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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Jun 08. 2022

우리를 울리며 위로해주는 사랑

옥춘당

고정순 글·그림 / 120쪽 / 13,000원 / 길벗어린이



모두가 동그랗습니다. 두 손 꼭 잡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얼굴도, 제삿날마다 할아버지가 입에 넣어주던 ‘옥춘당’ 사탕도. 전쟁 고아로 만나 알뜰하게 살림 꾸리고 자녀를 길러낸 두 분의 생도 둥그렇습니다. 어릴 때 온몸으로 무섭게 겪었을 전쟁도, 손 마디마디 휘게 만들었을 고단한 생활의 무게도 두 분을 거칠고 날카롭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슬슬 그 마음밭이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어찌나 의가 좋은지 모릅니다. 특히 낯가림이 심한 할머니는 오로지 할아버지밖에 몰랐습니다. 가진 게 많지 않아도 두 분 사이에는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둘만의 시간과 서로를 지켜준 사랑, 가여운 마음과 고마움을 모두 아우르는 정이 흘러넘쳐 마음밭을 촉촉하고 따스하게 적셔줍니다.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들에게 아무도 집을 빌려주지 않을 때 할아버지는 돌아갈 집이 없는 두려움을 알기에 선뜻 손을 내밀고는, 동네 사람들과 불화가 생기지 않도록 함께 살아갈 길을 열어줍니다. 어두운 밤길을 걸어 돌아올 젊은 여자들을 위해 구청에 가로등 설치를 요청하기도 합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을 모두가 밀쳐낼 때도 할아버지는 그저 둥그런 마음으로 무심한 듯 품어 안고는 누구 편을 들거나 싸우자고 나서지 않고 그저 서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그 마음밭의 넓이와 깊이가 도무지 가늠되지 않습니다.  


언제까지나 두 분이 하나로 묶여있을 것만 같았는데, 할아버지가 그만 말기암 진단을 받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병원이 아닌 집을 택한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옛날이야기를 하며 변함없는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그러면서 나중에 할머니가 찾기 쉽게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일일이 알려주고 이런저런 당부를 합니다. 어느 초여름 날, 할아버지는 결국 할머니 혼자 남겨두고 떠나셨습니다. 할아버지의 발걸음도 쉽게 떨어지지 않았겠지만 하나밖에 없는 친구를 잃고 할머니는 말을 잃었습니다. 아니, 말만 잃은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일에서 벗어나 버렸습니다. 어쩌면 할아버지 가신 곳에 이미 가 계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치매 진단을 받고 요양원으로 옮기신 할머니. 말이 없고 조용한 환자였던 할머니는 하루 종일 동그라미를 그리며 보내신다고, 그리고 가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요양원 사람들이 전해주었습니다. 

아, 할머니 기억 속의 동그라미…. 


요양원 생활 10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0년 만에 할머니는 드디어 이 세상에서 몸마저 완전히 자유로워지셨습니다. 떠나실 즈음에는 두 분 다 여위어서 동그랗던 얼굴은 간곳없고 조막만 해졌지만, 두 분은 옥춘당 사탕과 여름날 봉숭아 꽃물의 추억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이 잠시 쉬며 다시 길 떠날 힘을 얻을 수 있는 둥그런 나무 그늘로 영원히 남았습니다. 어쩜 사랑이란 이렇게 옥춘당 사탕처럼 다 녹아 사라진 것 같아도, 불현듯 알록달록 달콤함과 향기로 되살아나 우리를 울리며 또 위로해주는가 봅니다.


유경_사회복지사, 『그림책과 함께하는 내 인생의 키워드 10』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2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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