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우주를 담고 라이카는 말한다

작업실에서 만난 젊은 작가 - 이민희

by 행복한독서

이민희 작가의 『라이카는 말했다』가 나오기 전에는 라이카라는 이름을 전혀 몰랐었다. 1957년 소련이 발사한 스푸트니크 2호에 살아있는 생명체 강아지 라이카가 우주 공간에 쏘아 올려져서 돌아오지 않고 우주 어딘가에 머물고 있을 거라는 사실도.


2007년 처음 출간되었을 때는 우리나라 그림책에서 다양한 시도가 있던 무렵이었다. 더구나 이 작품을 낸 작가가 그림책작가라면 당연하다고 여겼던 미술대학 출신이 아닌 전혀 다른 전공을 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작가를 찾아가는 길은 이런 몇 가지 호기심에서였다. 파주 헤이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작업실을 겸한 아주 작고, 한 사람이 겨우 계단을 오르내릴 정도의 좁고 가파른 3층 집이었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게 된 데에는 몹시 가파른 길을 힘들게 넘어온 그만의 이야기가 있다.


이민희작가.jpg ⓒ김지원




중학교 다닐 때까지 고향 정읍에서 자랐던 그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인근의 더 큰 도시 전주로 나갔다. 혼자 하숙을 하며 지냈지만 스스로 시골 출신이라는 것과 낯선 곳에서 다른 친구들에 끼지 못하는 외로움도 그를 더욱 고립되게 만들었다. 고3 시절은 청소년기를 통과하던 그에게 말 못 할 외로움이 한층 겹쳐지기도 했는데 크리스마스이브 날 방학이 되어 집에 갔을 때 아버지의 병이 위중하여 끝내 수술도 못 하시고 세상을 떠나셨다.


대학을 진학하는 데 사람들은 흔히 특정한 분야에 지원해 미래에 어떤 직업을 갖겠다는 막연한 기대를 하는 데 비해 그는 전공을 막연하게 택했다. 그것은 과학자이기도 했고 또 어쩌면 무언가를 스스로 창작하는 작가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간 곳이 천문우주학과였다. 국내에는 세 곳에만 있었고, 대학에 입학했어도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어떤 것에도 그다지 빠져들지 못한 채로 겨우 졸업을 하게 되었을 때 논문 심사를 하셨던 교수님은 “실천하지 않는 열정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씀으로 그를 마지막까지 담금질해주었다. 그런데 그의 속마음은 사실 딴 데 가 있다는 걸 누구도 알 리가 없기에 학교는 학교고 삶은 또 다른 저편이었다.


졸업 후 혹시 취직에 도움이 될까 싶어 컴퓨터 그래픽 자격증을 취득 후 잠시 벤처 회사에서 일하다 거품처럼 회사가 없어지는 바람에 서울로 오게 되었다. 스물여섯의 나이에 전혀 새로운 일을 꿈꾸었다. 그림이 그리고 싶어 만화 학원에 등록해 다녔는데, 다른 곳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번 돈의 절반인 삼십만 원씩을 내고 기초를 닦았다. 그러나 그림과 함께 그가 정작 하고 싶었던 것은 이야기였다. 내면에 꿈틀거리는 뭔가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데 너무 막연했고 어디서부터 기초를 쌓아야 할지 벽에 부딪친 것처럼 막막했다. 폐를 끼치던 오빠들에게 5년만 기다려 달라고 했기에 점점 몰린다는 생각도 그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가 한창일 때 그 열망은 우연한 기회로 만난 ‘어린이책작가 교실’로 이어졌다. 여기서 만난 어떤 분이 그에게 스치듯 그러나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해주었다. “짧은 글이 너에게 맞아.” 그의 말대로 결국 그림책과 어울리는 길을 어렴풋이 열게 된다. 거기에 평생 함께할 남편을 학원에서 강사와 제자로 만나게 된 것도 어쩌면 운명처럼 찾아왔다. 동반자로서 한 사람은 만화가로 한 사람은 그림책작가로 서로를 지켜봐주는 동지가 생긴 것이다.


2005년에 결혼한 뒤 부부는 악몽 같았던 서울살이를 하다 산으로 갔다. 형편에 맞춰 찾아간 곳이 경기도 포천 진목리 죽엽산 중턱의 외딴집이었다. 2년간 산속 생활은 남편인 홍연식 작가의 『불편하고 행복하게』라는 만화로 고스란히 그려진다. 산 아랫마을 사람들조차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외진 곳에서, 부부는 겨울이면 연탄난로를 안에 들여놓고 견뎌냈다. 이 죽엽산에서 작가는 그의 첫 데뷔작인 『라이카는 말했다』를 탄생시켰다. 처음 작품을 공모전에 응모하려 했지만 접수비 삼만 원이 없어서 포기할까도 했다. 그런데 남편이 비상금으로 어렵게 접수해주었다. 이들 부부에게 무조건 견뎌내야만 하는 고된 시기였다.


그는 집중해 작업하기보다는 다른 일을 하다가 틈틈이 그린다. 이런 그의 방식을 함께 지켜보는 남편은 작업하는 데 준비 기간 없이 곧바로 들어가는 것에 신기해한다. 그의 그림 속 이야기 세계는 지구라는 행성을 마치 다른 행성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무심하고 천연덕스럽게 그려낸다. 인간 세계의 문명을 날카롭게 바라보지만 유연하게, 그러나 해학과 풍자가 있는 표현으로 묘사하고 녹여낼 줄 안다. 『옛날에는 돼지들이 아주 똑똑했어요』에서 보는 패러디는 평범하지만 다른 사고의 결과물이다.


『별이 되고 싶어』 『새 사냥』 등 그 뒤로 나온 십여 편의 작품들도 이런 연속성 있는 작업의 유형들이다. 여기에는 다른 세상을 보고 탐구하는 특별한 시선을 눈여겨본 출판사 대표의 눈썰미도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그의 가장 강점은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일정한 틀에 갇히지 않고 자신만의 작업 세계를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모두를 재주에 의존하지 않고 그림책을 하나의 이야기로 본다는 점에서 그는 매우 독특한 작업 세계를 추구한다.


정병규_어린이책예술센터 대표, 『우리 그림책 작가를 만나다』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9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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