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시선들
희망을 품고 새로운 계획과 결심을 다지는 새해를 맞이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지난 1년간 우리 삶을 단절과 불안으로 내몰았던 팬데믹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코로나는 지금까지 우리가 살면서 당연하게 여겨왔던 일상을 바꾸어놓았고 사회, 경제, 정치는 물론 교육과 환경 등 전반적인 사회 시스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먹고사니즘’에 발목 잡혀 간과하거나 미뤄두었던 환경, 생태, 기후 위기 등의 문제와, 성장 논리와 경쟁의 원칙에 밀려 뒷전이 되었던 인권과 노동, 공동체적 삶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이고 진지한 성찰과 논의가 중요한 화두로 등장했다. 팬데믹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벌려놓았지만 기술과 자본은 그 틈을 메우며 더욱 공고하게 연결의 고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대면에서 비대면으로의 전환은 교육과 회의, 일과 쇼핑 그리고 출퇴근 문화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서 온라인 플랫폼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우리는 어느새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구축된 플랫폼에 올라타 빠르게 적응하며 살아간다. 2021년 우리의 자화상은 이런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그 대안의 모색이 필요하며 책을 통해 그 길을 찾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다.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성장한 빅 파이브(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기업의 공통점은 국경을 초월해 세계인의 삶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플랫폼을 구축하고 벌어들이는 부는 실로 상상을 초월한다. 이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는 우리가 이들의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하기 위해 제공한 나이, 위치, 결혼 여부, 관심사, 배경, 교육 수준, 정치 성향, 구매 기록과 그 외의 훨씬 많은 정보를 모두 아우르는 소비자 프로필이 있다. 그렇게 데이터를 확보한 기업들은 제3의 대상에게 이 데이터를 팔아넘긴다. 데이터를 사들인 기업은 소매업체에서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선거 조작 기관에 이르기까지 데이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다시 데이터를 판매할 수 있다. 우리가 스마트한 삶을 누린다는 착각 속에 각종 스마트 기기에 빠져 살아가는 동안 기술기업들은 우리가 제공한 정보를 이용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우리의 삶을 그들의 돈벌이 도구로 사용하고, 나아가 정치 경제적인 영향력을 확장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빅브라더로 성장한다. 문제는 이러한 빅테크 기업의 가장 큰 목표가 ‘소비자들을 자신들만의 상품과 생태계에 예속시키는 것’이라는 점이다.
「파이낸셜 타임스」 글로벌 비즈니스 칼럼니스트 겸 부편집장인 라나 포루하의 책 『돈 비 이블, 사악해진 빅테크 그 이후』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매일 보고 듣고 즐기는 SNS와 플랫폼이 물밑에서 어떻게 우리 생활과 경제·정치 전반을 장악해 가는지를 파헤친다. 나아가 이들이 기술의 발전으로 얻은 이익을 좀더 많은 이들이 효과적으로 공유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비대면의 일상화와 온라인 플랫폼 기반의 시대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우리가 누리는 기술과 서비스, 그에 따른 편리함이 우리의 일상과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한 번쯤 되짚어볼 일이다.
2020년 3월 기준 5천만 명이 넘게 다운로드하고, 월 방문자는 1천만, 월 주문은 5천만 건을 기록한 국민 애플리케이션 ‘배달의민족’은 한국형 플랫폼의 대명사다. 정보통신기술(ICTI)이 발전하면서 소셜 네트워크, 앱 등의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플랫폼 기업의 성장은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플랫폼 노동의 급격한 확산으로 이어진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플랫폼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현재 국내에서만 ‘플랫폼 노동’ 또는 ‘주문형 노동’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에 50만 명이 종사하고 있다. 플랫폼 노동에는 ‘배달의민족’이나 ‘쿠팡’만을 떠올릴 수 있지만 배달 앱 또는 배달 기사, 대리운전, 퀵서비스뿐만 아니라 플랫폼에 창작물을 올리는 웹툰 및 소설 작가나 유튜버도 포함된다. 플랫폼 기업의 성장 이면에는 새로운 노동의 형태인 플랫폼 노동자의 삶이 존재한다. 플랫폼 기업이 거대 공룡으로 성장하는 동안 플랫폼 노동자는 노동자도 자영업자도 아닌 애매한 지위로 그들이 누려야 할 노동자로서의 기본 권리마저 보호받지 못한 채 법의 사각지대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배달의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는 플랫폼 자본주의가 작동되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인 저자가 플랫폼 노동의 다양한 형태와 각 유형별 문제를 현장의 경험과 분석을 통해 전문적으로 다룬 책이다. 같은 주제를 다룬 『뭐든 다 배달합니다』는 사회 비평 매체의 기자인 저자가 200여 일간 배달의민족과 쿠팡, 카카오 대리 등 국내의 대표적인 플랫폼 노동을 몸소 체험한 뒤 쓴 책이다. 책에서 저자는 플랫폼 노동자들을 현대판 소작민들에 비유하며 이 책이 그들의 목소리를 사회에 전달하는 보도 자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썼다고 했다. IT 기술 기반의 새로운 플랫폼 경제 속에서 기업과 노동자의 역할을 면밀히 들여다보며 개선되어야 할 지점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책을 통해 저자는 플랫폼 노동이 경제 흐름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 종사자들을 위한 제도 개선과 사회적 지능의 향상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저자의 말처럼 인공지능과 로봇의 시대가 오고 있지만, 결국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며 사람들을 위해 할 일이니까.
