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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Feb 22. 2023

2021년 볼로냐 라가치상 한국 그림책 수상작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그림책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볼로냐 대학이 있는 도시 볼로냐. 웬만한 건물이나 성당이 몇천 년 전에 지어져 도시 전체가 박물관인 볼로냐. 이런 볼로냐가 우리에게는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1964년 4월에 시작한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은 매년 봄, 4일 동안 열리는 세계 최대의 아동도서전이다. 도서전에는 출판인,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아동 및 교육 관련 단체, 도서관협회 등이 참가하여 국제회의 및 심포지엄을 통해 상호 교류를 도모한다. 각종 캐릭터 저작권, 인쇄, 포장, 미디어 등의 제작업체까지 참가하여 세계 최대 아동도서 출판시장의 규모와 면모를 드러낸다.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은 저작권 거래시장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도서전을 참관할 수 있다. 도서전에 참여하는 출판사는 책을 판매할 수 없었는데, 최근에는 출판사가 원한다면 책을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도서전 기간 중 주최 측에서는 일러스트레이터스 카페를 운영하는데, 이 카페에서 세계적인 작가들과 출판 기획자들이 작품들을 선정하여 ‘올해의 일러스트레이션’이란 전시를 한다. 올해의 일러스트레이션에 선정되면 그 작가와 작품은 전 세계 어린이책 출판사들에게 주목을 받게 될 뿐 아니라 볼로냐도서전 연감에도 실리고,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순회전시에도 참가하게 된다. 


볼로냐 라가치상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과 2021년은 온라인으로 도서전을 치렀다. ‘볼로냐 라가치상’은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가장 주목받는 행사로서 수상 작품들은 전 세계 어린이책 관계자들의 주목을 끈다. 볼로냐 라가치상은 세계 어린이책의 흐름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림책의 변화와 성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라가치상에 작품을 출품하는 주체는 작가가 아니라 출판업자인데, 그 자격은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 2회 이상 참여한 적이 있어야 한다. 도서전에서는 책을 판매할 수 없기 때문에 전시가 끝나면 출품했던 책은 어린이 기관 단체 또는 도서관에 기증하는 것도 독특한 점이다. 

볼로냐 라가치상은 픽션 부문, 논픽션 부문, 오페라 프리마 부문, 그리고 코믹스 부문이 있다. 수상 기준은 멋진 그래픽, 참신함, 독자와의 소통과 균형이라고 한다. 올해 2021년에는 41개 나라에서 1,577편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이토록 많은 작품 중에서 한국 그림책작가의 작품이 네 편이나 수상했으니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떤 작품이 어떤 부문에 선정되었는지 한번 살펴보자. 


픽션 부문

픽션 분야에서는 대만 작가 린리안언(Lin Lian-En)의 작품 『HOME』이 대상을 받았고, 네 작품이 스페셜 멘션에 올랐다. 그중 하나가 이수지 작가가 그림을 그린 『우로마』(차오원쉬엔 글 / 책읽는곰)다. 화가가 되고 싶었던 ‘우로’의 아빠는 그림에 재능이 있는 딸, 우로의 미술 교육에 열성을 보인다. 아빠는 우로에게 자화상을 그려보라고 권하고, 아빠와 우로는 캔버스를 사러 화방에 간다. 우로와 아빠는 화방에서 유명한 화가 서창 선생님이 주문했던 우로마 캔버스를 사게 된다. 집에 돌아와 우로는 캔버스에 멋진 자화상을 그리고, 자화상을 보고 기뻐하던 아빠는 아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우로의 그림을 보러 오라고 한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일까? 우로의 자화상에서 그만 물감이 흘러내리고 만 것이다. 우로는 자화상을 남에게 보여주지 못한다. 우로가 그린 자화상이 자꾸만 시간이 지나면 물감이 흘러내려 망가지고 마는 것이다. 이제 우로는 자화상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괴로워하는 우로를 보다 못한 아빠가 우로의 우로마 캔버스를 몰래 갖다 버린다. 하지만 우로는 여기서 그만둘 수 없다. 다시 한 번 더 자화상을 그리는 우로. 우로가 여덟 번째 그린 자화상은 더 이상 물감이 흘러내리지 않는다. 


자화상이란 무엇일까? 자신의 진면목을 캔버스에 표현한 것일 게다. 우로가 그린 자화상이 처음에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픽션이기 때문에 일차적으로는 캔버스가 우로의 자화상을 거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객관적으로는 우로가 캔버스에 적합한 화재를 사용하지 못한 까닭일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명확한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실현하기까지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칠 수 있음을 이 작품은 명확하게 보여준다. 재능이 있더라도 단숨에 목표를 저절로 이루게 되는 게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단 예술만 그럴까. 어떤 일이라도 완전히 숙달되고 완성도 있는 작업을 하려면, 작업자는 온 힘을 다해 여러 번 시도해야 하고, 그렇게 하더라도 시행착오를 거칠 수 있음을 『우로마』는 알려준다. 언뜻 보면 실패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거기서 그만두지 말고 계속 시도해보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책읽는곰(『우로마』)

