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그림책
한국 그림책의 질적 성장이 이야기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수많은 한국 그림책들은 국제 상 플랫폼에서 매해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KBBY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이하 KBBY)’는 문학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도서들을 전 세계 어린이들이 볼 수 있도록 한다는 미션 아래 한국의 수준 높은 그림책이 세계 독자들에게 소개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작은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Hans Chritian Andersen Award, 이하 HCAA)’에 우리 작가를 추천하는 일이다. 이 상은 1956년에 시작된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HCAA는 덴마크 마르그레테 2세(Margrethe II) 여왕이 수여권자이며 스위스에 사무국을 둔 ‘IBBY(The International Board on Books for Young People)’에서 주관하며 격년으로 발표한다. 작품 하나가 우수하다고 추천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 전 생애에 걸쳐 작품 세계 전체를 조망하고, 얼마나 전 세계 어린이들과 작품이 공유되며 세계 아동·청소년 문학 분야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주는가가 중요한 추천의 조건이다. 개인 추천이 아닌 IBBY 회원 국가 본부로부터 한 명씩 추천을 받아 후보자를 구성한다. HCAA에 추천되어 그 명단에 오른 작가들은 각 국가를 대표하는 만큼 그 자체로 현재 세계 아동·청소년 문학 분야 흐름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대표 작가라는 의미를 지닌다.
KBBY는 한국 후보를 2012년부터 추천하기 시작해 홍성찬, 한병호, 이수지가 추천된 바 있다. 2016 HCAA 그림 분야 한국 대표로 추천된 이수지 작가는 최종 5인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으며 세계적인 작가로 주목받는 횡보를 보이고 있다. 그림책과 관련된 미술관을 방문해보면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만큼 유럽에서는 현대에 가장 주목받는 작가다. 우연히 로마시립도서관에서 그림책 워크숍이 진행되는 것을 보았을 때의 일이다. 그림책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이어나가며 소개하는 그림책에서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은 빠지지 않고 거론되었다. 현재 2020 HCAA 그림 분야 한국 대표로는 이억배 작가를 추천했으며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억배 작가의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이야기가 담겼다는 면에서 특히 주목받고 있다. 얼마 전 미국의 권위 있는 도서 선정과 리뷰 주체인 『커커스 리뷰(Kirkus Review)』에 2019년 최고의 도서로 오르기도 했다.
훌륭한 작가군의 형성은 수준 높은 그림책들의 출간과 함께한다. 2019년 10월 25일 블라티슬라바의 슬로바키아 국립극장에서는 “『세상 끝까지 펼쳐지는 치마』 명수정!”이 크게 호명되었다. 각국 대사들이 참여하고 작가와 관련 전문가들이 참가한 2019년 시상식 현장에서 명수정 작가의 작품이 황금사과상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슬로바키아라는 작은 나라의 수도 블라티슬라바에서는 1965년부터 격년으로 ‘그림책 비엔날레인 BIB(Biennial of Illustrations Bratislava)’가 진행되고 있다. 그림책의 그림을 대상으로 예술성을 판단하며 전시와 시상이 이루어지는 대표 그림책 국제 전시 축제다. 2019년 BIB는 47개국이 참여해 416명 작가의 그림책 539종, 3056점의 그림이 소개되었다. KBBY는 BIB 2019를 위해 한국 그림책 15종을 출품하여 전시에 참가했고, 천상현 위원을 단장으로 김지민, 최민지 작가를 파견했다.
2017년 황금사과상을 수상한 김지민 작가는 세미나 일정에 참여해 ‘Picturebook for all generation’ 주제 발표를 통해 그녀의 작품 세계뿐 아니라 한국 그림책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한국의 그림책은 유럽인들에게는 항상 관심의 대상이지만 오히려 국제 플랫폼에의 참여가 소극적이어서 만나기 힘든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더 많은 작가들이 작품으로 소통하는 국제적인 장에서 자신의 그림책을 직접 소개하는 자리에 참여하기를 바란다.