코로나 바이러스로 도시와 나라 전체 나아가 세계 각국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멈췄다. 그로 인해 하늘도 바다도 원래의 맑은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런 자연의 회복을 보면서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인간 중심으로만 살아왔는지 깨닫는다. 동물들의 세계를 침범해서 인간 위주로 바꿔놓았고, 화석연료를 태우며 하늘을 날아 세계 곳곳을 얼마나 자유롭게 여행했는지를 깨닫는 순간 비로소 새로운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대면의 확산으로 당연한 것들이 이제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매일 가던 학교도, 직장도 친구와 이웃들의 만남도 예전처럼 자유롭지 못하다. 택배로 사들이는 물건이 크게 늘었고 그로 인해 택배 기사들이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온전히 편하게 살기 위해서는 세상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야 하고, 나를 위해 누군가가 어두운 밤에도 힘든 시간을 견디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나만 편안하게 살 것이 아니라 나와 더불어 사는 모든 존재들이 온전해야 나 역시 온전할 수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는 모두가 잠들었을 때 누군가는 깨어서 그들의 일상이 원활하게 돌아감을 자분자분하게 일러주는 그림책이다. 화물트럭은 택배 물건을 싣고 밤새도록 달리고 택배 회사에서는 누군가 우편물과 택배 상자를 분류하고 빵집은 새벽부터 빵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24시간 문을 여는 가게가 있고, 24시간 운영하는 택시가 있어 급하게 이동하는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병원 또한 밤이 없다. 밤에 아기를 낳는 사람도 있고 간호사나 의사들은 밤이라도 환자들의 체온과 맥박을 체크해야 한다. 그런 누군가의 삶이 있어서 우리는 온전하게 일상을 누리고 있음을 아이의 눈높이로 알려준다. 코로나 이전에도 이런 밤의 일상은 존재했을 테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겪고 나니 더없이 소중하고 고맙게 느껴진다. 이 한 권의 그림책이 코로나19로 힘겨운 날들을 보내고 있을 모든 이에게 작은 것들에 귀 기울일 때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따뜻한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오늘도 일곱 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최근 산업재해 문제를 다룬 공익 캠페인의 광고 문구다. OECD 선진국으로 들어선 한국은 여전히 OECD 국가들 중에서 부끄러운 1위 기록을 몇 가지 보유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산재사고 사망자 수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이다. 산업재해로 해마다 2,400여 명이 목숨을 잃는다. 하루에 평균 7명이다. 2013년 이마트 냉동고 사망 사건, 2015년 강남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건,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건,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사망 사건에 이르기까지 추락, 끼임, 질식과 같은 동일한 산업재해가 오늘도 계속해서 반복된다. 원청 기업과 정규직 노동자들이 하지 않는 위험한 일들을 하청 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노동시장의 구조는 원천적으로 산업재해 사고의 책임을 놓고 갈등하게 할 수밖에 없는 불씨를 품고 있다. 원청 기업인 대기업은 ‘아웃소싱’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싼 임금으로 가장 위험한 일을 하청 기업에 맡긴 뒤, 그 일을 하다 발생한 산업재해로 인한 사고에 대해서는 원청은 물론 하청까지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지난해 말 심상정 정의당 대표, 고(故)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가 산업재해를 기업의 범죄로 규정하고 강하게 처벌하자는 내용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했다. 법 제정을 요구하는 국민 청원이 국회에 접수된 후 10만 명이 동의했다. 하지만 여전히 법제정까지 가는 길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문밖의 사람들』은 2016년 스마트폰을 만드는 대기업의 하청공장에서 파견 노동으로 일하다가 메탄올 실명 피해를 입은 당사자 ‘이진희’를 비롯해 하루아침에 실명한 청년 노동자 6명의 아픔과 현실을 만화 형식으로 담아냈다. 청년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열악한 노동환경을 고발하고 죽은 지 50년이 지난 오늘,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우리의 노동 현실의 민낯을 보여준다. 저자들은 책을 통해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지 진지하게 되묻는다.
몇 권의 책을 통해 들여다본 우리 사회의 현실은 팬데믹 이슈에 가려지긴 했지만 여전히 산재한 문제들로 가득하다. 코로나로 모든 이들의 일상이 힘겹다지만 이 작은 목소리와 보이지 않는 삶의 절규를 제대로 귀 기울일 수 있어야 코로나 이후에 더 건강한 사회로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이용주_우분투북스 대표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1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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