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그림책’이라고 하면 아이들이나 보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대개 무엇을 배우거나 익히게 하려는 목적에서 만든 책이 많았다. 아이들에게 낱말이나 숫자를 비롯한 지식과 정보를 알려주고, 바람직한 생활 습관을 익히게 하고자 그림을 활용한 책 말이다. 그림책의 역사를 살펴보아도 마찬가지다. 최초의 그림책이라고 하는 『세계도회』(교육과학사)는 그림과 함께 온갖 지식을 알려주는 지식정보 그림책이고, 『더벅머리 페터』(마루벌)는 바람직한 생활습관을 익히게 하려는 목적이 뚜렷한 그림책이다.
그러나 인간이 어떻게 지식이나 정보만 가지고 살겠는가. 한편으로는 이야기의 재미와 환상 세계를 담은 그림책도 생겨났다. 이것이 바로 옛이야기 그림책과 전래동요, 민요를 가지고 만든 그림책이다. 사람들이 익히 아는 이야기나 민요를 그림책으로 만들어 즐겼던 것이다. 그림책의 거장으로 꼽는 칼데콧이나 케이트 그린어웨이 같은 작가의 작품들은 여지없이 이런 내용들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 그림책도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학습하거나 바람직한 생활습관을 익히게 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작품이 많았다. 또 상상력의 보고인 옛이야기를 내용으로 삼고, 화가들이 저마다 다른 필치로 표현한 그림책들이 출간되었다. 그러다 전래동요나 동시, 민요를 가지고 독창적인 그림(시각언어)으로 표현한 그림책들이 나왔다.
첫 권이 나온 이래 11년 만에 완간된 창비 출판사의 ‘우리 시 그림책’ 시리즈는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그림책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현재 진행 중인 사계절 출판사의 ‘평화 그림책’ 시리즈다. 한·중·일 세 나라의 작가들이 참여한 이 시리즈는 회의를 거듭하여 작가가 각자 경험한 전쟁과 평화의 기억을 작품에 담고 있다. 이렇게 주제와 내용이 변화하면서 그림책 독자는 아이들만이 아니라 전 연령층으로 확대되었다. 물론,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그림책이라고 해도 어른이 읽어주고 아이가 듣고 보는 독서환경을 염두에 둘 때 그림책 독자는 엄밀하게 영유아만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그림책의 내용과 주제가 변화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독자층도 변화했다고 할 수 있다.
‘평화 그림책’ 시리즈 중에서 『꽃할머니』(사계절)를 예로 들어보자. 이 그림책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군대에 위안부로 끌려간 한 할머니의 일생을 담고 있다. 들에서 나물을 뜯다가 영문도 모른 채 군대로 끌려가 원치 않는 위안부 생활을 하다가 돌아와 그 사실을 숨긴 채 살던 할머니. 작가는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어두운 시대와 국가 폭력의 문제를 제기한다. 또, 이런 일이 과거에만 있었던 게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일어나는 문제임을 보여준다. 전쟁의 폭력을 고발하는 내용인 것이다. 이 작품을 보면 작가는 독자를 어린이만으로 한정한 것이 아니라 어른도 염두에 두었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적 사실을 함께 읽고 공유하며 대화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척추동물의 조상이 된 피카이아를 소재로 삼은 『피카이아』(창비), 제주4·3사건을 담은 『나무 도장』(평화를품은책) 같은 그림책들이 계속 나와 독자층을 넓히고, 독자의 사회의식을 고취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함께 걷는 길』(웅진주니어)이나 『손님』 『찬다 삼촌』(느림보) 같은 ‘다문화 그림책’도 주목할 만하다. 이 그림책들은 어린이용으로 나왔지만, 어른들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함께 살아가는 여러 나라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보여주며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작품이다.
독자에게 질문하는 책이야말로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른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그림책이 의외로 많다. 먼저, 번역 그림책들을 살펴보자. 『100만 번 산 고양이』(비룡소)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묻고,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비룡소)는 ‘자기답게 산다는 게 무엇인가’를 묻는다. 『잃어버린 것』(사계절)은 ‘어른이 되면서 우리가 잃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고, 『토끼들』(파랑새)은 ‘제국주의의 본질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독자에게 사회의식을 촉구하는 그림책들도 있다. 『나는 곰입니다』(봄봄)는 더 이상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노숙자의 문제를 담았고, 『양들은 지금 파업 중』(봄봄)은 제목 그대로 파업 상황을 담았다. 『돼지왕』(천개의바람)이나 『양들의 왕 루이 1세』(북극곰)처럼 권력의 문제를 다룬 그림책도 있다. 이처럼 그림책은 아이뿐 아니라 어른이 공감할 만한 문제의식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매체인 것이다.
요즘은 어른들이 더 좋아할 한국 창작 그림책도 눈에 띈다. 주제와 표현방식도 어른들이 환영할 만한 그림책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추 한 알에 담긴 자연과 생명을 시와 그림으로 표현한 『대추 한 알』(이야기꽃), 할머니의 흰 머리카락과 흰 눈을 병치시켜 보여주는 『흰 눈』(바우솔) 같은 시 그림책, 여성의 삶을 주제로 삼아 표현한 『다정해서 다정한 다정 씨』(사계절) 같은 작품은 분명히 아이보다 어른을 독자로 상정한 작품이다. 그만큼 그림책 독자가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책, 모든 연령대가 함께 볼 수 있는 책으로 그림책은 지금 변화 중이다.
엄혜숙_그림책 비평가, 번역가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6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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