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독서 Nov 21. 2022

좋아하는 걸로는 지지 말자!

동네에서 만난 작가 - 김혜경

어깨에 힘을 뺀, 자유분방이 돋보이는 ‘아무튼’ 시리즈에는 그 유명한 김혼비의 『아무튼, 술』이 있다. 2019년에 나온 이 책을 읽으며 김혜경 씨는 장탄식을 했다. ‘술’은 자신이 써야 하는 주제였다! 술이 나왔으니 그렇다면 술집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모으고, 그 마음에 자신을 비춰보며 『아무튼, 술집』이 탄생했다. 경고하자면, 책을 읽으면 술이 마시고 싶어진다. 숙취는 책임 못 진다.


직장인이자 팟캐스터이자 작가로

김혜경 씨는 직장인으로 5년째 ‘술 마시며 시 읽는 시시알콜’이란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 시대의 글쓰기와 딴짓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작가다. 모든 시작은 팟캐스트였다. 지금은 남편, 당시는 연인이었던 이승용 씨와 데이트하던 시절, 술을 마시며 시 한 편을 같이 읽곤 했다. 술의 종류와 맛과 역사도 안줏거리였다. 술자리에서 했던 이 모든 이야기가 날아가는 게 아쉬워 아카이빙을 목적으로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시가 있는 간편한 술자리에서 연인과 대화하는 시간’ 정도의 콘셉트였다.


한 달에 두 번 4회 분량을 녹음하고, 매주 1회 업로드한다. 누구나 ‘유튜브 혹은 팟캐스트나 한번 해볼까?’ 생각하지만 엄두를 못 낸다. 김혜경 씨는 업무 강도가 높기로 유명한 광고 회사에 다니며 5년간 팟캐스트를 하고 있다. 대체 동력은 뭘까. 상업방송처럼 대본을 쓰지는 않지만 녹음을 하려면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그때그때 소개할 시집을 찾고, 초대 시인에게 던질 질문을 준비하고 무엇보다 시와 어울리는 술을 선택하고 이유를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 녹음할 수 있다. 머릿속 한구석에서 이 생각이 떠나질 않았고 실제로 일과 병행하며 여러 번의 위기를 겪었다. 그럼에도 결론은 “아무리 바빠도 술은 마신다. 그러므로 팟캐스트는 할 수 있다!”였다.


직장인으로 산다는 건 끊임없이 아웃풋을 토해내야 한다는 뜻이다. 아웃풋을 위해서는 당연히 인풋이 필요하다. 인풋이 따라주지 않을 때 우리는 소진된다. 김혜경 씨에게 팟캐스트가 인풋이었다. 심지어 매번 ‘시와 술을 페어링’하는 일은 전혀 이질적인 것들을 연결하는 광고인 특유의 아이디어 단련에 좋은 훈련이 되어주었다. 비록 직장에 저당 잡혀 사는 몸이지만 알고 보면 “딴것 하지롱!” 하는 마음도 들었다. ‘회사를 위한 일 말고 나를 위한 일도 한다. 나는 회사 다니며 딴 주머니 찬다’ 하는 마음이 묘하게 중심을 잡아주었다. 되돌아보면 광고주와 만나 커뮤니케이션하는 일도 숱한 녹음과 공개방송을 통해 알게 모르게 단련되었다. 물론 결과론적으로 찾은 이유일 수 있다. 그저 팟캐스트를 오래할 수 있어 즐거웠다. 딴짓은 삶을 살아있게 만든다.


팟캐스트가 계기가 되어 김혜경 씨는 이승용 씨와 공저로 2017년 『시시콜콜 시詩알콜』을 출간했다. 2021년에는 단독 저서로 『아무튼, 술집』을 출간했다. 시리즈에 이미 『아무튼, 술』이 있는데 또 한 권이 나온 걸 보고 ‘제철소의 김태형 대표가 술을 꽤 좋아하나 보다’라고 생각했다(실제로도 그렇긴 해서 지인들이 ‘제철소주’를 만들자고 한다는 후문이다).

