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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Jul 18. 2022

밤바다로 해루질 가요

바다 곳간에서 찾은 보물들

할머니는 조개를 캐며 말했어요.
딱 필요한 만큼만 잡자. 웅덩이에 갇힌 새끼 고기는 그냥 놔둬. 큰 고기가 돼서 돌아오도록.
그래야 바다 곳간이 비질 않는다.



밤바다로 해루질 가요

조혜란 글·그림 / 44쪽 / 13,000원 / 책읽는곰



주인공 해랑이는 설레는 마음으로 할머니와 함께 엄마 생일 선물을 사러 읍내에 갑니다. 여러 가게 중에서도 가장 눈길이 가는 건 액세서리 가게예요. 멋쟁이 엄마에게 어울리는 액세서리를 선물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할머니는 구경만 하고는 그냥 지나쳐버려요. 대신 해루질 장비를 파는 가게에 들어가 무언가 한 아름 사 가지고 나옵니다. 


해랑이는 할머니가 안고 있는 물건이 엄마의 선물이기를 바랐겠지요. 하지만 온통 바닷가에서 해루질 할 때 쓰는 물건들뿐이에요. 해랑이는 엄마 선물 때문에 조바심을 내지요. 

“엄마 선물은 어떻게 할 거예요?” 

할머니의 대답은 “바다 곳간에 가면 뭐든 다 있다”예요. 


할머니는 미리 알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모든 것이 ‘우연’이었을까요? 해랑이는 엄마 선물을 바닷가에서 발견합니다. 액세서리를 만들기 좋게 구멍이 뽕 뚫린 조개껍데기예요. 바다 곳간에 엄마 선물이 있을 줄이야! 할머니도 미역국에 넣을 조개를 필요한 만큼 주웠어요. 두 사람 다 원했던 선물을 바다 곳간에서 구한 거예요. 



해랑이는 알밴 쭈꾸미를 바다에 놓아주러 갔다가 바닷속을 들여다봐요. 신비롭기 짝이 없는 풍경에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갑자기 해무가 밀려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지요. 가까스로 할머니와는 만났지만 경험 많은 할머니도 섣불리 움직이기 힘든 상황이에요. 한편 한밤중에 해랑이와 할머니가 바다로 가는 걸 지켜본 동네 사람들은 해랑이와 할머니를 구하러 바다로 나가지요. 이웃들의 따뜻한 정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아요. 해랑이와 할머니 몰래 선물도 한가득 가져다 두었거든요. 내일 아침 해랑 엄마 생일상에 오를 반찬거리들이지요. 모두 다 누가 가져다 놨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이에요.



할머니는 이웃들의 도움으로 달걀찜, 나물무침, 숭어찜이 올라간 생일상을 차려낼 수 있었어요. 전날까지 해랑이 마음속에 가득했던 걱정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안개 걷히듯 사라지지요. 해랑이와 할머니가 바다에 나가 구해온 것들과 동네 사람들의 선물로 해랑 엄마 생일이 더 특별하고 풍성해졌으니까요. 해랑이가 만든 조개껍데기 목걸이처럼 세 모녀와 동네 사람들이 정이라는 줄로 꿰어지는 훈훈한 순간이지요. 



이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재작년 12월부터 시작된 팬데믹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연도 줄줄이 취소된 데다 출판 경기도 안 좋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던 올해 초였어요. 우연히 충남문화재단의 지원 사업 소식을 접하게 되었지요. 재단에 제출할 서류 작업을 하는데 스토리보드 첨부라는 항목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토리보드를 그리게 되었는데 제 마음에 쏙 들더라고요. 다행히 출판사도 마음에 들었는지 출간 계약까지 하게 되었고요. 아이디어 스케치부터 완성까지는 올해 3월부터 10월까지 약 7개월이 걸렸습니다.


작업은 경험에 상상력을 보태 손톱 스케치를 하고 현장 취재를 통해 이야기를 구체화해 나갔습니다. 해루질 전문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주인공 할머니처럼 바지 장화를 빌려 입어보기도 하고, 주인장의 안내를 받으며 밤바다 속을 들여다보기도 했지요. 관광지가 된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내며 놀러 온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야간 조개잡이도 해보았습니다. 할머니 마음이 되어보려고 이웃집 아이와 함께 다니기도 했지요. 

밑그림을 그릴 때 연필로 그린 뒤 유성 색연필로 색칠을 해보았어요. 그 거친 느낌이 좋아서 원화를 그릴 때 흉내를 내보려고 했지요. 다른 사람들이 찍어놓은 사진 자료나 유튜브 영상을 참고하여 그리기도 했고요. 원화 그리는 4개월여 동안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항해의 종착지가 어디인지 분명히 알지 못하는 채로 ‘이쯤이면 좋겠다’ 하고 배를 정박하듯 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해루질이라는 소재를 선택하게 된 첫 번째 이유도 팬데믹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어요. 도시민들이 맘 편히 갈 곳이 없어진 지난 2년 동안, 바닷가는 사람들로 북적였어요. 가족은 물론 연인들도 놀이 삼아 해루질을 하러 오다 보니, 해루질이 그야말로 유행이 되어버렸지요. 저도 최근에야 해루질이 전통 어로 방식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고, 옛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해루질을 했을까를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옛사람들은 바다 생물이 대부분 야행성이라는 점을 이용해 횃불을 들고 바닷가에 서있다가 빛을 보고 몰려드는 물고기를 잡았다고 해요. 물 빠진 갯벌을 돌아다니는 게나 고둥, 조개, 낙지도 주웠겠지요? 예전에 갯마을에 살았던 어른들 말씀이 집에 손님이라도 오면 밥상에 반찬 하나 더 올리려고 물 빠진 바다로 나갔다고 하시더라고요. ‘오늘은 어떤 고기가 있을까?’ 하는 기대와 설렘도 있었을 거고, 운이 좋으면 좋은 대로 운이 나쁘면 나쁜 대로 자연에 순응하는 마음도 있었겠지요. 


두 번째 이유는 10년 전에 출간된 『할머니, 어디 가요?』 시리즈에서 못다 한 사람과 자연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고 싶어서였어요. 이번에는 옥이 동생뻘인 해랑이가 할머니와 함께 나와요. 시어머니와 며느리, 딸, 여성 3대가 바다가 주는 무조건적인, 그러나 소박한 선물에 기뻐하는 모습을 통해서 더 많이 갖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서로에 대한 정을 표현하면서 돈독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고요. 바다를 소재로 그림책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바다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된다면 그게 바로 이 작업을 한 보람이겠지요. 



조혜란 작가는 세대와 세대를 잇는 그림책, 즐겁게 보면서 세상을 새롭게 알아 가는 그림책을 꾸준히 만들어 갑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는 『할머니, 어디 가요?』 시리즈와 『빨강이들』 『노랑이들』 『상추씨』 등이 있고 그림만 그린 그림책으로는 『똥벼락』 『사물놀이』 등이 있습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2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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