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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Jun 15. 2022

동네책방과 도서관의 함께 걷기 ‘동네책방을 담다’

동네책방과 지역 공공도서관은 참 많이 다른 듯 닮았다. 동네를 슬렁슬렁 걷다가 우연히 마주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 같고, 크든 작든 그 안에 많은 책을 품고 있는 것이 같다. 그리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이는 공간이라는 점이, 또 그 사람들을 위해 책과 함께할만한 재미있는 것들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 같다. 물론 다른 점을 찾고자 하면 더 많이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많은 점이 같을 수 있다면 새로운 생각을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고양시립도서관과 고양시 동네책방의 행복한 동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공간의 경계를 넘어 다채로운 선을 잇다

지난해 ‘동네책방을 담다’ 첫 번째 프로젝트에 참여할 동네책방을 모집해 11개 책방이 확정되었고, 19개의 시립도서관 중 16개 도서관과 참여 책방을 연결하였다. 하나의 책방에 1~2개의 도서관이 협력하게 되었는데 각각의 도서관 담당자가 참여 서점 책방지기와 직접 소통하여 북큐레이션 도서 전시 시기와 주제, 도서 선정을 개별적으로 진행하였다. 각 도서관에 동네책방 전시 도서용으로 배분된 도서 구입 예산에 맞춰 큐레이션 도서를 구입하여 도서관 자료로 등록한 후 직접 큐레이션 주제에 맞게 꾸며 전시하는 것이다. 단 고양시 공공도서관이 동일한 프로젝트에 공동으로 참여한다는 의미 전달을 위한 대표 안내문을 제작하였으며, 각 서점과 도서관의 차별성과 다채로움을 나타내기 위해 하나의 통일된 디자인에 주로 사용되는 바탕색은 서점 또는 도서관이 직접 선정할 수 있게끔 자율권을 부여하였다.


동네책방 플라뇌즈와 함께 걷는 책들

화정도서관은 스타필드 고양에 위치한 별꿈도서관과 함께 ‘플라뇌즈’ 책방과 매칭되어 북큐레이션 구성을 위한 회의를 8월 한 달간 지속하였다. 플라뇌즈는 ‘도시산책자’라는 뜻의 프랑스어 플라뇌르(flaneur)를 여성형(flaneuse)으로 바꾼 이름을 가진 주교동의 작은 동네책방이다. 플라뇌즈 책방지기는 지역 공공도서관과의 첫 협업 북큐레이션 주제 선정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토로하였으나, 북큐레이션을 위한 생소한 주제를 새로 발굴하는 것보다 동네책방의 정체성을 가장 명확하게 잘 드러내는 주제가 사람들에게 더욱 자연스럽게 와닿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국 ‘걷기’라는 커다란 주제 아래 하위 주제를 세분화하여 도서 전시를 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9월 초부터의 1차 전시는 각각 도시 산책, 여자 걷다, 산책, 여행, 멈춤, 혼자 걷다 등 걸으면서 만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색과 장소에 관한 도서 목록을 준비하고 10월 중순부터의 2차 전시는 혼자 걷는 것에서 나아가 함께 걷기(연대)와 고양이와 걷기(생명권,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플라뇌즈 책방지기가 직접 구성한 도서 목록에 화정도서관의 복본 소장 도서를 일부 제외하고, 도서를 해당 책방에서 구입하여 전시대를 구성했다.

주제와 전시 시기를 결정하고, 도서 목록을 구성한 후의 고민은 적절한 디스플레이 전시에 관한 것이었다. 동네책방과의 첫 협업인 만큼 그동안 늘 있었던 사서 주도의 북큐레이션과는 다르게 보여야 한다는 고민이었다. ‘걷기’라는 주제를 표현하되, 플라뇌즈 책방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형태여야 했다. 

플라뇌즈×화정도서관

연필로 그린 작은 그림 하나

플라뇌즈 책방지기가 기획 회의 초기부터 제안한 그림이 하나 있었다. 연필로 쉽고 간결하게 그려진 듯 보였지만 우리의 협업 북큐레이션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을 모두 다 함축적으로 담은 특별한 그림이다. 그림 속 화자는 문을 열고 혼자 도시를 걷고, 멈춰 쉬기도 하다가 다른 누군가를 만나 함께 걷기도 하고, 고양이를 만나기도 하면서 어딘가를 끊임없이 걷다가 다시 문 앞에 선다. 책방지기의 제안대로 이 그림은 아코디언 접는 형태의 책갈피로 제작하여 도서관 이용자들이 직접 가져갈 수 있게끔 북큐레이션 및 책방 홍보 아이템으로 사용하는 한편, 우리의 북큐레이션 전체를 아우르는 메인 이미지로 표현하고자 했다. 이를 적절하게 시각화할 방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철사 오브제 제작 등 많은 아이디어가 나왔으나 시간과 예산의 제약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구현할 방법을 찾는 것이 특히 어려웠다. 오랜 고민 끝에 친환경 소재 광목천의 ‘자연스러움’에 플라뇌즈의 그림을 살포시 얹었다.


