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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Aug 10. 2022

나를 삼켜버린 욕망

빈칸

홍지혜 글·그림 / 54쪽 / 15,000원 / 고래뱃속



자신만의 커다란 박물관에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보물들만 모으는 수집가가 있다. 무엇으로 저 빈칸을 채울까? 박물관에는 한 점 한 점 모았던 신비로운 물건들로 가득 찼지만 그에게 딱 한 곳 비어있는 칸이 항상 마음에 걸린다. 세상의 진귀한 물건들을 수집하면서 한없이 더 채우려고 애쓰는 수집가에게 어느 날 이상한 소문이 들려온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아름다운 보물이 있다는 것이다. 영혼을 빼앗길 만큼 아름다운 보물. 그 소문의 진위를 따져보기도 전에 수집가의 마음은 온통 보물에 가 있었다. 마음이 들뜬 그가 보물을 갖고 있다는 사람을 찾아 나서고야 만다. 새로운 보물의 주인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와 협상하려 하고, 보물이 보고 싶은 수집가는 서서히 상대에게 빨려 들어간다. 돈이 가득 들어있는 두 개의 트렁크 위에 올라선 채로 뭐든 다 줄 테니 제발 그 보물을 보여달라고 애걸하는 표정은 코믹하기보다 애처롭게 보인다.


아주 어렵게 협상이 끝나고 그는 자신의 박물관에서 보물을 기다린다. 이제 마지막 절차가 남았다. 상대 마음이 변하기 전에 계약서를 서둘러 먼저 쓰고 그 진귀한 보물이 들어있는 상자를 아주 조금씩 열어본다. 

그런데 상자를 들여다본 순간부터 그의 몸이 이상한 형태로 변하기 시작한다. 차츰 감각이 없어지면서 둥그런 형태의 도자기처럼 변해버렸다. 보물 상자를 갖고 온 사람은 물건이 되어버린 도자기 형태의 수집가를 마지막 빈칸에 아주 만족스러워하며 채워 넣는다.


“이제야 빈칸이 모두 채워졌군.”


그동안 수집가가 수집한 수많은 진귀한 보물들은 대부분 사람과 동물의 모습을 한 조형물들이었다. 분명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들이다. 새장 속에 갇힌 사람의 손, 반인반수의 세 바퀴, 믹서기 속의 얼굴, 마네킹이 된 인간, 아파트의 머리를 갖고 가부좌 자세로 앉아있는 모습. 헤아릴 수 없이 꽉 채워진 온갖 형상의 물건들은 그림으로 보기도 어렵고 조형물로 보기엔 상상을 초월한 모습이다. 이 초현실의 공간을 계속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그 속의 일부가 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특히 마지막 장에서 모든 수집품을 보여주는 좌우 양면 네 쪽의 펼침 그림은 작가의 상상력을 모두 보여주는 도판이다. 여기에는 작가의 붓이 가는 대로 하나의 형상이 만들어질 뿐 어떤 표현의 제한도 막힘도 없는 무한대의 공간이 있을 뿐이다. 역설적으로 내가 품은 모든 욕망덩어리가 이곳에 있고 그 마지막 칸을 나로 채우고야 말았다. 국가와 언어, 인종을 불문하고 이 책 속으로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나를 보게 되는 마법에 걸린다. 기묘한 발상의 그림임에도 점점 홀리듯 빠져드는 이 세계에서 과연 나는 빠져나올 수 있을까. 이 그림책 표지를 펼치면 나오는 첫 문장에서 답을 얻는다. 

빈칸을 무엇으로 채울까?


정병규_행복한그림책연구소 소장, 『우리 그림책 작가를 만나다』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1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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