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생명들이 만들어낸 드라마

작가가 들려주는 그림책 이야기

by 행복한독서
꿈결에 소곤소곤들려오는
소리가 있어요. 바위 위에, 모래 속에
소중히 간직된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 소리예요.


사막여행

손소영 글·그림 / 26쪽 / 16,500원 / 고래뱃속



『사막여행』은 황량하게만 보이는 모래의 바다 사막에서 여행자가 만나는 생명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사막여행』을 쓴 과정이 책의 내용과 맞닿아있는 것 같습니다.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한 건 13년간 몸담고 있던 직장을 그만둔 얼마 후였습니다. 그림책이 주는 위로와 용기에 고마워, ‘나도 살면서 한 권쯤 이렇게 좋은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림책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들여다본 제 머릿속 이야기의 영역은 마치 텅 빈 사막 같았습니다. 늘 말을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내 말’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림책의 형태에 대해 공부하던 어느 날, 아코디언북에 어울리는 ‘연결된 이미지’를 생각하던 중이었습니다. 모래 언덕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끝없이 펼쳐진 사막과, 형태와 색이 비슷한 낙타 혹이 함께 떠올랐습니다. 종이를 잘라 길게 연결해서 모래 언덕이 곧 낙타 혹이기도 한 스토리보드를 짜보았습니다. 그러고는 ‘낙타는 왜 사막에 살까?’라는 단순한 질문으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모으는 동안 모래의 바닷속에 숨겨진 수많은 드라마를 만났습니다. 사막을 살아가는 생명들이 만들어내는 드라마였습니다. 그리고 이 드라마가 제 안의 ‘말’을 하나씩 이끌어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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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속 생명들의 이야기가 드라마로 느껴진 건 아마도 제가 그들의 모습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거친 사막을 건너는 낙타에 감정이입이 되어, 지난날 지나온 모래 폭풍들을 떠올렸습니다. 힘든 하룻길을 걷고 난 뒤 모여 앉아 노래를 부르는 유목민들의 모습에 깊이 안도하며 함께 휴식했습니다. 수십 년간 바짝 말라버린 풀이 적은 양의 물만으로도 다시 살아나는 모습에서 희망을 보고, 아주 가끔씩 내리지만 화려한 마법의 시간을 선물하는 단비가 고마워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오래전 바다였던 시절과 물이 풍부했던 시절을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막을 살아간 이들의 흔적에 ‘나는 어떤 흔적으로 남겨질까?’ 하고 상념에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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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내 말’은 하나씩 끌어내졌습니다. 그 후에는 이 ‘말’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고민과 시행착오의 긴 과정이 이어졌습니다. 이런저런 구상과 엉뚱한 시도 끝에 낙타 덮개에 이야기를 풀어내기로 하고, 덮개와 그 안의 무늬를 디자인했습니다. 이야기를 명확히 전달하면서도 낙타 덮개의 특징, 특히 장식적이고 토속적인 느낌을 구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는데, 균형을 잃고 시작점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반복되는 패턴과 덮개의 질감은 판화로 찍어 표현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재미있는 결과물을 얻을 때도 있었지만, 힘 조절에 미숙해 얼마나 많은 잉크와 종이를 낭비했는지 모릅니다. 난생처음 해보는 그림 작업도 어려웠지만, 이런저런 형태로 평생 써왔다고 생각한 글도 쉽게 써지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덜어내기’였습니다. 일단 ‘내 말’을 꺼내놓고 보니, 말이 너무 많았던 것이지요!


작업을 하며 막막하고 진전이 없을 때는 ‘이게 과연 책이 되어 나올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고백하건대, 책 속의 쇠똥구리가 노력 끝에 결국 먹이를 포기하기로 한 그 과감한 선택에 마음이 끌리는 순간도 있었습니다.(과감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은 정말 다행스럽지만요!) 하지만 자비 없는 태양 아래서 홀로 분투하는 쇠똥구리와 달리, 저에게는 기다림과 격려, 관심과 도움으로 언덕에 오르는 과정을 함께해준 고마운 동행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래 언덕을 도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 같았던 시행착오의 과정이 오르는 속도를 더디게 했을지는 몰라도, 그만큼 근육은 더 단련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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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만들면서 “사막을 여행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몇 차례 받았습니다. 아쉽게도 아직 사막을 여행해본 적은 없습니다. 책 작업을 마치고 나면 꼭 다녀와야지 마음먹고 있었는데, 여행 자체가 불가능한 시절이 되어버렸습니다. 폭풍 속을 걷는 것 같은 위험하고 힘든 나날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사막의 밤하늘, 쏟아질 듯한 별들 아래서 휴식할 수 있을 날을 기다리면서 힘을 내어 다음 걸음을 옮겨봅니다. 우리 모두 힘내서 함께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손소영 작가는 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10여 년간 재직하며 학생들을 더 이해하고 싶어 참고한 소아·청소년 정신과 선생님의 팟캐스트를 통해 그림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림책에서 받은 위로와 응원을 전하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품고, 『사막여행』으로 꿈을 향한 첫걸음을 떼었습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1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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