도서관과 동네책방의 같음과 다름

지역 공공도서관과 동네책방은 많은 것이 닮아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북큐레이션 전시대를 구성함에 있어 한 가지, 큰 차이점이 있다. 공공도서관은 관외 대출, 즉 자료 이용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 전시대에서 전시 도서가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 전시대의 책이 판매될 때마다 새로운 재고책을 다시 채워 넣을 수 있는 동네책방과는 달리 공공도서관의 북큐레이션은 분명 어려움이 존재했다. 따라서 도서관에 따라 전시 기간만큼은 관외 대출을 완전히 제한하고 관내 열람만 허용하여 북큐레이션 전시대를 깨끗하게 유지하기도 하는데, 화정도서관의 선택은 복본 도서의 활용이었다. 북큐레이션 전시 서가가 완전히 텅 비는 것을 방지하고자, 도서 목록 중 기존에 도서관 정기 구입으로 등록했던 동일 도서가 있는 경우에는 새로 구입한 전시 도서만 관외 대출 제한을 걸어 최소한의 전시 도서를 남겨두었다. 그 외의 책들은 자유롭게 관외 대출 이용이 가능하게끔 하여 북큐레이션 전시대를 단순 관람하는 것을 넘어 플라뇌즈 책방이 선택한 책 속으로 푹 빠져들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 


나무를 옮겨 심고, 책방의 작은 이야기를 담아 

플라뇌즈에는 그곳이 책방임을 알리는 커다란 간판이 없다. 언젠가 우연히 이곳을 지나던 누군가가 문득 고개를 돌려 이곳이 책방임을 조용히 눈치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을까. 대신 책방 전면 유리 안쪽엔 다소곳하게 놓인 책 한 권과 자작나무 형태의 나무가 이곳이 책방임을 알려주는데, 책방지기는 이 플라뇌즈의 상징과도 같은 나무를 화정도서관에 기꺼이 대여해주었다. 플라뇌즈 책방 단골들에겐 나무의 깜짝 나들이가 다소 허전한 소식이었겠지만, 나무가 화정도서관 전시대 옆에 자리를 잡으니 마치 플라뇌즈 책방의 귀한 친구가 이곳에 잠시 놀러온 것처럼 푸근하게 느껴지는 효과가 있었다. 

플라뇌즈에서 일일이 구멍을 내어 털실을 달아 수제 제작한 책갈피를 든든한 나무에 걸고, 책방 사진이 들어간 책방 안내문을 만들고 전시에 관한 소개를 따로 구성하였지만 하나를 더 욕심내어 보았다. 특별히 플라뇌즈 책방을 자주 찾고 아끼는 단골분들의 한마디. 다소 낯간지러운 부탁에 책방지기와 단골분들 모두 힘들어하셨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좋아하는 공간에 대한 애정 어린 투정처럼 무심하게 다정한 마음을 툭 던져주셨다. 


그들이 이곳에 잠시 머물렀던 이유

화정도서관 종합자료실 입구 앞에 약 석 달간의 ‘동네책방을 담다’ 협업 북큐레이션 전시가 이어지는 동안, 많은 도서관 이용자가 북큐레이션 전시대에 머물렀다. 특히 책방지기가 정성스럽게 작성한 도서별 추천 메모를 찬찬히 하나하나 읽는 풍경이 많이 눈에 띄었는데, 어느 인터넷서점에서 볼 것 같은 출판사 홍보 문구와는 달리 플라뇌즈 책방지기 특유의 인간미 넘치는 언어로 친근감 있게 작성되어 더욱 인상 깊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어딘가의 축제

화정도서관, 별꿈도서관 외에 다른 14개 도서관에서도 고양시 동네책방과의 즐거운 협업이 2021년 하반기 폭죽처럼, 축제처럼 펼쳐졌다. 각기 각색의 주제도 그만큼 다양했는데, 책방에 대한 소개와 책방지기의 추천 도서를 담거나(마두도서관-너의 작업실 ‘독립서점이 궁금한 당신께’, ‘너의 작업실을 지키는 사람들이 추천하는 나 혼자 알고 싶은 책’, 주엽어린이도서관-알모책방 ‘사심가득 책꽂이’), 도서관을 자주 찾는 청소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도 소개했다(삼송도서관-지하비밀도서관 ‘청소년, 그 불안에 대하여’, 백석도서관-더북스 ‘우리 동네 청소년 베스트셀러’). 

너의 작업실×마두도서관

기후위기와 환경보호를 향한 지속적인 관심을 표현하기도 하였고(한뫼도서관-이랑책방 ‘업사이클링’, 대화도서관-행복한 책방 ‘기후환경’), 누구나 기억 속에 품고 있을 첫 번째 책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기도, 마음이 추운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기도 하였다(아람누리도서관-슈가메르헨 ‘시작은 메르헨이었다’, 신원도서관-이야호우북스 ‘위로와 안아주기’). 가을이라는 계절에 초점을 맞춰 시집을 북큐레이션으로 구성한 곳도 있었고,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젊은 작가들을 소개한 곳도 있었다(행신/원당도서관-지산문고 ‘가을에 읽기 좋은 시집’, 덕이/가좌도서관-한양문고 주엽점 ‘이 시대의 주목할만한 젊은작가들’).

복한책방×대화도서관

닮은 공간에 의미를 더하다

코로나19가 찾아온 이후 우리의 삶은 참 많은 것이 달라졌다. 아직도 코로나와 싸우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는 이제, 이 코로나 사태가 마침내 끝이 난다 한들 결코 코로나 이전의 삶처럼 살아가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이미 많은 것이 달라졌고, 앞으로 많은 것이 더빠르게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즐겁고 애틋한 곳이 있을 수 있다면, 그곳이 동네도서관이고 동네책방이면 좋겠다. 이토록 닮은 공간에 의미를 더하여, 2022년에도 고양시 공공도서관과 동네책방의 ‘동네책방을 담다’는 여전히 계속될 예정이다.


김주희_고양 화정도서관 주무관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2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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