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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Jul 12. 2022

그림책 숲으로 안내하는 가이드북

- 그림책 이론서와 비평서 읽기

그림책에 대한 관심이 높다. 창간 4주년 기념호에서 그림책을 특집으로 다루어 화제를 모은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 2020년 8·9월호는 전월에 비해 20퍼센트 이상 판매 부수가 늘었고 각종 사회 관계망 서비스에서는 두 배 정도 언급이 많아졌다. “나, 요즘 그림책 읽어”라는 커버스토리 제목은 최근의 분위기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평론가, 연구자, 번역가, 소설가, 시인, 양육자, 유튜버, 기자, 그림책 학교 운영자, 책방 대표, 매체 비평가까지 커버스토리에만 15명의 필자가 등장했고 14쪽에 걸쳐서 이수지 작가의 인터뷰가 실렸다. 그림책을 아끼는 사람이 늘어난 만큼 이론서, 비평서, 에세이 등에 대해서도 꾸준히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그림책을 사랑하면서 그림책에 대해서 글을 쓰는, 생산자이면서 소비자인 독자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림책 보는 안목을 키우려는 독자에게 

현재 그림책에 대해 이루어지는 도서 분류 체계는 이 장르가 거쳐 온 혼란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한 인터넷서점만 하더라도 그림책을 보려면 우선 ‘유아’ 범주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 안에 ‘100세까지 보는 그림책’이라는 작은 범주가 들어있고 그림책 이론서들은 ‘인문학’ ‘대학교재/전문서적’ ‘사회과학’ ‘예술/대중문화’ ‘에세이’ ‘좋은 부모’는 물론 ‘경제경영’ 서적 안에도 흩어져 들어가 있다. 그림책을 공부하려는 사람에게는 일단 이 난맥을 뚫고 자신이 원하는 책을 찾는 것부터가 큰일이다. 

서점가에서는 ‘좋은 부모’가 되기를 바라는 고전적인 양육자형 그림책 독자에서 ‘에세이’를 통해 자신의 취미와 기호에 맞추어 다양한 그림책을 접하려는 새로운 그림책 독자로 주의를 돌리는 것 같다. 길지 않은 우리 그림책 출판의 역사에서 어떤 이론서가 있었고 지금도 그림책에 대한 안목을 키우려는 독자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1996년 출간된 번역서 마쓰이 다다시의 『어린이 그림책의 세계』(한림출판사)와 2003년 출간된 같은 작가의 『어린이와 그림책』(샘터사 / 2012년 재출간), 그리고 이 두 권의 번역자이기도 한 이상금의 『그림책을 보고 크는 아이들』(사계절)이 초창기 그림책 이론을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다면 2004년과 2005년에 출간된 『그림책의 이해 1, 2』(김세희, 현은자 지음 / 사계절)는 우리 연구자들이 집필한 이론서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1995년부터 진행되었던 어린이문학교육학회의 연구 내용을 기반으로 했으며 그림책의 성격, 서양 그림책과 우리 그림책의 역사, 갈래별로 그림책을 분류하여 성격과 특징, 대표작을 정리했다. 우리 그림책작가와 작품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이 들어있고 도판 목록, 인명 색인, 용어 찾아보기도 충실하여 활용도가 높다. 


마틴 솔즈베리와 모랙 스타일스가 지은 『그림책의 모든 것』(시공아트)은 그림책의 역사, 작가의 창작 사례, 글과 그림의 역할, 인쇄와 제작, 출판 산업에 이르기까지 다루는 포괄적인 이론서다. “그림책 앞에는 대개 ‘어린이’라는 말이 붙는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바뀌고 있다”고 저자 서문에서 밝혔듯이 교육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던 그림책 이론 연구에서 자유롭게 빠져나와 독자의 범위를 넓히고 예술과 디자인계의 시각에서 북아트의 측면까지 새롭게 조명한다. 이어서 마틴 솔즈베리의 『100권의 그림책』(시공아트)을 읽어보면 1910년 출간된 피터 뉴웰의 『기울어진 책』부터 1930년대의 루드비히 베벌먼즈, 40년대의 브루노 무나리, 50년대 레오 리오니를 비롯해 2010년대까지 이어지는 시대별 주요 작품을 살필 수 있다. 우리 작가의 그림책 가운데 김예인의 『작은 당나귀』가 87번째 작품으로 언급된다. 아홉 명의 연구자가 쓴 논문을 모은 『그림책의 새로운 서사 형식』(옌스 틸레 외 지음 / 마루벌), 글과 그림의 정보 수용 방식을 탐구한 페리 노들먼의 『그림책론』(보림), 마리아 니콜라예바와 캐롤 스콧이 세계의 아동문학 연구자들과 교류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그림책을 보는 눈』(마루벌)은 기호학의 시각으로 언어 텍스트와 그래픽 텍스트의 관계를 들여다보도록 이끄는 책이다. 시점론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면 다케우치 오사무의 『그림책은 재미있다』(문학동네)를 권한다. 


