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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Feb 13. 2023

서로 만들어가는 관계

주제별 어린이책 큐레이션 - 가족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잔소리하는 아빠나 엄마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어요. 
어른도 제대로 말하는 법, 제대로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가족은 개인이 경험하는 최초의 사회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서로 다른 개인이자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게 되는데요. 가족과 어울려 살아가면서 공동체의 경험을 익힌다고도 할 수 있어요. 가족마다 그 수도 다르고, 가족들 사이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것도 다를 텐데요. 가족 사이에서 맺는 관계는 고정된 게 아니라 서로 만들어가는 관계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 같아요. 


가족은 서로 잘 알까? 

우선 같이 보고 싶은 그림책은 『불곰에게 잡혀간 우리 아빠』(허은미 글 / 김진화 그림 / 여유당)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여자아이가 학교에서 ‘우리 가족’이란 주제로 동시를 짓다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아빠는 “재밌는 얘기를 잘 해 줘서”, 동생은 “가끔 맛있는 걸 나눠 줘서”, 고양이 순덕이는 “까끌까끌한 혀로 날 핥아 줘서” 좋은데, 엄마는 “왜 좋은지 모르겠다”는 거지요. 아빠한테 엄마가 왜 좋으냐고 물어보니, 예전에 아빠가 배낭여행하다가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데, 불곰이 나타나 아빠를 구해줬고, 고마워서 불곰하고 결혼까지 했다고 합니다. 엄마가 원래 불곰이라는 말에 여자아이는 반신반의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외할머니 댁에 갔다가 여자아이는 사진첩에서 엄마의 사진을 봅니다. 여자아이는 엄마도 아기일 때도 있었고, 아가씨였을 때도 있었다는 걸 알게 되지요. 여자아이는 다시 ‘우리 가족’이란 동시를 씁니다. “아빠는 좋다 / 까치처럼 구렁이처럼 은혜를 갚아서 좋다. / 동생은 좋다. / 가끔 맛있는 걸 나눠 줘서 좋다. / 순덕이는 좋다. / 까끌까끌한 혀로 나를 핥아 줘서 좋다. / 엄마는 좋다. / 아빠를 구해 주고 / 나를 낳아 줘서 좋다. / 참 좋다”라고요. 우리는 가족끼리 서로 잘 안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그럴까요? 

ⓒ여유당(『불곰에게 잡혀간 우리 아빠』)

『발레 하는 할아버지』(신원미 글 / 박연경 그림 / 머스트비)도 읽어볼 만한 그림책입니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 엄마가 일하러 나가게 되면서 시골에 살던 외할아버지가 가족이 되어 함께 살게 됩니다. 화자인 ‘나’는 발레를 배우고 싶어 하는 열 살 난 남자아이인데요. 주민 센터에서 발레를 배우게 됩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발레 선생님 동작을 따라하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이 다 웃는데요. 알고 보니 다른 아줌마들은 선생님 동작을 사진기로 찍는데, 할아버지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스스로 익혀서 알려주려고 했던 거였어요. “내 몸으로 빨래 동작 찍은 거 뿐이여.” 그 말에 ‘나’는 할아버지 손을 꼭 잡게 됩니다. 할아버지의 속마음을 알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된 거지요. 이제부터 ‘나’는 할아버지와 더욱 친한 사이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머스트비(『발레 하는 할아버지』)

엄마는 어떤 사람일까? 

『L 부인과의 인터뷰』(홍지혜 글·그림 / 엣눈북스)를 함께 볼까요? 여기서 L 부인은 작가의 분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결혼하기 전에는 뛰어난 사냥꾼이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들판에서 활을 잡고 화살을 쏘았는데, 지금은 집안에서 청소기를 돌리고 있지요. 신랑과도 잘 지내고 아이도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있는 L 부인,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사냥꾼 기질이 남아있어요. 여기서 인터뷰란 L 부인이 자신에게 건네는 질문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가사와 양육을 담당하면서 자신의 옛 모습을 감추고 살아야 하는 L 부인이 자문자답하는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마지막 장면을 보면, 들판에서 늑대들이 만나는 모습이 나와요. 자신이 지니고 있는 부분을 간직하며 살겠다는 다짐으로 보입니다. 


