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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Sep 07. 2022

특별 주문 케이크

반짝이는 날들을 위한 달콤한 케이크

특별 주문 케이크   

박지윤 글·그림 / 42쪽 / 15,000원 / 보림



케이크는 특별한 날, 축하와 사랑과 격려와 기쁨으로 반짝이는 삶의 순간을 화려하게 장식해주는 음식입니다. 그러나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가끔은 그저 필요하기도 합니다. 사실 시험을 잘 본 날보다 시험을 망친 날 더 필요하지 않나요? 기운을 내고 스스로를 위로해야 하니까요. 마음이 파삭할 때 한 조각 명랑함을 되찾아야 하니까요. 

“케이크 한 조각 먹어야겠어! 지금 나에게는 예쁘고 단 게 필요해.”

숲속의 비둘기 할머니는 케이크를 먹는 것도 좋아하고 만드는 것도 좋아하는 분입니다. 좋아하다 보니 몰두하고 몰두하다 보니 잘하게 되었죠. 이웃의 여러 동물이 각각의 사정으로 특별한 케이크를 주문합니다.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짝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달리기 시합 후 친구들과의 뒤풀이를 위해, 주변의 반대를 이겨낸 결혼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가족에게 사랑과 그리움을 전하기 위해, 아픈 친구의 병문안을 위해. 각기 다른 동물들의 다른 입맛, 다른 사정이 할머니의 주문서에 도착합니다. 과연 어떤 재료로 어떤 케이크를 만들어낼까요? 

비둘기 할머니는 이웃에 대한 자상한 이해와 통찰이 있는 분일 거예요. 각자의 입맛과 사정을 살펴 이런 재료가 좋을까, 이런 모양은 어떨까 연구해야 하니까요. 주문하는 이도, 선물 받는 이도 만족시키려면 꽤 궁리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래도 할머니는 매번 즐겁게 고심하며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케이크를 구워내지요.



비둘기 할머니의 ‘일’은 멋집니다. 루틴과 함께 전문성이 쌓이는 일이면서 케이스마다 적합한 작은 창조를 더하는 데다가 구석에서 혼자 즐기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단 한 사람일지라도 누군가를 기쁘게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제가 생각하는 행복한 ‘일’의 양태입니다. 이른 은퇴를 이룬 이들보다도 숙련된 솜씨로 가능한 오래 즐겁게 일하는 ‘노년의 현역’이 더 부럽게 느껴져요. 휴일에는 고요히 산책하고 재미난 책을 읽고 소중한 누군가와 맛난 음식을 나누며 휴식의 시간을 보냅니다. 이 또한 제가 아는, 그리고 겪은 거의 유일한 ‘행복’의 모습입니다.


다른 존재와 어울려서 살아간다는 것은 여러 상황이 함께 얽혀 굴러가기 때문에 어떤 일도, 어떤 마음도 단어 하나로 표현이 충분할 만큼 납작하지 않더군요.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꼭 최고가 되는 건 아니고, 최고가 아니라고 해서 실패하는 것도 아닙니다. 가까운 이의 성취를 함께 기뻐하며 축하하다가도 부러움과 자학이 한 방울 섞여 우울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요. 케이크를 주고받는 이들의 상황들도 복합적인 양감을 가지게 하고 싶었습니다.

생쥐네 일곱 남매의 일과는 대개 신나는 놀이시간입니다. 어린이는 자고로 신나게 놀아야 마땅한 존재지요. 이웃의 곰 아저씨는 고요한 시간을 잃었습니다. 괴롭습니다. 아이들을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괴롭습니다. 공존의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생일 케이크를 선물하며 일정 시간의 고요를 부탁합니다. 토끼 소년은 설레는 마음을 고백했지만 꼭 사랑을 이루지는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실수로 자기가 누군지 적는 걸 깜빡해서 토끼 소녀는 다른 누군가로 착각하게 될지도 모르지요. 달팽이 팀은 달리기 시합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꼴찌를 합니다. 모든 팀이 다 이길 수는 없으니까요. 모두 열심히 했어도 누군가는 꼴찌를 하게 되지요. 그래도 지난번보다는 빨라집니다. 꼴등이지만 조금 발전한 꼴등입니다.

다람쥐 씨와 족제비 씨의 결혼처럼 주변으로부터 응원받지 못하는 결정을 밀고 나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다람쥐와 족제비 부부나 엄마가 부재한 고양이 가족은 어려움은 있으되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아낌없이 표현하며 살아가는 행복한 가족입니다.

오랜 친구를 잃은 레트리버 할아버지는 가슴이 아프지만 담담하게 이별 인사를 합니다. 할아버지는 누구의 삶에나 상실과 죽음은 내재된 속성이라는 걸 알만큼 살아와서 ‘잘 가, 곧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건넬 수 있었겠지요.


선물하는 동물들의 마음을 담은 카드와 편지글도 케이크의 형상을 만드는 만큼 중요한 부분이었어요. 케이크를 그려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시작했는데,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주고받는 이들의 마음을 그리게 되더군요. 축하하는 마음, 부탁하는 마음, 좋아하는 마음, 응원하는 마음, 고마워하는 마음, 그리워하는 마음, 스스로 격려하는 마음. 케이크와 함께 전해지는 짧은 편지글을 쓰기 위해 때로는 삶의 경험치를 총동원해야 했어요.


반짝이는 기쁨과 사랑과 성취의 순간에, 혹은 슬프거나 힘겨운 시간에도 우리는 종종 케이크를 먹게 되겠지요. 기쁜 일에는 함께 축하하고 싶다, 힘들고 쓸쓸한 날에도 그대로 무너지지 않고 기운내고 싶다는 마음으로요. 이런 작은 조각들의 달콤함을 연료로 매일매일 우리 함께 살아가요. 


박지윤 작가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교(Hills)에서 그림책과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습니다. 『뭐든지 나라의 가나다』와 『돌부처와 비단장수』를 쓰고 그렸으며 그린 책으로 『슬픈 노벨상』 『엄마의 결혼식』 등이 있습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2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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