창작자를 위한 그림책 이론서 

그림책 창작자에게 도움이 되는 그림책 쓰기 이론서들도 있다. 『그림책 쓰기』(이상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는 상세한 안내서다. 특히 이 책의 3장은 그림책 글쓰기의 감각을 익히려는 이들에게 각별한 도움이 된다. 유리 슐레비츠의 1985년작 『그림으로 글쓰기』(다산기획)는 그가 1962년 포트폴리오를 들고 출판사를 돌아다닐 때부터 쌓은 수많은 현장 경험이 담긴 그림책 작법서의 걸작이다. 창작자가 아니라도 그림책을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읽어보기를 권하는 책으로 작가가 직접 그리고 첨부한 600장 이상의 그림과 사진 자료는 그림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깊은 이해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엘렌 E.M. 로버츠의 1981년작 『그림책 쓰는 법』(문학동네)은 실용적인 집필 계획과 원고 제출, 출판사와 맺는 관계에 대한 조언이 유용한 책이지만 당시와 출판 현실이 많이 바뀐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 밖에 앤 위트포드 폴의 『그림책 쓰기의 모든 것』(다른)은 글 작법 중심이어서 동화 쓰기에 더 도움이 되는 책이라는 것을 일러둔다. 


독자의 이해를 넓히는 경험담

본격 이론서는 아니지만 그림책에 대한 독자의 태도를 새롭게 해주는 책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도로시 버틀러가 1975년에 학위논문으로 썼던 명저 『쿠슐라와 그림책 이야기』(보림 / 2003년 재출간)는 장애를 지닌 저자의 손녀 쿠슐라가 자라는 과정에서 그림책이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를 연도별로 기록한 감동적인 책이다. 즈느비에브 빠뜨의 『사서 빠뜨』(재미마주)는 ‘책을 통한 즐거움’ 도서관의 창립 사서로서 내 집 같은 도서관을 만들어온 저자 자신의 경험담이다. 어린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일이 어떤 가치를 갖는지 새삼 깨닫게 하는 귀중한 장면들이 가득하다. 최은희의 『나를 불편하게 하는 그림책』(낮은산)과 『그림책을 읽자 아이들을 읽자』(에듀니티)는 초등교사로서 그림책을 읽고 연구해온 저자의 교실 경험이 바탕이 된 깊이 있는 현장 비평서다. 교실에서 그림책을 읽어주려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가장 먼저 권하는 책이다. 『그림책 활동수업』(김혜진 지음 / 학교도서관저널)에는 일러스트레이터이며 그림책 독립연구자인 저자의 전문성이 빛나는 다양한 심화 수업안이 들어있다. 선정된 목록의 신뢰도가 높고 주제 조명, 기법을 어린이와 나누는 수업 아이디어들이 구체적이며 탁월하다. 


그림책 작가들과의 만남 

작가론이나 작가들이 직접 자신의 창작 경험을 쓴 책을 읽는 것도 좋다. 방대함을 생각하면 『그림책 상상 그림책 여행』(김수정, 천상현 엮음 / 안그라픽스)을 권하며 부드럽게 읽기를 원한다면 최혜진의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은행나무), 일본 대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그림책 작가의 작업실』(후쿠인칸쇼텐 어머니의벗 편집부 지음 / 한림출판사)도 좋다. 『우리 그림책 작가를 만나다』(정병규 지음 / 보리),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이상희 외 3인 지음 / 시공주니어)은 우리 그림책의 어제와 오늘을 작가를 통해 짚어볼 수 있는 자료들이며 조원경의 『그림책에 담긴 세상』(건강미디어협동조합)은 근현대사와 그림책을 연결하여 풀어낸 독특하고 충실한 자료다. 이 책을 통해 그림책의 사회정치적 역할을 돌아볼 수 있다. 


에세이로 전하는 이야기들 

『존 버닝햄』(존 버닝햄 지음 / 비룡소)이나 『이수지의 그림책』(이수지 지음 / 비룡소), 『나의 작은 화판』(권윤덕 지음 / 돌베개), 『호두나무 작업실』(소윤경 지음 / 사계절)은 작가가 자신의 그림책을, 또는 다른 작가의 그림책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는 자료들이다. 그림책작가가 자신의 세계를 직접 말하는 책은 앞으로도 많이 등장할 것으로 본다. 일반인을 위한 그림책 에세이나 서평집은 2000년대 중반 김영욱의 『그림책, 음악을 만나다』(교보문고)가 출간되었을 때만해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서천석 지음 / 창비), 『이토록 어여쁜 그림책』(이상희 외 3인 / 이봄), 『그림책에 마음을 묻다』(최혜진 지음 / 북라이프), 『그림책이면 충분하다』(김영미 지음 / 양철북), 『어른의 그림책』(황유진 지음 / 메멘토)에 이어서 태교 그림책 가이드를 표방하는 『맥주도 참을 만큼 너를 사랑하니까』(전은주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와 에세이로서도 주목받은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무루 지음 / 어크로스), 교사들의 그림책+교육 에세이까지 다양한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나온 『잘 나간다, 그림책』(김서정 지음 / 책고래)이 있다. KBBY 회장으로 일하면서 국제적인 그림책 교류 현장을 경험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만큼 우리 그림책의 세계적 입지도 높아졌다. 판매되는 책은 아니지만 사회적협동조합 그림책도시가 기획하여 펴내는 <한국 그림책 연감>은 그림책 연구자들에게는 보석 상자 같은 자료다. 계간 『창비어린이』에 연재되는 그림책 관련 글들, 『월간그림책』 『어린이와 문학』 『라키비움J』 같은 잡지와 무크지에 실리는 생동감 넘치는 자료들도 소중하다. 


우리가 그림책을 사랑한다면 이 많은 책들을 다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론서는 넘어야 할 산이 아니라 그림책 숲으로 가는 순탄한 길을 안내하는 지도다. 더 많은 그림책 독자들이 그림책과 행복한 경험을 나누기를 기대한다. 


김지은_어린이문학 평론가, 『어린이, 세 번째 사람』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0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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