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결 시대의 감염병과 연대 의식

by 행복한독서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파올로 조르다노 지음 / 김희정 옮김 / 96쪽 / 8,500원 / 은행나무


인류 역사에서 가장 찬란했던 마야와 잉카문명은 서양인이 옮긴 바이러스에 의해 무너졌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지적했듯이 전쟁과 무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균’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했던 역사의 기록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로 잘 알려진 ‘페스트’는 1346년 유럽 전역을 초토화하고 19세기 중반 인도에서만 천만 명이 넘는 사망자를 유발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코로나19와는 비교할 수 없다. 언제나 현재진행형의 공포가 과거의 그것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물리학자이자 소설가인 파올로 조르다노는 로마가 봉쇄되자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를 썼다. 대략 한 달 동안의 기록인 이 책은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현대인의 불안과 공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물과 공기는 다이아몬드보다 중요하지만 평소에는 그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대가 없이 누구나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재화라고 해서 ‘자유재(free goods)’라고 부른다.

코로나 사태로 우리가 잃어버린 자유재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친구와 포옹하며 가까이 앉아 이야기하는 평범한 일상이 아닐까.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주말에 교회에 가고 북적대는 놀이공원에 가는 일상은 얼마나 소중했던가.


이제 사회적 거리 두기는 뉴 노멀(new normal), 즉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새로운 일상의 예의로 자리 잡았다. 감염은 무서운 속도로 지구를 장악했고,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우리의 일상을 정지시켰다. 이 책이 시작되는 2월 29일 윤일에 전 세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는 8만5000명, 사망자는 3000명 정도였으나 그 후 80일 만에 감염자는 500만 명, 사망자는 32만 명을 넘겼다. 앞으로도 감염자와 사망자가 얼마나 더 증가할지 알 수 없다. 파올로 조르다노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기다리며 힘든 일상을 견디는 우리에게 정서적 위로를 건네는 대신 ‘새로운 생각’의 세계로 안내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 그 실체는 매일 증가하는 감염자 수가 아니라 ‘불신’이다.


우리는 네트워크 세상에 산다. 초연결 시대의 감염은 ‘인간은 섬이 아니다’라는 존 던의 묵상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파올로 조르다노는 “전염의 급속한 확산은 우리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서로 분리할 수 없는 범세계화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지적한 후, “전염은 우리 연결 관계의 감염”이라고 선언한다. 결국 “다소 불편이 따르겠지만, 현재 우리가 쓸 수 있는 유일한 백신은 신중함”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위기를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신뢰와 연대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전염의 시대에 연대감 부재는 무엇보다도 상상력의 결여에서 온다”라는 말이 새삼스럽다.


인간은 적응과 망각의 동물이다. 고통은 가려진 진실을 드러내고 인생의 우선순위를 고민하게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면 깨달음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감염의 시대는 반복된다. 연대의 필요성, 생각할 용기, 생태계에 대한 관심은 초연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앞으로도 계속 필요한 덕목이다.


류대성_『질문하는 삶』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0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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