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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Jul 08. 2022

싱싱하니까 좋다

그림책 작가 깊이 만나기

그리니까 좋다

김중석 글·그림 / 120쪽 / 20,000원 / 창비



“아이처럼 그리는 법을 알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는 피카소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 아이처럼 그리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하고. 굳이 피카소의 권위를 빌리지 않더라도, 손에 연필이든 붓이든 들고 그려보면 곧장 알 수 있다. 그럴듯하게 그리기도 어렵지만, 아이처럼 그리기는 더 어렵다. 김중석의 『그리니까 좋다』 속 그림들은 피카소가 이거다 했을 만치 거침없이 쓱쓱 그렸다. 대한민국 입시 미술을 통과해 미술대학을 나온 15년 경력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림책작가인 저자이니 마음만 먹으면 ‘그림같이’ 정교하게 그릴 수 있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어떻게 그릴까 분석하고 계획한 흔적이 없다. 저자가 말했듯 “우연히 시작되고 갑자기 끝나는” 그림들이다. 참 대범하다. 속이 시원하다. 


이 책을 펼쳐 왼쪽 페이지에 있는 글을 읽고, 오른쪽 페이지에 실린 그림을 보고, 또 페이지를 넘겨 읽고 보다가 문득 이게 아니구나 하고 책장을 덮었다. 은연중 책의 주인공은 글이라 놓고, 글에 그림을 끼워서 읽고 있다니 말이다. 그가 “그림 그리기는 놀이이고 쾌락”이니까 “내 마음대로 그리고 싶어서” 멋대로 만들어낸 이 사랑스러운 괴물들을 그렇게 판에 박히게 감상해서는 곤란하다. 

글을 따라 그림을 읽으려던 마음을 내려놓고 손 가는 대로 페이지를 펼치니 그림 속 괴물이 씩 웃으며 시끌시끌하게 말을 걸어온다. “나 좀 봐, 난 다리가 여섯 개야. 나는 오늘 기분이 좋은걸. 피곤한 앞다리 두 개는 쉬라고 하고 뒷다리 네 개로 걸어야지.” “사자냐고? 그게 뭔데. 호랑이냐고? 그게 뭔데. 자꾸 물어보지 말고 그냥 나 좀 봐. 보라고.” 그렇게 제멋대로 수다스러운 괴물들이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샤갈의 그림을 평하며 이렇게 썼다. “빨리 창조하는 예술가를 본다는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인가. 빨리 창조한다는 것은 생생하게 창조하기 위한 커다란 비결인 것이다.” 


『그리니까 좋다』에 실린 김중석의 그림들이 그렇다. 

빨리 그린 그림들이다. 머리를 굴리기 전에 손이 먼저, 붓이 달려가 그린 그림들이다. 

이 빨리 그린 그림들은 그래서 싱싱하다. 

낚싯배에서 바로 툭툭 잘라 먹는 생선회처럼 살아있다. 작가의 상상력이 아무것도 거치지 않고 바로 내 앞에 펄쩍 뛴다. 


저자는 글을 통해 일단 그려보라고, 그러면 그림이 된다고 하는데, 나는 그 말은 믿기지 않았다. 이처럼 그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아니까. 그럼에도 마음이 아이처럼 환해졌다. 괴물들의 노랗고 파란 눈망울들은 이렇게 말해주는 듯했다. “머리에 다리가 달려 있으면 어때, 머리가 세 개면 어때, 다리 있는 물고기면 어때. 다 괜찮아, 우린 걱정할 게 없어. 우린 어마어마하게 멋진 괴물이니까!” 갑작스럽게 찾아온 근심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애써 계획하지 않았는데 이루어지는 일들도 있다. 그냥 두고 보자. 괴물처럼 마음이 대범해졌다. 


이소영_책방 마그앤그래 대표, 『화가는 무엇으로 그리는가』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0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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