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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Jun 02. 2022

방방이

방방이 위 무법자, 다시 날다

방방이

이갑규 글·그림 / 32쪽 / 13,000원 / 한림출판사



저는 어릴 적에 ‘방방이(트램펄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잘 씻지도 않던 그 시절 한여름에 발 냄새며 땀 냄새 같은 온갖 냄새가 가득해도 그저 좋다고 뛰었습니다. 시간이 다되면 아쉬워서, 뛰느라 동전이 하늘로 땅으로 다 사라진 줄도 모르고 시간을 연장해 계속 타다가 나중에 돈이 없어 아저씨한테 혼나기도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침대를 비롯해 어디에서건 뛰는 걸 무척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방방이』는 딸이 여섯 살 때 방방이가 설치된 집 근처 식당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려 만들었습니다. 빨리 놀고 싶어 서둘러 밥을 먹은 하람이가 방방이에 올라탑니다. 아이들과 잘 어울려 노는가 싶더니 같이 놀아달라며 아빠를 부릅니다.  



결국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방방이에 들어갑니다. 주변 아이들을 의식해 조심스레 뛰는데 ‘나도 어릴 때 많이 탔었지. 무릎으로 딛고 일어서기, 엉덩이로 앉았다 일어서기, 공중회전 같은 다양한 기술도 부리고 말이야. 누가 높이 뛰나 친구들과 시합도 했는데…’ 하며 옛 추억들을 떠올립니다.


‘지금도 가능할까?’ 

문득 드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어설프게 시도해보지만 생각 같지 않습니다. ‘조금만 더 도약하면 될 것 같은데!’ 더 힘을 주어 높이높이 뜁니다. 덩치 큰 아저씨가 작정하고 뛰다 보니 아이들이 멀쩡할 리 없습니다. 넘어지고 멀리 튕겨나갑니다. 어떤 아이는 겁먹은 듯 외벽 망에 달라붙기도 하고요. 그러나 곧 새로운 놀이를 발견한 듯, 

“또 해주세요! 더 세게 해주세요!” 하며 주변으로 모여듭니다. 이럴 때 아이들이 무섭습니다.


즐거워하는 아이들과 달리 어른인 아빠는 ‘애들 부모들이 볼지도 모르는데 싫어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듭니다. 의식적으로 부모들이 있는 곳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혼날까 봐서요. 책을 보면 어른들이 몰려와 아빠를 나무라는 장면에 아빠는 눈을 감거나 다른 방향을 보고 있습니다. 하반신만 보이는 장면에서야 어른들과 아빠는 마주합니다. 이야기 흐름상 놀이에 빠져 주변을 못 보는 아빠의 설정이기도 하고 외면하고픈 실제 아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다른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딸아이가 들어보라며 노래를 불러줍니다. “원숭이 한 마리 / 침대 위에서 / 폴짝폴짝 뛰다가 / 넘어졌더니 / 머리가 깨져서 / 병원에 가서 어쩌고저쩌고….” 대략 이런 가사였던 것 같습니다. 어릴 적 가장 긴 이름을 가진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김수한무 / 거북이와 두루미 / 삼천갑자 / 동방삭….” 이 리듬과 같은 노래라 귀에 쏙 들어오더라고요.

재밌다 싶어 하람이와 방방이 탔던 경험을 떠올리며 가사를 바꿔 불러보았습니다. “귀여운 하람이 / 방방이 위에서 / 폴짝폴짝 뛰다가 / 아빠를 보고 / 들어오라 했더니 / 잠시 망설이다 / 훌쩍 올라가 / 재미있어서 / 흥분해 버려서 / 방방이 위 무법자로 변해버렸다. / 몰려든 어른들 / 아이들 노는데 / 뭐하는 거냐며 / 나무라는데 / 누구는 화나고 / 누구는 부럽다 / 아쉬웠는지 / 잠자기 전에 / 침대 위에서 / 하람이와 아빠는 / 다시 날았다.” 이렇게 써놓은 가사가 시간이 흐르고 어쩌다 보니 그림책의 초안이 되었습니다.


『방방이』는 제 두 번째 창작 그림책입니다. 첫 번째 책 『진짜 코 파는 이야기』와 『방방이』 모두 우리 가족이 등장합니다. 첫 책에서는 특징을 살려 그림을 그렸는데 딸과 아내 모두 불만이 많았습니다. 못생겼다고요. 그래서 두 번째 책에서 현실을 상당히 왜곡해 그렸습니다. 특히 아내를 말이지요. 책에 등장하는 엄마는 아내와 닮지 않았습니다. 훗날 가족을 기념하는 책은 못 될 것 같아서 넣었습니다. 화가 나 몰려간 어른들 속에요. 누구라고 말하진 않겠습니다. (이 글은 아내가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찾아낼 게 분명하거든요.) 앞으로도 제 책에는 가능하면 아내와 딸을 등장시킬 예정입니다. 정 안되면 닮은 동물로라도 등장시키려 합니다. 


누구나 어린 시절이 있고 간직한 추억이 있기에,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이 어른들에게도 공감과 즐거움을 줍니다. 『방방이』를 접한 아이들이 깔깔대며 즐거워하면 좋겠고 어른들도 재미있게 공감하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제 책이 어른들과 아이들이 더 많이 노는 데 영향을 주면 좋겠습니다. 

저는 아이와 노는 시간을 만족할 만큼은 아니라도 꾸준히 가져온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딸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지금도 끊임없이 아빠와 뒹굴며 놀기를 좋아합니다. 언제까지 허락될지 모르겠지만 가능한 오래도록 딸과 가깝게 지내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아이와의 놀이가 단절되지 않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이갑규 작가는 오랫동안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지금은 유쾌하고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그림책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 『진짜 코 파는 이야기』 『방방이』가 있습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8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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