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다이스를 꿈꾸는 사실주의자

작업실에서 만난 젊은 작가 - 소윤경

by 행복한독서
작가에게 파라다이스는 어떤 곳인가? 그의 작품 『호텔 파라다이스』는 그가 꿈꾸고 바라는 세상의 끝일까? 작가는 스무 살이 되던 해 인도의 타르사막을 찾아 낙타와 함께 걸어갔던 광활한 사막과 신비로운 사원의 기억을 이 책에서 그려낸다. 하지만 이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마냥 좋을 수만은 없는 것처럼 이 땅에서의 살아감도 그리 녹록지 않다.


소윤경작가.jpg ⓒ김지원


십여 년 전 그림에 더 전념하려고 서울의 아파트를 떠나왔다. 양평의 지평면 소재지에서 여주 방향으로 가는 길, 높지 않은 언덕 끝자락에 작가가 사는 집이 마당을 끼고 양지바른 곳에 있다. 그러나 실제 여기서 맞닥트린 건 아주 많이 고쳐야만 살 수 있는 허술한 집과 동네 토박이의 텃세였다.


이 모두를 헤치고 지금은 번듯한 작업실로 자리를 잡았다. 마당의 나무 한 그루, 잔디, 나무 대문, 옥탑방 작업실 등은 그의 오랜 시간 많은 수고와 사연들이 있고서야 비로소 제 모습을 갖추었다. 이런 시골살이 필살기는 저절로 된 것이 아니었다. 삼 남매 중 유일하게 그림을 잘 그려서 자신만의 길을 가게 된 이유도 있지만 어린 시절도 한 몫을 한 것으로 그는 생각한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근무지가 삼천포에서 시작해 전국 여러 지방을 전전할 때, 형제 중 가운데였던 그가 가족을 위해 떨어져 지내야 했다. 식구가 많아 보이면 전셋집 얻기가 눈치 보인다 하여 일시적으로 원주 외가댁에 홀로 남겨졌다. 그 잠시의 기간이 네 살 무렵부터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의 유년 시기였다. 큰 어미 소와 함께 풀 먹이러 야산에 갔다가 돌아오는 일도 어린 그의 몫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땅의 풀들과 나무, 동물들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다. 딱 그 시기에 농촌 생활을 경험했기에 지금의 이 생활이 낯설거나 외롭지 않다. 아니 한가하거나 외로울 틈이 전혀 없다. 고개만 돌리면 집 안팎에 무엇이든 손댈 것이 널려있다. 봄부터 여름까지, 돌아서면 올라오는 풀들과 움직이는 생명들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생존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가 보인다.


사실 작가의 작업은 그림책도 그중 하나지만 언젠가 대중과 만나게 될 그때를 위해 평소 천천히 완성해가는 큰 화폭의 미완성 작품들이 많다. 이런 과정 속에 『콤비 Combi』도 탄생했다. 세월호에 갇혀 희생된 아이들, 눈만 뜨면 해외 뉴스에 나오는 팔레스타인 소식, 여기에는 노약자와 어린이들이 가장 먼저 희생의 제물이 되는 참상을 작가는 외면할 수가 없었다.


‘2018 광주비엔날레’ 전시에 『콤비 Combi』의 드로잉 원화를 선보이면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자신의 작품을 관람객들에게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작가 자신의 생명관, 인류애, 성장기 할머니와 부모님에 대한 회한과 연민 등을 작품 속에 담아낸다. 달팽이, 파충류, 애벌레, 곤충, 해파리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한데 어우러진 생명체들은 서로에게 친구이기도 하고 자신이기도 하다. 인간들은 멸종을 하더라도 끊임없이 전쟁하고 살육하겠구나 하는 생각, 그렇다면 이 종족은 멸종 후 유전자 변이를 통해 또 다른 생명체로 다시 이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작가의 상상력은 멈추지 않고 이어져 사람 중심의 세상을 뛰어넘는 강렬한 메시지로 휘어 감는다. 세속화하고 타락하는 인간을 신비주의적이고 초현실적인 드로잉으로 상징화하는 것 같은, 어찌 보면 난해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환상적이고 이보다 더 명쾌할 수는 없다.


소윤경작가작업실.jpg ⓒ소윤경


보통의 그림책 원화는 그림책 사이즈의 100퍼센트 안팎에서 완성하지만 『콤비 Combi』는 일반 미술관에 전시했을 때 좀 떨어져 볼 수 있을 만큼 스케일이 큰 작품으로, 작가가 관람객에게 얘기하기 전에는 그림책 원화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터였다.


“접시 위의 음식물에 대한 미안함과 곤란함이 나를 이 기묘한 레스토랑으로 이끌었나 보다. 다만, 사람들의 사치와 욕심이 지구를 삼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 말은 작가가 또 다른 작품 『레스토랑 Sal』의 마지막 장에서 한 말이다. 여기에서 그는 극도로 정갈하고 세련된 레스토랑 sal과 조리 공간 내부를 묘사한다. 마치 딥 퍼플의 「에이프릴April」에서 연주 음악 8분 30초 후에 이어지는 보컬의 등장처럼 적막을 깨는 방식의 판타지를 연출한다. 인간의 품위와 음식에 대해 불편하지 않게, 그러나 끝까지 지키려 하는 것은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예의’이다. 잘 살펴보면 그의 작품 곳곳에서 미래의 예감 또는 영감을 감지한다.


이런 점이 바로 소윤경 작가가 출판 미술과 순수미술, 일러스트레이션의 경계를 쉽게 넘나드는 지점이다. 비록 책을 만들어 작가가 직접 강연과 체험 등 홍보 활동을 위한 3종 세트를 모두 해야 하는 요즘이지만 한 가지 확고한 신념이 있다. 부유한 사모님이 억대 미술품을 사 모으는 것보다는 일만 원 안팎에 살 수 있는 그림책이 팔리는 게 훨씬 더 좋지 않은가라는. 이십 년 넘게 일러스트레이터와 글쓰기로 활동해온 작가의 방향은 이렇듯 어른이 보는 예술 그림책으로 향한다. 애초에 잘못 심긴 예술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바꿔주기 위해서.


가끔씩 문학작품이 그의 숨통을 트이게도 한다. 『요괴 소년』은 드물게 그를 만족시켰던 작품 중 하나다. 실제로 문학작품과 그림작가의 세계가 잘 맞아서 완성도 높은 책으로 나타난 경우다.

어린이를 위한 예술과 문학이 따로 없듯이, 작가는 아이들도 하나의 인격체라는 전제를 두고 작업하려고 한다. 사실은 사실대로 그러나 판타지스럽게. 이런 그의 독특한 철학이 드러나는 작품들을 계속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병규_어린이책예술센터 대표, 『우리 그림책 작가를 만나다』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9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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