이미 유럽에서 한국 그림책의 예술성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지 독자들의 한국 그림책에의 접근성은 그리 좋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다. 이에 KBBY는 유럽 현지인들과 직접 만나 작품을 소개하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로마도서관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로마시립아동청소년도서관(Biblioteca Centrale Ragazzi)에서 2019년 12월 7일부터 16일까지의 일정으로 한국 그림책 50종 전시와 함께 김슬기, 경혜원 작가의 현지 독자와의 만남을 진행했다. 도서관에 정기적으로 한국 그림책을 기증하고 찾아가는 작가 워크숍은 독자들이 공공의 공간에서 한국 그림책을 볼 수 있는 환경 마련을 위한 첫 발걸음이다. 공공도서관은 많은 어린이뿐 아니라 지역 사서들이 책에 일상적으로 접근하는 공간으로서 책이 교류되는 중요한 곳으로 손꼽힌다.
이번 로마시립아동청소년도서관에서의 작가 워크숍을 위해 경혜원 작가는 『내 키가 더 커!』에 대해, 김슬기 작가는 『어떻게 먹을까?』에 관한 그림 기법과 이야기 발상 과정을 소개할 수 있는 다양한 자료를 준비했다. 어린이와 사서, 대학생 그리고 현지 작가 등 다양한 독자들과 시간을 함께하며 다양한 경험을 했다. 이 과정은 국가 간 문화적 차이를 드러내는 그림책이라는 문화적 산물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예를 들어 우리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떠올리는 곰 이미지도 국가 간 차이가 발견되었다. 김슬기 작가의 그림책을 보던 중 한국 그림책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곰 캐릭터와 다르지 않은 곰 이미지를 보고 현지 사서들은 어떤 동물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반응에 서로 놀라워했다. 서로의 환경에서 경험한 곰의 형상과 색의 표현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이는 흥미로운 발견으로 작가들은 표현 방식에 대한 고민을, 사서들은 새로운 시각 이미지를 어린이들에게 소개하는 방식 등에 대해 사고의 확장이 일어난 순간이었다. 독자로서 다양한 국가의 그림책을 이해하는 데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지점이다. 이렇듯 한국만이 지니는 독특한 시각언어는 그 자체만으로 특별했으며, 한국적인 시각언어로 전하는 이야기의 즐거움에 현지 독자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한국 그림책이 품고 있는 문학성과 예술성은 이제 어디에 내놓아도 세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제는 배우고 습득하기 위해 해외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그림책에 대한 관심으로 한국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에 우리는 보다 다양한 공간에서 한국 그림책을 만나볼 수 있는 환경 마련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국제 교류가 필요하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KBBY는 꾸준하게 국제 플랫폼에 우리 그림책을 소개하고자 연구회를 중심으로 전문가들이 뭉쳤다. 보다 조직적으로 준비된 자료를 가지고 국제 무대에 우리 그림책을 소개하기 위함이다. HCAA를 위한 작가 자료를 수집 연구하는 작가연구회, BIB와 같은 국제상 지원을 위해 매달 출간되는 도서를 검토 선정하는 도서위원회가 활동 중이다. 특히 도서에 대한 정보 수집을 위해서는 꾸준하고 신중하게 살펴 차곡차곡 자료를 준비해나가야 한다는 면에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도서위원회는 매달 출간되는 도서들을 바로 검토하여 ‘KBBY 주목 도서’라는 이름으로 그림책과 아동·청소년 도서를 공유하고 있다(www.kbby.org). 그리고 이들 주목 도서들은 다시 분기별로 전문가들이 재검토를 함으로써 ‘KBBY 주목 도서 Special mention 2019’ 목록을 마련하여 공유하고 있다. 이들 도서들은 2020년 국제 활동 시 소개하기 위해 대기 중이다. 앞으로도 한국 그림책의 선전을 기대해본다.
심향분_KBBY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회장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0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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