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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Sep 14. 2022

그림책 정원을 가꾸는 글로연

그림책 전문 출판사 1 - 글로연

글로연은 ‘글로 연다’는 뜻으로 세상이나 사람과의 관계를 목적어로 두어 만들어진 브랜드이다. 2012년까지는 종합출판사를 지향하며 다양한 책을 출간했다. 돌아보면 이는 자아를 찾아가듯 출판사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던 듯하다. 글로연의 첫 그림책은 2009년에 출간한 『책 읽어주는 할머니』이다. 글작가도 그림작가도 편집자도 그림책은 처음이었던 이들이 만나 씩씩하게 만든 이 책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고 대만, 중국, 멕시코에서 출간되는 기쁨을 주기도 했다. 

2018년부터 글로연은 다시 시작한다는 다짐이 있었다. 그 계기는 여러 부분에서 있었지만, 레지나 작가의 『바로 너야』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받은 배움이 컸다. 세상 모든 존재의 존귀함을 다루는 이 책을 통해 세상의 모든 면면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고 그런 마음이 작가와 독자, 그리고 서점인을 대할 때의 자세를 다잡게 했다. 비단 그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이후로 출간된 그림책들은 거의 모두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명수정 작가의 『세상 끝까지 펼쳐지는 치마』가 ‘2019 BIB 황금사과상’을 수상했고, 이진희 작가의 『도토리시간』과 지은 작가의 『위대한 아파투라일리아』는 ‘2020 BCBF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에, 레지나 작가의 『바로 너야』는 ‘2019 IBBY Silent Books’에 선정되었으며, 이선미 작가의 『귀신안녕』은 ‘2022 IBBY 장애아동을 위한 좋은 책’ 후보에 올랐다. 그리고 2021년에는 이소영 작가의 『여름,』이 화이트레이븐스에 선정되었다. 

국내에서의 성과로는 명수정 작가의 『피아노 소리가 보여요』가 제1회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을 수상했다. 청각장애인들에게 피아노 음악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작가의 의도를 살리기 위해 내지 페이지마다 에폭시 가공을 하고, 또 피아노 연주를 QR 코드에 담아 일반 독자들도 공감각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던 그림책이다. 이 책을 보고 어떤 서점의 대표가 걱정을 담아 말했다. “이런 그림책 만들어서 어쩌시려고….” 팔리는 책과 안 팔리는 책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서점인의 애정 담긴 걱정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책은 이렇게 만들었을 것임에는 변함이 없지만 상을 받은 이후에는 마음을 담은 책은 반드시 누군가 알아준다는 확신이 더해졌다. 


운영 면에서 글로연은 편집자가 중심인 일인출판사이다. 국내 작가들의 창작 그림책 출간에 집중하는 이유도 작가를 알아가고 또 그들이 작품세계를 펼쳐가는 과정에 편집자로서 함께하는 것이 무엇보다 즐겁기 때문이다. 

글로연의 시작에 함께했던 작가들은 대부분 첫 그림책을 출간하는 신인이었다. 당시에는 신인 작가이던 이들이 출판사와 함께 성장하여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작가들이 된 부분은 더할 나위 없이 편집자로서의 큰 보람이다. 

현재는 기존에 함께 작업한 작가마다 가급적이면 일 년에 한 권 이상의 그림책을 출간하게끔 독려하고, 매년 신인 작가의 그림책 한두 권을 더불어 출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물론 기성 작가들과도 당연히 함께하고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그동안 해당 작가가 출간한 그림책과 작품 세계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연구를 선행하여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과정을 필수로 한다. 함께하지 못했던 지난 시간들을 책과 만남을 통해 보충해서 작가가 가진 최대치의 역량이 담긴 그림책을 출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일인출판사인 까닭에 편집, 마케팅, 제작 관리 등 해야 하는 일의 종류가 다양해 버거운 부분도 있지만 그만큼 보람도 다채롭고 크다. 그 보람 중 단연 큰 부분은 독자들과 직접적인 소통으로 얻어진다. 글로연이 독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 중에는 특별한 타이틀이 있다. 바로 띄어쓰기 없이 ‘글로연아름다운독자’라는 이름이다. 아름다운독자는 누구나 신청을 통해 가능하다. 

독자와의 관계를 ‘어떤 조건’으로 맺고 싶지 않기에 의무 사항은 하나도 없지만 아름다운독자가 되면 글로연 그림책 정원 그림이 담긴 명함을 선물한다. 그리고 그들을 아름답게 모시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전국 어디를 가서도 아름다운독자를 만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글로연 그림책 정원 ⓒ이진희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말처럼, 책도 많은 독자의 관심과 사랑이 있어야만 세상에 태어나 쑥쑥 자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지역 독서문화의 심폐기능을 담당하며 독자와 책을 연결해주는 동네책방의 역할은 단연 중요하다. 동네책방에 재능기부 강연을 수십 회 다니면서 그 사실을 피부로 절감하게 되었기에, 글로연은 동네책방에 대한 상생의 배려와 연대를 늘 우선으로 하고 있다.


글로연이 꿈꾸는 출판사의 모습은 저마다의 개성을 지닌 작가들이 각각의 꽃과 나무들처럼 멋지게 자라나 이루어낸 아름다운 글로연 그림책 정원에, 독자들이 찾아와 웃음과 위로와 쉼을 얻어가는 것이다. 

나무마다 모양이 다르고 꽃과 열매가 다르듯, 저마다 다른 작가들의 재능이 진정 제대로 꽃피워진 그런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 더불어 누구보다도 작가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 작가 자신이 사랑하는 그림책이라면 독자들도 그 사랑에 답해줄 것이라 확신한다. 한국을 넘어 세계의 독자들도!  


오승현_글로연 편집장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2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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