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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Sep 16. 2022

따뜻한 감성의 그림책, 달그림

그림책 전문 출판사 2 - 달그림

이제는 ‘그림책’이라고 하면 어린이들만 읽는 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 겁니다. 예전이라면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요즘에는 어른들도 그림책을 곁에 두고 자주 들춰보면서 미소 짓기도 하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지요. 분명한 건 어른들에게 있어 그림책이 갖고 있는 힘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입니다. 달그림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했습니다.


달그림은 도서출판 노란돼지의 임프린트로, 주로 어린이 창작 그림책을 만들던 노란돼지에서 어른을 위한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 새로 탄생시킨 브랜드입니다. 2017년 8월 달그림을 만들고 같은 해 9월 고혜진 작가의 『집으로』라는 작품을 첫 책으로 선보였지요. 병풍으로 제작된 이 그림책은 아이가 처음으로 친구의 집에 다녀오는 짤막한 서사를 낮과 밤으로 대조하여 보여줍니다.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낮은 지붕과 담장이 즐비한 골목길 배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도시 속에 사는 어른들에게 그리움과 애틋함을 자아냅니다. 이 작품은 아이의 첫 외출 경험을 얘기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떠올릴 수 있는 순간을 우리 손에 슬며시 쥐어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달그림은 이처럼 어른들에게 따뜻한 울림을 전해줄 수 있는 감성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더미를 만나게 되는데, 바로 전소영 작가의 『연남천 풀다발』입니다. 작가가 매일 홍제천을 산책하면서 본 풀꽃들을 통해 깨달은 삶의 메시지를 들려주는데, 장면마다 수채화로 그려진 풀꽃 그림과 간결한 구절이 어우러진 방식이 독특하고 신선했습니다. 원화를 직접 봤을 땐 그 정갈하고 아름다운 그림체에 누구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어떻게 하면 이 느낌을 그대로 살려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가장 잘 어울리는 종이를 고르고, 누드 제본으로 제작했습니다. 2018년 4월에 출간한 이후 감사하게도 정말 많은 사랑을 받은 덕분에 달그림을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점차 늘어나는 걸 기쁘게 체감한 나날이었습니다.


이어서 전소영 작가가 직접 기르는 화분들을 소재로 인간관계에 관한 그림책 기획에 들어갔고, 일 년 뒤인 2019년 4월 『적당한 거리』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작가는 화분을 키우면서 각각의 화분마다 필요한 관심의 정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몸소 배웠습니다. 이는 마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도 같지요. 너무 가깝거나 너무 멀어서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관계 속에서, 적당한 거리란 상대방을 배려할 최소한의 거리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적당한 거리』는 가로형으로 긴 판형에 보도니 제본으로 제작해 기존의 그림책들과는 또 다른 시원한 느낌을 줍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작가만의 섬세하고 사려 깊은 시선이 책 안에 오롯이 담겨있어, 이 책 또한 많은 분들에게 주목받아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지요.

『적당한 거리』 중에서

마지막으로 겨울만 되면 떠오르는 그림책, 박현민 작가의 『엄청난 눈』을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작가님이 처음으로 출판사에 오셨던 날 더미를 보고 정말 놀랐던 기억이 나는데요. 흰 바탕을 온통 눈으로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작가의 그림은 군더더기 없이 심플했고 글도 많지 않았지만, 우리가 늘 갖고 있던 틀을 완벽하게 깨는 작품이었습니다. 우리는 고민할 필요 없이 2020년 겨울에 맞춰 출간을 준비했습니다. 『엄청난 눈』을 진행하면서 편집부에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글의 유무였습니다. 독자의 상상으로 읽게 하는 그림책이라 글이 어느 정도 들어가는 게 좋을지, 다 빼야 할지 오랫동안 의논했지요. 오랜 고민 끝에 이 책의 매력에 더 힘을 실어주기 위해 ‘글 없는 그림책’으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대신 본문의 첫 장에만 문장을 넣어 짧은 힌트를 주기로 했지요.


그동안 달그림에서는 각각의 책마다 잘 어울릴 만한 형태와 제작 방식을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현해냈기에 인쇄와 제작 부분 모두 뛰어나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요. 『엄청난 눈』 또한 디자인 부분에 많은 신경을 기울였습니다. 표지는 최대한 심플하게 만들기 위해 흰 배경에 집 그림만 두도록 했고, 눈의 촉감을 살릴 수 있는 이지스킨으로 코팅을 선택했습니다. 덩그러니 놓인 집 그림은 도려내어 내지가 보이도록 제작했으며 내지는 눈과 대비되는 새파란 하늘에 함박눈이 내리는 장면으로 넣었지요. 디자인에서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색이었습니다. 이 책에 쓰인 색상은 오로지 파란색과 노란색뿐이지만 별색이기 때문에 가장 예쁘고 산뜻한 조합으로 맞추기 위해 전념했습니다.


『엄청난 눈』이 태어나 비플랫폼, 책방 사춘기에서 전시와 행사를 연이어 진행하던 2020년 겨울 동안 정말 엄청난 눈이 내렸습니다. 종종 사무실 창밖에서 눈이 내리면 저는 자연스레 이 책을 떠올리면서 반가움이 앞섰습니다. 아마 작가님에게도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한 겨울이었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게 시작이었는지 『엄청난 눈』은 2021년에 볼로냐 라가치상 오페라 프리마 스페셜멘션 부분 수상작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이미 2020년 우수출판콘텐츠로도 선정되었지만, 볼로냐 수상은 저희에게도 처음 있는 일이라 너무나 기쁘고 벅찬 소식이었습니다. 그때는 일을 하다가도 불쑥 올라오는 즐거운 마음에 서로 히죽거리면서 웃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림책이 가진 힘은 생각보다 강하고 깊습니다. 따뜻하고 건강한 밥 한 끼 같은 그림책을 한 권씩 만들 때마다 그만큼 달그림을 좋아해주는 분들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걸 느낍니다. 이 든든하고 고마운 마음들을 그대로 책 속에 스며들도록 하기 위해 달그림에서는 오늘도 열심히 그림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박예슬_달그림 출판사 편집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2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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