본격적으로 술을 좋아한 것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지갑이 두툼해지며 소주와 맥주 아닌 다양한 술의 세계에 눈을 떴다. 강제성 없이 자유롭게 마시는 분위기가 주어지자 술이 즐거워졌다. 지금도 좋은 날에는 술을 산다. 『아무튼, 술집』의 계약금을 받고는 한정판 위스키 ‘발베니 툰 1509’를 샀다. 그 술을 볼 때마다 그리고 마실 때마다 첫 책을 계약한 날의 흥분과 기쁨을 다시 소환할 수 있다. 유명하고 비싸고 풍미도 굉장하다고 알려진 ‘발베니 툰 1509’를 사고서야 알게 된 진실이 있다. 지금까지 샀던 술 중 가장 비쌌지만 정작 마셔보니 “최고라고 해서 꼭 내가 좋아하는 맛은 아니”었다. 이것이 취향의 세계다.


술 마시는 즐거움

이 책은 술집에 관한 이야기지만 ‘잘하는 걸로는 져도 좋아하는 걸로는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만들어낸 책이기도 하다.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알아야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도 알게 된다.

김혜경 씨는 여태껏 살며 ‘내 마음 나도 몰라’일 때가 많았다. 글을 쓰며 비로소 깨달은 것들이 있다. 다 잊었다고 여겼지만 여태 마음에 품고 속상해하는 일이 있었다. 글을 쓰고 나서야 과거의 그 사람을 진정으로 용서할 수도 있었다. 글을 쓰며 무얼 좋아하는지, 그걸 좋아하는 나는 누구인지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술을 마시면서는 세상의 번잡한 일과 슬픈 기억을 잊어버리고 글을 쓰면서는 그런 일들을 잊지 않는다. 술과 글은 좋은 조합이다. 술로 때로 잊고 글로 때로 지킨다.


친구들이 종종 이런 말을 한다. “혜경이는 술 마시기 전에는 재미없어.” 그렇다. ‘소심한 내향적 인간’ 김혜경은 술집에 가면 달라진다. ‘술집에 숨겨둔 자아’라도 있는지 외향성을 마음껏 소환한다. 덕분에 『아무튼, 술집』을 읽으면 그와 술집에 나란히 앉아 술을 마시는 기분이 든다. 

술집 주인들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진정한 술꾼은 주인이 알아보는 법. 김혜경 씨는 망원동 ‘너랑나랑 호프’의 권복자 대표를 ‘내장지방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내친김에 술집 주인과 가족같이 지낼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나름의 비법이 있다고 했다. 좋아할 만한 술집이 생기면 일주일에 일곱 번 간다. 반드시 주인이 얼굴을 기억해준다!

그럼에도 하필 술집을 주제로 글을 쓴 이유는 뭘까. 

“이십 대의 나는 집이 아닌 술집에서 자랐다. 술집에서 집밥을 먹는 기분이 들었다. 술집에서 외롭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 나 역시 집에 가기 싫어서 술집에 갔던 날들을 떠올렸다. 술집은 왜 문을 닫는 거야 하고 투정을 부리던 날도 기억났다. 누군가 겪고 있을 법한 어떤 시절의 이야기를 김혜경 씨의 음성으로 들을 수 있었다.


책에서 소개하는 마지막 술집은 쿠바다. 술을 마시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현실과 유약한 나 대신 싸워주는 사람들을 기억하도록 만드는 나라였다. 쿠바의 한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올란도는 “다음에 또 보자”는 김혜경 씨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다음을 약속하지 말자. 서로를 이해할 수 없어서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어.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자.” 『아무튼, 술집』은 술을,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좋아하는 마음을 사랑하게 만드는 책이다.


한미화_출판 칼럼니스트, 『동네책방 생존 탐구』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1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작가의 이전글 온전히 즐기며 기대하는 또 다른 오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