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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Jun 07. 2022

화가의 친구들

그들의 우정은 어떤 빛깔이었을까

화가의 친구들

이소영 지음 / 336쪽 / 17,000원 / 어크로스



“혹시 인프피(INFP)?”  

“어? 난 엣프젠(ESPJ)데?” 

마치 온 인류가 네 글자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조합으로 분류되어버린 듯, 바야흐로 MBTI 열풍이다. 진로 지도와 취업 면접에도 쓰이는 지표라 하니 그저 그런 심리테스트로 볼 수는 없겠다 싶기도 하지만, 문득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도대체 왜 우리는 MBTI에 열광할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나와 타인을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기본적으로 깔려있을 게다. 같은 유형을 만나면 유대감이 샘솟고 다른 유형을 만나면 흥미가 생기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에 대한 욕구. 어쩌면 MBTI는 ‘우리는 각기 다른 존재이며, 그렇지만 서로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마음속 소리를 객관적으로 증빙하려는 시도일 수도 있겠다.


등장인물들의 MBTI를 따져보고 싶을 정도로 『화가의 친구들』 속에는 다양한 관계가 펼쳐진다.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은 ‘친구’와 ‘우정’의 카테고리를 평이한 방식으로 한정 짓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나는 이들마다 턱턱 손을 움켜잡고 흔들어야 하는 선거철의 정치인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람은 마음속에 자신만의 친구 분류 체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민낯을 내보일 수 있는 친구, 살짝 어색하지만 만나면 즐거운 친구, 십여 년 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듯 자연스러운 친구, 그다지 친하지는 않지만 그냥저냥 알고 지내는 친구, 친구라는 이름으로 아무렇지 않게 상처를 주는 친구. 


앤디 워홀(ⓒGalerie Bruno Bischofberger)


이 책에 등장하는 화가와 친구들의 관계 역시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복잡하고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세잔과 피사로, 클레와 칸딘스키처럼 서로에게 뭉근한 응원이 되어주었던 관계가 있는가 하면, 고흐와 고갱, 뭉크와 유엘과 같이 지나치게 닮다 보니 오히려 서로에게 자극이 되어 극적이고 안타까운 결말을 맞은 관계도 있다. 영원한 수수께끼, 남사친·여사친(남자 사람 친구·여자 사람 친구) 사이의 묘한 감정의 흐름 역시 흥미롭게 등장한다. 드가와 카샛, 칼로와 머레이, 모더존 베커와 릴케의 이야기에서 서로 다른 성별의 예술가들이 나누었던 화학적인 교감을 엿볼 수 있다.


폴 고갱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


괜스레 다정하게 느껴지는 ‘친구들’이라는 말 때문일까, 다소 말랑말랑하게 느껴지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사실 이 책은 꽤 탄탄한 미술사 서술이다. 저자는 폭넓은 자료 조사와 사실 확인 과정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방식의 미술사를 살짝 비틀어 보인다. 렘브란트와 미술상 아윌렌부르흐의 이야기나 피카소와 거트루드 스타인의 관계, 뒤러와 동네 친구 피르크하이머가 주고받은 사연을 통해 작품의 창작 못지않게 후원과 유통, 수용의 시스템 역시 자세히 톺아볼 필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페르메이르와 레이우엔훅, 블랙웰과 의사들의 이야기는 미술사의 빈틈을 채우며 공감을 이끌어내는 인문학적 상상력의 힘을 역설한다. 정전(正傳)으로서의 미술사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예술 작품이 어디 오롯이 한 명의 붓끝에서만 탄생하겠는가. 


프리다 칼로 「프리다와 디에고 리베라」


친구라는 관계에 대한 유연한 정의가 돋보이는 3부는 이 책의 주제 의식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듯하다. 예술가들에게 지적, 감정적 자극을 주고 그들의 새로운 시도를 지지하던 친구들의 이야기는 소설 못지않게 흥미롭다. 누군가와 친구가 된다는 건 나이나 학연, 지연과 같은 물리적인 근거로 연결되는 관계 맺기가 아닌 정신의 주파수를 맞추는 사이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 바깥의 요인들로 인해 촘촘하고 빡빡하게 얽히는 인연이 아닌 느슨하게 연대하며 있는 그대로 서로를 인정하고 응원하는 관계. 클림트가 추커칸들에게서, 르동이 클라보에게서 찾은 어떤 영감과 통찰력은 그러한 관계의 산물이다. 


유명한 작품과 작가들에 관한 상세한 미술사 지식을 담은 책이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 부대끼는 이야기다 보니 어렵지 않게 술술 읽힌다. 뜨겁고 눈물겹기도 하고, 은은하면서 깊고 따듯하기도 한 우정 이야기의 마지막 장을 덮는다. 하나둘, 책 표지 위로 겹쳐 보이는 이들에게 안부 전화나 해봐야겠다.



박재연_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미술, 엔진을 달다』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2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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