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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Nov 24. 2022

알고 나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작가

동네에서 만난 작가 - 이랑

만화가 이가라시는 이랑의 노래 「누군가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의 제목을 보고 “한 방 먹은 듯”했다. 그의 “재능에 놀랐고 또 질투했다. 나는 왜 이런 걸 만들지 못했을까” 하고 한탄했다고 말했다. 어떻게 이런 노래를 만들었을까 싶은 가수이자 작가 이랑을 작업실에서 만났다.  


대답 없는 사회에서 대답을 구하다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이하 모쪼록)는 만화 『보노보노』 시리즈의 작가인 이가라시 미키오와 이랑이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책이다. 글로벌 프로젝트로 시작되었으나 국경이 봉쇄된 재난의 시기를 기록한 책이 되었다. 일상의 어려움부터 자본주의의 극복과 미래에 대한 고민까지 스스럼없이 나눴다.  


이랑은 지금껏 3집 앨범을 발표한 가수이자 작가다.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판 생활형 인디가수다(이 사건의 전모는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에 소상히 나온다). 이보다 중요한 건 노래. 몰랐다면 모를까 알면 그의 노래를 한 번만 들을 수 없다. 삶의 피로가 깊을수록 반복해 듣게 된다. 『모쪼록』의 시작은 가수로서 이랑의 일본 활동과 닿아있다. 이랑의 만화 『내가 30代가 됐다』의 일본판에 이가라시가 추천사를 썼다. 두 사람이 만날 인연이었는지 비슷한 점이 많다. 이창동 감독을 좋아하고, 고양이를 기르고, 심지어 고1의 자퇴까지. 이랑은 처음부터 이가라시와 잘 통할 줄 알았던 걸까. 

이랑은 “완전히 믿고 있었다”라고 했다. 십 대에 본 이가라시의 만화 『보노보노』와 『I 아이』 때문이다. 『보노보노』는 마냥 귀여운 만화가 아니다. ‘내가 보는 세계의 신은 나다’라는 『I 아이』의 주제가 숨겨져 있다. 이랑은 만화를 보며 이가라시와 자신이 비슷하다고 여겼고 만나자마자 십년지기를 대하듯 콜라보를 제안했다.  


삼십 대 중반인 이랑은 여전히 질문이 많다. 이상한 소리 좀 그만하라는 질책을 숱하게 들었다. 그에게 한국 사회는 ‘대답 없는 사회’였다. 이가라시와 서신 교환을 하며 그는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대답해주는 사람을 처음 만났다. 첫 편지부터 이랑은 “신은 왜 금은보화를 좋아할까요?” 같은 질문으로 스파이크를 날린다. 이가라시는 지금 필요한 건 소파와 냉장고뿐이라며 가뿐하게 받아친다. 책이 중반을 넘기며 대화는 깊어지고 빛이 난다. 특히 이가라시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만약 자신이 사는 미야기현이 일본에서 독립해 미야기국을 만든다면 “누구도 타인을 고용하지 않고 고용되지 않는 오직 개인 사업자들로만 이뤄진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 구절을 읽고 나는 벌떡 일어났다. 이가라시는 마르크스주의자였다. 『모쪼록』은 작가로서 이랑을 확인하는 책이자 이가라시를 재발견하는 책이다. 


이랑은 아버지뻘인 30여 년 연상의 이가라시가 어렵지 않았을까. 어린 이랑은 집안의 가부장적 위계가 부당하다고 느끼며 자랐다. 그때부터 “누구나 평등하다. 다만 먼저 태어난 사람이 있을 뿐이다”라고 생각했고, 실천하는 편이다. 예컨대 만나자마자 말을 놓는다. 우리 사회에서 당황스러운 일이나 덕분에 나이 많은 어른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간다. 예순이 넘은 이가라시도, 이제 열 살인 펜팔 어린이도 모두 이랑의 친구다. 


작가는 대신 한탄해주는 사람 

이랑은 직업이 많다. 가수이며 작가고 소설도 발표했고 영화도 만들었다. 보험설계사로도 일한다. 이 모든 일의 시작에는 기록하는 이랑이 있다. 일기를 비롯해 어린 이랑이 쓴 모든 글을 검열하는 엄마에게 걸리지 않도록 책상 유리 같은 기묘한 곳에 기록했다. 중학교 때까지 인형에게 말을 했다. 자퇴를 하고 독립한 후 노트에 기록을 시작했다. 죽을 때 함께 태워야 할 날것의 이야기가 담겼다. 문자뿐 아니라 음성과 그림 등으로 미친 듯 기록하고 정리한다. 여기서 가사와 소설과 글이 나온다. 이창동 감독은 한예종에서 들은 마지막 수업에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비법은 일기 쓰기’라고 했다. 이가라시도 “그건 소설을 쓰는 비법이자 만화를 그리는 비법, 나를 알아가는 비법”이라고 공감했다.  

기록하는 이랑은 노래 가사와 에세이와 팟캐스트에서 하는 이야기의 결이 같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안다. 초등부터 성인을 대상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법을 여러 해 가르쳤다. 모여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저는 너무 평범해서 할 이야기가 없어요”라고 하지만, 할 이야기가 없다면 수업에 왔을 리 없다. 이랑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며, 다시 말해 시스템에 들어가는 순간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법을 잊는 것 같다”고 했다. 모두와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법을 잊고 사는 것, 이것이 우리의 불행이다. 이 지점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가라시의 말처럼 작가는 ‘대신 한탄해주는 사람’일지 모른다. 


이랑은 잘 우는 사람이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을 보고 데굴데굴 구르며 울었다. 어릴 때부터 잘 울었고, 울지 말라고 야단을 맞으면 무서워 더 울었다. 그는 최근 몸이 아파 병원에 갈 일이 많았다. 울면서 밥을 시키고, 기다리며 울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울면 모두가 진정하라고만 하는데 병원에서는 아무도 눈치 주지 않았다. 울어도 괜찮은 곳을 찾았다. 누구나 자신이 불쌍해서 울기 시작한다. 그러다 모두가 불쌍해서 운다. 이랑 말처럼 이 세상에 강한 사람은 없다. 나처럼 너도 불쌍하다고 느낄 때 우리는 손잡을 수 있지 않은가. 


이가라시의 3대 스트레스는 돈, 병, 마감이고 이랑은 오로지 남이 시킨 일이다. 자신이 생각한 일은 재미있지만 남이 시킨 일은 힘들다. 그래도 이랑은 시킨 일을 잘한다. “좋아서 하는 일보다 먹고사는 일을 우선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먹고사는 일을 정신없이 하다 보니 그 일에서 좋아하는 과정이 생기곤 합니다.” 

이랑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이랑처럼 질문할 수 있을까, 울 수 있을까, 자유로울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한미화_출판 칼럼니스트, 『동네책방 생존 탐구』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2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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