료든 심리 상담이든 도움이 간절했다. 그러나 상담 치료는 비싸고(회당 최소 15~30만 원), 시간이 많이 필요한 일이다. 상담을 받더라도 돈에 신경이 쓰여 집중하지 못하리라는 걸 깨닫고 정 작가는 돌연 철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래, 철학을 공부하자

상처로부터 도피하고 싶었고, 몰두할 대상이 필요했다. 푸코, 랑시에르, 들뢰즈를 만나 삶의 문제를 직시했고 고병권 선생의 마르크스 강의를 들으며 눈을 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공산주의 선동 책자가 아니었다. 자본주의가 저지르는 인간 억압의 문제를 다룬 책이었다. 우리 삶과 직접적으로 관계되었다는 점에서, 실용서도 이런 실용서가 없었다. 선동가 마르크스를 만나자 그동안 바싹 엎드려있던 약자의 말들이 기어 나왔다. 엄마로 불리며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말들에 불이 켜졌다. 엄마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언제든 불려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 원고 마감을 하다가도 가족들이 “엄마, 밥이 없어!” 하면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간다. 엄마는 조건 없이 헌신하는 존재라고 배웠기에 엄마로 사는 일이 귀찮고 짜증이 나면 바로 죄책감이 따라온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조건 아래 엄마는 날마다 자신을 제물로 삼으며 괴로워한다. 마르크스가 엄마의 빗장을 열어젖혔고, 기다렸다는 듯 펄떡거리는 날것의 말들이, 약자의 말들이, 엄마의 말들이 쏟아졌다.


『엄마의 독서』를 쓰며 정 작가는 글쓰기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미처 깨닫지 못한 마음의 본질을, 자신을 옭아매는 쇠사슬의 정체를 인식했다. 글을 써서 그 형벌로부터 놓여날 수 있었다. 흔히 말하는 치유적 글쓰기다. 『엄마의 독서』를 펴내고 만난 독자 중에는 대뜸 정 작가를 붙잡고 우는 여성들도 있었다. 모성 신화를 건드리면 주홍글씨의 낙인을 받고, 주리를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여성에게 있다. 그들이 책을 읽고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고 안도감과 해방감을 느낀 때문이다. 이렇게 독자에게도 치유적 읽기가 일어난다.『엄마의 독서』는 자연스레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을 낳았다. 이로써 『모던 하트』의 학벌, 『잠실동 사람들』의 교육, 『엄마의 독서』의 모성 신화,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의 자본주의 탐구라는 연결고리가 한 매듭을 짓는다. 결국 한 사람을 오래 아프게 했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소설과 에세이가 되었다.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을 읽다 보면 자주 작가의 독백과 마주한다. “이제야 내가 뭘 알게 되는구나!” 같은 말들인데, 처음 글자를 읽게 된 사람처럼 한 세계를 만날 때 방언처럼 터지는 말들이다. 읽기의 탄성이다.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의 가장 큰 매력은 성별분업을 페미니즘이 아닌 마르크스의 시각으로, 즉 돈의 위력으로 풀어낸 점이다. 오늘날 여성의 지위 향상은 솔직히 여성운동보다 자본주의 발전이 가져온 것이라는 통찰, 돈 앞에 가부장제조차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는 엄혹한 진실에 다다르면 등골이 서늘하다. 가족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노릇을 해야지 싶다가도 “오늘 뭐 먹어?” 소리가 들리면 와락 짜증이 나는 이율배반적인 마음은 나쁜 엄마라서가 아니었다. 자본주의는 노동자와 자본가 그리고 식민지와 여성 같은 재생산자가 있어야 굴러간다. 값싼 노동력을 제공받기 위해 집안일과 양육을 담당할 사람이 필수적이다. 자본주의는 가정주부라는 신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정아은이 쓴 두 권의 독서 에세이는 한 개인의 독서록이자, 훌륭한 읽기 선생이다. 읽기는 앎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혹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고도 시작할 수 있다. 그 어느 때라도 책은 독자에게 불쑥 질문을 던진다. 책을 거울삼아 삶을 되돌아보면 왜 그런지 잘 모르고 당위로 받아들였던 일들의 실마리를 천천히 잡을 수 있다. 언제나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문제에 천착하여 맹렬히 읽고 썼던 한 사람의 분투가 이런 보편적인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우리들의 읽기도 이와 같아야 한다.

정아은 작가는 어릴 때부터 늘 단점으로 지적받던 일들이 소설가가 되고 보니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처음부터 자본주의의 실체를 알겠다고 덤빈 것도, 잔다르크처럼 신의 소명을 받아든 것도 아니었다. 이대로 살 수 없어 많은 밤들을 소리 죽여 울었던 가장 나약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약하디 약한 우리들, 그 약자성만이 우리의 특별함이다.


한미화_출판 칼럼니스트, 『동네책방 생존 탐구』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1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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