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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Jul 11. 2022

그림책 작업으로 이어간 특별한 삶

그림책 작가 깊이 만나기

주디스 커

조안나 캐리 지음 / 이순영 옮김 / 112쪽 / 18,000원 / 북극곰



코로나19로 부모들은 육아와 교육 비중이 갑작스레 커진 일상이 고달프고 벅차다. 하지만 주디스 커의 인생을 보면 지금 이 순간들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주디스 커』는 영국의 그림책작가 주디스 커의 삶과 작품에 얽힌 이야기들을 풍부한 사진 자료들과 함께 들려주는 인물 이야기이자 작품집이다. 주디스 커는 아홉 살 때 저명인사인 아버지가 히틀러를 비판해 생명의 위협을 받자 독일을 떠나 여러 나라를 거쳐 영국에 정착했다. 낯선 나라에서 언어와 가난, 불안으로 고통받는 와중에도 딸의 그림 작품을 챙기고 미술 용품을 선물해주던 어머니의 배려 속에, 그녀는 피난민 생활을 오히려 낭만적인 모험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영국 BBC 방송국 작가로서 창작 활동에 즐거움을 느낀 것도 잠시 주디스 커의 결혼과 출산은 경력 단절로 이어진다. 잠들때마다 호랑이 이야기를 원하던 큰딸 테이시 덕에 탄생한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보림)에서 엄마는 배고픈 호랑이가 갑자기 쳐들어와도 의연히 티타임을 함께 갖고, 퇴근한 아빠는 멋진 외식을 제안한다. 모든 것을 잃은 피난민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보호하고자 애썼던 작가의 부모님 모습이 연상된다. 출간 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사랑받은 『고양이 모그』(보림) 시리즈에서 작가는 자신의 가족과 반려묘, 일상의 소소한 삶을 고스란히 담았다. 출산과 육아로 사회와 단절되던 일상의 삶이 오히려 창작의 자양분이 된 것이다.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은 그의 작품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을 보며 ‘오늘 하루도 잘 살았구나’ 스스로 위로하고 공감할 수 있는 따스함이 있다. 하지만 2006년 작가는 54년간 영혼의 동반자였던 남편 톰을 잃고 세상을 향한 통로였던 그림책 작업을 멈춘다. 1년여 세상과 단절된 삶에서 다시 돌아온 노년의 작가는 날마다 잠들기 전 내일의 작업을 위해 러프 스케치를 남기는 창작 의지를 보였다. 남편과 추억을 담은 『누가 상상이나 할까요?』(웅진주니어)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통해 독자들에게 노년의 삶, 그 새로운 의미와 시각을 전달했다.


2019년, 세상에 이별을 고한 작가가 코로나 시대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주디스 커』를 통해 전하는 이야기는 더욱 각별하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호랑이에게 아이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도둑맞지 말고 오히려 차 한잔을 대접하라고. 주변과 단절의 시간이 후일 아이와 당신 인생에 서로에게 충만했던 시간으로 기억될 수도 있으니 일상의 순간들을 더 소중하게 살아가자 이야기한다. 분홍 표지 속 머리를 빼꼼 내민 호랑이가 더욱 사랑스럽게 보이는 이유이다.


오현수_『라키비움J』 필진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0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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