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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Feb 20. 2023

세계로 진출한 우리 그림책 현황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그림책

15년 전 어린이도서관 근무를 시작할 당시 그림책과의 첫 만남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대표적 어린이 그림책인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집어 들고 기존의 독서 습관대로 활자에 주목하며 채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두 권의 그림책을 휙 읽었다. 

‘뭐지? 어디서 어떤 감동을 받아야 하지?’ 

당혹스러움에 네댓 번 정도를 더 읽었다. 그러고 책을 덮어버렸다. ‘역시 아이들은 이상해!’ 

그 후로 지금까지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100번 이상 읽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읽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이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그림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글과 그림의 읽는 순서를 다각화하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림책은 주로 어린이가 보고 읽을 수 있도록 제작되는 책이지만 그림책의 그림이 ‘본다’라는 단순한 개념에서 그림 이면에 숨은 의미를 읽어내는 ‘사고’의 측면으로 확대되며, 유아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대가 공유하고 즐길 수 있는 독서 매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글과 그림의 독립적 혹은 상호 리듬을 통해 작가의 철학이나 사상 등을 심층적 구조로 전달하는 독특한 장르인 그림책은 상징과 암시로 무한한 해석이 가능한 문학적·예술적·심미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세계적 문화 콘텐츠로의 자리매김

한국의 그림책은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이나 미국 『뉴욕 타임스』가 매년 선정하는 ‘올해의 우수 그림책’ 등 세계 출판 시장에서 주목받으면서 문화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특히 백희나의 『구름빵』(한솔수북)과 권문희의 『줄줄이 꿴 호랑이』(사계절)는 한국 그림책을 기반으로 한 문화 콘텐츠 산업의 대표적 사례다. 『구름빵』은 그림책을 원전으로 TV 애니메이션, 뮤지컬, 캐릭터 상품 등 2차 콘텐츠로 가공되어 새로운 문화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창출했다. 『줄줄이 꿴 호랑이』는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 전시된 책을 보고 스위스의 출판사가 불어로 출간했고, 프랑스 출판사·영화사와도 저작권 계약을 맺어 애니메이션으로 재창작해 세계에 소개되었다. 이처럼 문학작품이 영화, 애니메이션, 음악, 미술, 게임, 캐릭터 같은 문화 콘텐츠 생산으로 연결되는 문화 산업 시대에 우리나라 그림책을 세계에 알리는 건 의미가 크다. 

나아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장르와 매체를 변형하면서 재창작되는 대표적인 문학작품으로 그림 형제의 『빨간 모자』를 들 수 있다. 『빨간 모자』는 서사의 변화와 더불어 매체의 변용까지 이루어져 문학, 광고, 영화, 애니메이션 등으로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성가족부가 성범죄로부터의 보호를 위한 어린이 교육 목적으로 『빨간 모자』를 원형으로 한 「빨간 모자와 성범죄자 알림e」라는 1분짜리 애니메이션 광고를 제작한 바 있다. 


중국과 일본으로 진출한 그림책의 특징

한국 어린이책의 해외 수출국 중 가장 높은 비율(64.4퍼센트)을 차지하는 중국은 어린이 동화 분야에서도 개인의 정서적 측면의 접근보다 애국, 공동체, 사회과학 등의 이념적 측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현재 중국 최고 영예의 문학상 중 하나로 꼽히는 ‘전국우수아동문학상’의 심사 조례에 의하면,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주의, 덩샤오핑 등 3대 이론의 주요 사상과 과학 발전관을 기본으로 국가의 정통 이데올로기를 예술적인 문학의 형식으로 표현하여 어린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송연옥, 「중국의 아동문학상 연구」, 2015).” 따라서 중국은 어린이문학을 통해 사상성의 제시는 물론 문화적·미적 함양뿐 아니라 애국주의, 공동체주의, 사회주의 사상과 핵심 가치를 함양시키려 한다. 중국에 소개되는 한국의 그림책은 학습용 지식정보 그림책과 같은 논픽션류 비중이 높고 픽션류는 상대적으로 낮다. 논픽션류 그림책은 과학 동화, 철학 동화, 교양(인성) 동화와 같이 학습 능률을 높일 수 있는 학습 도서와  교구·장난감 형태의 책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어린이문학을 통해 고유의 문화적 특수성을 전수하려는 중국의 어린이문학관과 결을 같이하여, 한국적 정서가 강한 화풍으로 한국 전통 명절 문화를 자연스럽게 전한 이억배의 『솔이의 추석 이야기』(길벗어린이)가 중국에 소개된 건 자연스러운 결과다. 또 다른 전통문화 그림책인 이혜란의 『우리 가족입니다』(보림)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살뜰히 살피는 부모의 모습을 지켜보는 어린이가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과정을 소박하게 표현했다. 『솔이의 추석 이야기』가 추석이라는 명절 문화와 관련해 가족과 이웃 간의 정 등 우리의 미풍양속을 전한다면, 이 그림책은 현대사회의 가정에서도 여전히 전통적인 문화가 스며들어 있는 생활 모습을 그려냈다. 