논픽션 부문

논픽션 분야에서는 영국 작가 닐 패커의 『ONE OF A KIND』가 대상을 받았다. 그리고 네 작품이 스페셜 멘션으로 언급되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밤코 작가가 만든 『모모모모모』(향)이다. 『모모모모모』는 모판에서 모를 키워, 논에서 모내기를 하고, 모와 피가 섞여서 자라고 있을 때 피를 뽑고, 벼가 자라 벼 이삭이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이자 벼를 베고, 벼 이삭을 탈곡기에 돌려서, 짚은 소를 주고, 알곡인 쌀은 밥을 지어 사람이 먹는 내용이다. 모에서 벼로, 벼에서 쌀로, 쌀에서 밥이 나오는 과정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말을 최대한 절제하여 재미있는 소리가 되게 하며, 그림으로 전 과정을 전달한다. 이 작품은 표현 방법이 단순하고 유머가 있으며, 작가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명확하기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낸다. 사람들이 익히 아는 내용이지만,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재미와 정보를 결합시켜 즐겁게 익히게 한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사실, 논픽션은 모든 게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개성 있게 표현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다. 

ⓒ향(『모모모모모』)

오페라 프리마 부문

오페라 프리마는 작가나 일러스트레이터가 처음 출판한 작품에 주는 상이다. 우리나라에 이미 출간된 『옆집엔 누가 살까?』(카샤 데니세비치 글·그림 / 행복한그림책)가 대상을 받았고, 세 작품이 스페셜 멘션에 언급되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박현민 작가의 『엄청난 눈』(달그림)이다. 『엄청난 눈』은 눈이 엄청나게 많이 온 날의 상황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표지부터 눈에 먹히는 제목 글자와 함께 가파른 지붕 아래로 커다란 눈송이가 펑펑 쏟아지는 모습이 독자의 눈길을 끈다. 상철 제본을 함으로써 책장을 위 아래로 넘기게 만들어 눈이 얼마나 많이 쌓였는지를 더욱 실감나게 표현한다. 그렇게 쌓인 눈의 가장 아래에 눈에 파묻힌 집의 문이 있다. 이 집에 사는 두 사람은 삽을 갖고 눈을 치우고, 그다음에는 눈 치우는 차를 타고서 길을 내며 지면까지 올라간다. 지면에서 두 사람은 눈싸움을 하다가 어마어마하게 큰 눈사람을 만들고서 다시 차를 타고 쌓인 눈 저 아래에 있는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온다. 작가는 종이의 흰 면이 눈이 되도록 표현했고, 색은 하양, 파랑, 노랑, 이 세 가지만 사용했다. 

이 작품은 브루노 무나리의 작품 『Little White Riding Hood(하얀 모자)』를 연상하게 한다. 무나리는 하얀 백지 위에 파란 원 두 개를 그려서, 하얀 눈 속에 있는 하얀 모자의 두 눈을 표현했다. 브루노의 책에서 형태는 파랑 원 두 개밖에 없고, 전체 서사구조는 글이 담당한다. 『엄청난 눈』에서도 작가는 무나리처럼 눈 쌓인 상태를 그림책의 흰 면으로 표현하여 빈 공간을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코믹스 부문 

이 부문은 2020년에 신설되었는데, 이지은 작가의 『이파라파냐무냐무』(사계절)가 초급 독자를 대상으로 한 코믹스 분야에서 대상을 받았다. 『이파라파냐무냐무』는 만화에 가까운 그림책으로 담고 있는 내용과 표현 형식이 흥미롭다. 마시멜로들이 평화롭게 사는 마을에 어느 날, 시커멓고 커다란 괴물이 나타나 “이파라파냐무냐무!” 하며 소리친다.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계속하는 이 괴물이 자기들을 냠냠 맛있게 잡아먹으러 왔다고 생각한 마시멜로들. 마시멜로들은 이 괴물을 새총으로 쏘고, 끈으로 묶고, 불로 물리치려고 한다. 그런데 어떤 마시멜로가 괴물에게 다가가서 여기에 왜 왔냐고 묻고는, 다른 마시멜로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똑똑하게 말하라고 일러준다. 그러자 괴물은 

“이빨 아파 너무 너무!”

라고 똑똑하게 말을 하고, 그 말을 들은 마시멜로들은 괴물의 썩은 이를 뽑아준다. 

낯선 존재에 대한 두려움, 그런 두려움이 낳는 억측과 공격성, 자신이 힘든 처지에 있어 도움이 필요하지만 오히려 두려움을 주는 등 이 작품은 유머러스하게 여러 상황과 감정을 표현한다. 또 제대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일어나는 떠들썩한 소동을 다루고 있는데, 그 과정이 독자의 웃음을 자아낸다. 잘 모르면서 맘대로 추측하는 마시멜로들의 모습이 꼭 우리들 모습 같기 때문이다. 

ⓒ사계절(『이파라파냐무냐무』)

그림책은 0세부터 100세까지 남녀노소가 함께 볼 수 있는 책이다. 또 세계의 동시대인과 함께 볼 수 있는 책이다. 우리 작가의 작품들이 세계의 여러 독자들을 만나 기쁨과 즐거움을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세계 여러 나라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기쁨과 즐거움을 느꼈듯이 말이다. 멋지고 감동적인 작품으로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한 작가 여러분께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엄혜숙_그림책 연구자, 번역가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1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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