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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Aug 16. 2022

수채 풍경화에 물든 내전의 아픔

바다의 기도

할레드 호세이니 글 / 댄 윌리엄스 그림 / 명혜권 옮김 / 52쪽 / 13,500원 / 스푼북



수채화로 일상의 자연 풍경이나 인물을 그리는 것과 이야기를 그리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바다의 기도』에서 그려내는 장면은 모두 독립된 작품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그림의 연속 장면이다. 


표지에 이어 면지와 1면까지 이어지는 풍경화는 들판과 하늘을 구분할 수 없는 자연 그대로를 그린 풍경화이다. 멀리 바라보이는 푸른빛이 일렁이는 곳은 얼핏 바다일 것도 같고 아니면 지평선 너머 하늘일 수도 있다. 여기 가장 가까운 곳에 아빠와 아이가 손을 잡고 가는 뒷모습이 화폭 가운데를 차지한다. 수채화의 묘미는 초벌 위의 덧칠에 있다. 처음 붓질을 하고 물감이 흡수되어 마른 뒤 약간 진한 채색이 덧입혀지면 그 자체로 입체감이 우러난다. 질감이 있는 수채화지에서 이 느낌은 배가된다. 그럼에도 이 기교는 정물보다 풍경에서 훨씬 더 어려운 작업이다. 적어도 『바다의 기도』에서 만큼은 작가의 수채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림책을 펼칠 이유가 된다. 

아름다운 풍경화는 무슬림을 위한 모스크, 기독교인들을 위한 교회, 그리고 모두를 위한 시장을 지나며 점점 탁한 채색으로 변해간다. 첫 장에서 아빠는 아이와 손을 잡고 들판을 거닐며 말한다. 어린 시절 여름이 될 때마다 할아버지 시골집 지붕 위에 담요를 깔고 잠든 뒤 아침이면 올리브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염소의 울음소리, 할머니가 냄비를 달그락거리던 소리에 깨어나던 평화로웠던 날들을, 특히 음식 튀기는 냄새가 나던 가게 앞을 함께 지나며 시계탑 광장 주변을 산책했던 그때를 기억해주기를. 

하지만 가족이 함께했던 평화롭고 활기차던 그날 저녁이 기억할 수 있는 마지막이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복잡한 원인이 얽힌 시리아 내전, 그림은 정확히 이곳을 그리고 있다.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민주화 요구 시위로 시작된 내전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처럼 투명한 수채화로 그려진 곳에 폭탄이 하늘에서 비 오듯 쏟아졌고 그곳은 죽음과 굶주림이 이어졌다. 무너진 콘크리트와 깨진 벽돌 사이의 좁은 틈에서 작은 빛만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살기 위해 떠나기 시작했다. 


아일란 쿠르디 가족도 터키로 탈출한 뒤 배를 타고 그리스 코스섬으로 향하다 배가 뒤집혔다. 이 사고로 세 살배기 아일란 쿠르디와 다섯 살 그의 형, 엄마가 목숨을 잃었다. 아일란 쿠르디는 터키 휴양도시 보드룸 해변에서 발견되었다. 바닷가에 엎어진 아이의 사진이 모든 매체에 실리면서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이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은 아이가 보이지 않는 바닷가 풍경이 양면 펼친 면으로 그려졌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바닷가에는 전쟁도 평화도 보이지 않는다. 모르고 보면 그저 갈색에서 짙푸른 색으로 이어진 풍경 수채화이다. 자주 펼쳐보고 싶은 아주 인상 깊은 그림책으로. 


정병규_행복한그림책연구소 소장, 『우리 그림책 작가를 만나다』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1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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