ⓒ길벗어린이(『솔이의 추석 이야기』)

논픽션류가 높은 비율을 보이는 중국과 달리 일본은 픽션류의 비율이 높다. 일본에 처음으로 번역 소개된 한국 그림책은 류재수의 『백두산 이야기』(보림)다. 이후 정승각의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초방책방), 이억배의 『솔이의 추석 이야기』『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이호백 글 / 이억배 그림 / 재미마주), 권윤덕의 『만희네 집』(길벗어린이), 정승각의 『강아지 똥』(길벗어린이), 이영경의 『아씨방 일곱 동무』(비룡소) 등 한국의 문화를 잘 알 수 있고 한국적 정서가 담긴 작품들이 꾸준하게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다. 박연철의 『어처구니 이야기』(비룡소)와 같은 작품은 소재가 한국적이면서 마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표현으로 한국 옛이야기 들려주기의 느낌을 전달한다. 특히 한국 전통 건축물의 일부를 소재로 창작해 고구려 벽화, 단청 문양 등 한국적 정서를 듬뿍 표현하면서도 그래픽이나 콜라주 같은 현대적 미술 표현 기법을 활용함으로써 한국의 고유성을 살린 문화 콘텐츠로의 연결 가능성도 담고 있다.

ⓒ비룡소(『아씨방 일곱 동무』)

이러한 한국의 신화, 전래 동화 등 민족적인 전통과 고유의 문화가 소개되어 있는 작품뿐 아니라 일본에 소개된 최초의 한글 그림책 『기차 ㄱㄴㄷ』(박은영 글·그림 / 비룡소)과 한국의 판타지 동화 『고양이 학교』(김진경 글 / 김재홍 그림 / 문학동네), 지식정보책 『누구야 누구』(심조원 글 / 권혁도 그림 / 보리) 등 현대 한국의 새로운 사회상을 알 수 있는 그림책들도 적지만 소개되고 있다. 이처럼 일본에는 한국적 정서가 깊은 그림책을 중심으로 수출되고 있다. 한국의 전래 동화나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그림책은 그림 표현의 기법에서도 서양 화법에서 느껴지는 것과 달리 특유의 부드러운 곡선이나 해학적이고 유연한 느낌의 민화적 기법으로 한국의 고유성을 전달하는 효과를 더욱 높일 수 있다. 


세상과 이어주는 징검다리 그림책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문학상을 수여하는 나라로 꼽히는 프랑스는 획일적인 기준을 해체하고 개성이 강한 작품들에 문학상을 수여함으로써 독자들의 문학적 성향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작품을 창작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 프랑스 문학은 이러한 사회 환경적 기반 위에서 경계를 확장시키며 다양한 문학적 시도를 하고 있으므로, 한국 그림책에 보이는 관심은 유의미하게 해석된다. 일본의 경우 한국적 정서가 강한 작품이 높은 분포율을 보였던 것과 달리 프랑스는 판타지, 창작 그림책의 비율이 높다. 일본과 유사하게 한국적 정서가 강한 작품과 더불어 판타지와 창작 그림책 그리고 어린이·청소년문학에서 접근이 조심스러운 장르나 소재 등 경계를 확장한 다양한 시도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문학과지성사(『마지막 박쥐공주 미가야』)

덴마크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정보 사회 다음으로 도래하는 ‘드림 소사이어티’는 핵심 자원이 정보나 컴퓨터가 아닌 꿈과 감성이 중심이 되는, 즉 이야기 콘텐츠가 핵심이 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세대와 언어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림책은 이러한 ‘감성 사회’의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대표적인 독서 콘텐츠이며 우수한 문화 콘텐츠이다. 『마지막 박쥐공주 미가야』(이경혜 글 / 양혜원 그림 / 문학과지성사)와 같이 한국의 신화, 전설, 설화 등 한국적인 정서와 전통적인 문화가 스며있는 독특한 소재와 판타지, 추리물 같은 문학 장치를 기반으로 한 한국 그림책을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재창작해 세계적으로 한국 어린이문학의 권위를 높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한국의 전통문화나 민족 고유의 정체성이 녹아든 작품들이 표현 방법의 다양성, 서술의 독창성, 장르의 확장 등을 통해 다양하게 창작되고, 이와 연계된 다양한 미디어의 독서 콘텐츠 제작과 개발이 이루어져 한국 어린이문학이 세계 어린이 문화 교류의 근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민경록_청주기적의도서관 관장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9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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