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서 만난 작가 4 - 조오
경기도 군포 금정역 근처 ‘터무니책방’을 다녀왔다. 동네책방 주인의 인터뷰 때문이 아니라 그림책 『나의 구석』을 펴낸 조오 작가를 만나러 간 길이었다. 작업실이나 편한 장소에서 보자고 했더니 터무니책방을 말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그림책작가이자 책방 주인으로 일하고 있을까?’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터무니책방은 ‘온 세상 마을 속에 창조되는 공감문화’를 내세운 밸류브릿지 문화기업에서 운영한다. 조오 작가는 책방 주인은 아니지만 책방에서 일한다. 어쨌거나 작가들이 운영해 워크숍과 전시가 가능한 색다른 콘셉트의 책방 구경과 작가 인터뷰를 동시에 했다.
어른들과 『나의 구석』을 함께 읽은 적이 있다. 그림책을 덮자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다. “이름이 조오예요? 본명인가요?”라는 질문부터 “그림책의 주인공이 까마귀인데 혹시 조오의 오는 까마귀오(烏)를 쓰는 걸까요?” 등등. 나 역시 상상과 질문을 품고 작가를 만났다.
역시나 조오는 필명이었다. 대학 때 한 친구가 그를 “어이, 까마귀!” 하고 불렀다. 나중에는 돌림노래처럼 친구들이 모두 그를 ‘까마귀’로 칭했다. 어느 날 ‘내가 왜 까마귀지?’ 하는 궁금증이 들어 친구에게 물었다. “친구야, 왜 날 까마귀로 불렀어?” 그랬더니 “내가 시작했다고? 기억도 안 나는데, 그냥 너는 처음부터 까마귀였던 거 아냐?”라고 답했다. 조오 작가는 우연한 까마귀다. 우연도 쌓이면 필연이 되는 법.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고 까마귀를 떠올렸다. 이때부터 까마귀는 작가의 분신이자 아바타이자 요즘 유행하는 ‘부캐’가 되었다.
첫 상업 그림책인 『나의 구석』 이전에 그는 두 권의 독립 그림책을 먼저 출간했다. 『까막별 통신』과 『안녕, 올리』다. 당연히 까마귀가 등장하고 친구인 올리가 나오고 까막별이라는 미지의 공간을 배경으로 삼았다. 이어 출간한 『안녕, 올리』는 친구 올리가 떠난 후 혼자 남겨진 까마귀의 이야기다. 줄거리가 이어진다기보다는 배경과 주인공 그리고 감정이 연결된다.
독립출판물과 상업출판은 점차 경계가 흐릿해지고 있다. 『당근 유치원』 작가인 안녕달처럼 시작은 독립출판이었으나 상업출판으로 성공한 작가들도 생겨났다. 독립출판물이 상업출판물로 재출간되기도 한다. 혹시 두 권의 책을 상업출판으로 재출간할 의향은 없는지 물었다.
거칠게 말하자면 독립출판물은 자비출판이다. 다르다면 작가가 제작까지 책임진다는 것. 대신 작가가 마음껏 쓰고 싶고 그리고 싶은 대로 표현할 수 있다. 다듬어지지 않은 아마추어리즘의 날것이 생경하기도 하지만 그 실험 정신과 생동감이 장점이다. 재출간을 하자면 다듬어야 하는데 두 권 작업 때만큼 자신을 가장 많이 쏟아부은 적이 없었다.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는 오로지 그림만 그렸다. 지나가 버린 삶의 어떤 시절, 그때의 자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거칠어도 지금 모습 그대로 남기고 싶었다.
『까막별 통신』과 『안녕, 올리』를 거쳐 『나의 구석』을 연결해보면 까마귀는 등장하지만 스타일도 분위기도 사뭇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연작은 아니지만 『나의 구석』에 이르러 까마귀는 까막별을 떠나 지구에 방 한 칸을 마련했다. 아무것도 없는 구석진 방 한 칸을 까마귀는 자기만의 방으로 서서히 가꿔간다. 글 없는 그림책 『나의 구석』의 스토리는 이것이 전부다. 까마귀는 침대를 들이고, 책장을 놓고 식물도 키운다. 뭘 더할까 궁리하다 벽에 노란색 칠도 한다. 그리고 어두운 방에 창문을 낸다. 다음 장면을 넘기면 까마귀는 창문을 열고 이웃과 인사를 나눈다. 까막별의 그 올리는 아니지만 하여간 올리가 거기 있다. 자기만의 방에서 서서히 이웃으로 세계로 확장하는 까마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세 편의 그림책을 이어보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는 한 사람이 이만큼 성장했구나 싶어 뭉클하기까지 하다. 예를 들어 주인공 까마귀는 구석진 방 안에 화분을 들인다. 페이지를 넘기면 이 화분 속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한 독자가 그에게 “식물이 자랐는데 왜 분갈이를 안 해주냐?”라고 물은 적도 있다고 한다. 식물은 까마귀의 내면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정말 몰라볼 만큼 훌쩍 성장했다.
독자들은 작가가 까마귀와 똑같은 사람인지를 자주 궁금해한다. 사람은 내면에 누구나 빛과 어둠이 함께한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다가도 때로 혼자 있고 싶다. 작가 역시 두 모습이 공존하고 그중 어떤 부분이 『나의 구석』으로 흘러갔다. 본명은 조선하. 작가는 조선하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은 불편하고 힘들 때가 있다. 대신 작가 조오로 독자들을 만나거나 활동하는 건 즐겁다. 물론 작가 조오가 개인 조선하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건 아니다. 아바타가 그런 것 아닌가.
조오 작가는 회화를 공부했는데 그림에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이럴 거면 일러스트레이션을 해라”라는 지적을 받았다. 화가가 되지 않을 거라면 별 대안이 없었다. 학원에서 강사를 했다. 어릴 때 그림책을 보고 자랐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림책이 좋았다. 그러다 지금은 문을 닫은 힐스(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교)를 알게 되었다. 『나의 구석』은 힐스 시절 그룹 워크숍의 결과물이다. 이야기꽃 김장성 대표가 스승이다. ‘슬로우 스타터’인 그는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학생이었다.
그때부터 건물이나 구조물에 관심이 많았다. 종이책은 제본 과정을 거치며 필연적으로 접히는 부분이 생긴다. 이를 활용해 『나의 구석』은 구석진 공간감을 만들어냈다. 앞서 만든 두 권의 독립 그림책도 원래는 360도로 볼 수 있는 캐러셀북으로 만들고 싶었다 할 만큼 그는 책의 물성을 최대한 살려 구체적 공간을 만들어내는 걸 좋아한다.
프로이트는 예술 행위를 무의식적 치유 과정으로 이해했다. 삶에서 부딪히는 갈등과 욕망을 과연 어떻게 해소할 것이냐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구는 쇼핑으로 또 다른 누구는 게임을 선택하는 식이다. 그중에서 글과 그림을 도구로 세상에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그림책작가라고 부른다.
한미화_출판 칼럼니스트, 『동네책방 생존 탐구』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1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