『돼지책』(앤서니 브라운 글·그림 / 웅진주니어)도 한번 살펴볼까요? 피곳 씨네 가족은 피곳 씨와 피곳 부인, 두 아들 사이먼과 패트릭, 이렇게 넷이지요. 피곳 씨는 ‘아주 중요한 회사’에 다니고, 사이먼과 패트릭은 ‘아주 중요한 학교’에 다닙니다. 피곳 부인은 혼자서 집안일을 하고 일하러 갑니다. 이런 나날이 계속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피곳 부인이 집에서 사라집니다. 그러자 집안은 돼지우리처럼 변하지요. 그동안 모든 집안일을 피곳 부인이 혼자 감당했던 겁니다. 결말을 보면, 피곳 부인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피곳 씨와 두 아들은 함께 집안일을 합니다. 표지를 보면, 피곳 부인이 덩치 큰 남자 셋을 업고 있어요. 혼자서 집안을 감당하는 상황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거지요.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식구 모두가 나눠서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잘 보여줍니다. 


아빠는 어떤 사람일까? 

『코끼리 아저씨와 100개의 물방울』(노인경 글·그림 / 문학동네)은 밖에서 일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코끼리 아저씨 뚜띠는 먼 곳에 가서 양동이에 물방울 100개를 담아 집으로 돌아오는데요. 양동이 물이 태양에 증발되기도 하고, 무서운 동굴도 지나야 하고, 도중에 그만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기도 하지요. 또 불난 데 물을 뿌려주기도 하고, 기린과 새 들에게 물을 빼앗기기도 합니다. 결국 코끼리 아저씨의 물 양동이는 텅 비게 되는데요. 이때 마침 비가 내려 양동이 가득 물을 담아 집으로 오게 되지요. 마지막 장면을 보면, 아기 코끼리 넷이 맛있게 양동이 물을 마시고 있어요. 먼 곳에서 물을 고스란히 가져오기란 쉽지 않지요. 무사히 그 일을 해낸 코끼리 아저씨 뚜띠에게 우리는 박수를 보내게 됩니다. 

ⓒ문학동네(『코끼리 아저씨와 100개의 물방울』)

『으르렁 아빠』(알랭 세르 글 / 브뤼노 하이츠 그림 / 그림책공작소)는 늘 검은 옷을 입고 검은 장화를 신고 검은 장갑을 끼고 있는 늑대 으르렁 아빠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늑대 아이들이 아빠에게서 검은 장갑과 장화를 벗기자 아빠의 알록달록한 앞발과 발이 나오지요. 늑대 아빠는 자신의 알록달록한 모습을 창피하게 여기고 감추려고 늘 검은 옷차림을 했던 거예요. 가족들은 아빠의 알록달록한 모습이 더 좋다고 말해줍니다. 여기서 알록달록한 몸이란 아마도 다정다감한 마음을 가리킬 거예요. 늑대 아빠는 남에게 겁을 주어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모습을 감추었던 거지요. 가족이 힘을 합해 아빠가 자기 본래의 모습대로 살도록 했다는 게 이 작품의 주목할 만한 점이겠지요.   


대화가 필요해! 

『알사탕』(백희나 글·그림 / 책읽는곰)에는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아빠와 아들이 나와요. 이 작품에서 주인공 남자아이는 아빠하고 둘이 살고 있는데요. 친구라고는 개 구슬이 밖에 없어요. 남자아이의 아빠는 잔소리가 무척 많은데요. 남자아이가 알사탕을 먹고 아빠의 마음속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자 그 모든 잔소리가 “사랑해!”로 들립니다. 그러고 보면,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잔소리하는 아빠나 엄마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어요. 어른도 제대로 말하는 법, 제대로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딸꾹질』(김고은 글·그림 / 고래뱃속)은 대화가 몹시 부족한 가족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엄마 아빠는 늘 바빠서 주인공 양양이의 말을 들어주지 못해요. 어느 날, 양양이는 딸꾹질하기 시작하는데요. 아무리 해도 멈추지를 않아서 도파리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 처방전을 받지요. 도파리 의사 선생님은 ‘말방구 폭포법’과 ‘주저리주저리 퉤퉤법’을 처방하는데 그건 바로 엄마 아빠가 양양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거지요. 사실, 대개 엄마 아빠는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만 하지, 아이들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아요. 이 그림책은 가족끼리 대화가 얼마나 필요한지 잘 보여주지요.  


엄혜숙_어린이책 작가, 번역가


이 콘텐츠는 <월간아침독서> 2020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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