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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그림책을 보는 관점과 방식

- 그림책 깊이 읽기

by 행복한독서

영국 중심의 서양에서 시작하여 아동문화의 주 역할을 맡은 그림책이 동양에 처음 전래된 곳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본이다. 패전의 일본에서 반전 의식을 지닌 지식인들은 새로운 어린이 교육 일환으로 그림책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을 가르치기 위한 소재’로 수용, 보급하면서 일본 그림책의 특징을 이루었다. 한국의 경우 권선징악, 특히 선과 바른 생활을 지향하는 이야기에 흥미는 물론 교육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결론 없는 이야기, 읽고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중점을 두어 감정 이해와 공감, 경험 소개에 의미를 둔다.

일본의 그림책은 제작과 보급에서 지식인이 제작 현장은 물론 도서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전성기를 이루었다. 어린이문학과 도서관학 전공자를 비롯한 지식인들은 부모 계몽과 함께 그림책 제작에 참가하고 그림책 저변 형성에 나섰다. 한편 한국은 외국 생활 경험자가 한국에 없는 외국 생활 문화로서 그림책을 다루며 출판사와 책방 등 개인 사업 기반을 다졌다. 그 결과 단시간에 세계 각국의 그림책이 소개되었으나 기존 출판사와의 불협화음과 유통 구조, 유아기에 그림책을 읽지 못한 세대의 인식 부족은 표현에서도 지식과 교육을 지향하고 구체적인 메시지와 논리적 전개가 선호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그림책 독자론

어린이들은 그림책을 어떻게 만나고 즐길까? 일본의 경우 어린이와 그림책의 만남은 자연스러운 생활환경으로, 아기가 태어나면 장난감과 함께 주어진다. 시각이 완성되지 않은 아기를 무릎에 앉히고 『이나이 이나이 바아』(‘도리도리 까꿍’처럼 아기와 커뮤니케이션을 나누는 소리로 ‘없다 없다 있네?’의 말놀이) 하며 큰 소리로 읽으며 함께 웃는다. 이야기나 메시지가 아니라 단순한 소리와 반응과 표정으로 아기와 대화하는 것이다. 그림책은 대인관계 시작의 도구로 청각으로 감정을 나누며 서로가 이해하는 흐뭇함을 안심과 만족으로 체험하는 도구다. 생활권이 방 안인 아기와의 대화 도구인 유아 그림책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출판사가 관심을 갖지만 일본은 출판사를 대표하는 롱셀러이며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다.


유아 그림책 출판량의 예를 들면 1967년 출판된 마쓰타니 미요코 글에 일본을 대표하는 화가 세가와 야스오 그림의 『いないいないばあ(이나이 아나이 바아)』가 낱권 701만 부와 시리즈 1712만 부, 1981년 후쿠인칸쇼텐에서 출판한 히라야마 가즈코의 『くだもの(과일)』가 207만 부, 카이세이샤가 1983년 출판한 마쓰이 노리코의 『じゃあじゃあびりびり(줄줄 쭈욱 쭈욱)』가 294만 부 등 그림책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いないいないばあ(이나이 이나이 바아)』(마쓰타니 미요코 글 / 화가 세가와 야스오 그림 / 도신샤(童心社) / 1967년)

요미키카세, 그림책으로 보는 문화와 사회

어린이 성장은 생활공간을 바꾼다. 방 안을 벗어나면 생활환경은 물론 대인관계도 달라지기에 그림책이 이해와 적응을 도와준다. 이 시기는 그림책 내용만이 아니라 읽어주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일본의 경우 단체 활동(보육원/유치원)이 시작되면 지금까지의 일대일 상대에서 집단 상대로 요미키카세(読み聞かせ, 읽어 들려주기란 의미로 어린이가 어떻게 듣는가를 강조한다) 방식이 바뀐다. 일대일 요미키카세는 부모와 헤어지는 아침과 부모 마중을 기다리는 시간에 가정과 집단 거주지를 오가는 어린이 심리 안정과 환경 변화에 따른 긴장 완화를 위한 정서안정제다. 한편 집단 상대의 요미키카세는 자연스러운 집단생활 적응을 위해서 그날그날의 날씨와 계절과 행사는 물론 지역사회성을 고려해 고른 그림책을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함께하는 경험을 의미한다. ‘우리’라는 연대감이 생기고 함께 즐기는 안심이 소속감을 만들며 일상과 생활의 진선미를 이해하고 함께 생활하는 환경에서 주변과의 조화와 자기 역할 의식을 심게 된다. 일본 어린이들에게 요미키카세는 생활을 배우고 일상 규칙과 바른 생활 의식을 키우며 매너는 물론 인격 형성까지 만들어준다. 그래서 일상과 사회를 소재로 개인과 사회를 이어주는 이야기, 스스로 결론을 생각하는 그림책을 선호하며 어떤 그림책을 어떻게 읽어줄지가 매우 중요하다. 집단 상대의 요미키카세는 초등학교에서도 자원봉사자가 시행한다.

『いないいないばあ あそび(이나이 아나이 바아 놀이)』기무라 유이치 글·그림 / 카이세이샤 / 1988년

이에 비해 한국은 개인적 즐거움을 위한 소재로 이야기 전개와 표현도 개인적 감상을 중시하는 만큼 분명한 방향성과 결론 제시가 추구된다. 독서 환경 차이가 그림책 내용과 형식을 달라지게 하는 듯하다. 그림책 읽어주는 현장에서 느낀 것이 있다. 개인 취향을 존중하는 한국은 글 모르는 어린이도 내가 보고 싶은 그림책을 즐기도록 대신 읽어주기와 따로 읽기를 선호한다. 그래서인지 집단 상대의 그림책읽기가 끝나면 서둘러 내가 읽고 싶은 책을 향해 흩어진다. 일본에서는 같이 읽은 그림책을 내 손으로 펼쳐보려고 모여든다. 고작 그림책 읽기지만 문화와 사회가 보인다.


일본에서 만나는 한국 그림책

일본에는 언제부터 한국 그림책이 소개되었을까? 한국에 일본 그림책이 처음 번역 소개된 것은 1977년, 정식 판권 계약을 한 첫 외국 그림책으로 한림출판사의 『아기 참새의 모험(こすずめのぼうけん)』이다. 그 후 많은 그림책이 번역 소개되어 유통되고 있다. 2021년 12월 기준으로 일본국립청소년 어린이 도서관에는 한국어 번역본이 3900권 소장되어있다.

한편 일본에 한국 그림책이 처음 번역 소개된 것은 1999년, 류재수의 『백두산 호랑이』다. 그전에는 일본 출판사가 한국 동화와 한국 작가 그림을 담은 그림책이 출판되었다. 외국 문화 소개의 취지에서 한국 전통미와 생활을 담은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으로 2000년까지 지속된 이 시기의 그림책이 한국 그림책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 시기를 제1단계로 볼 수 있다. 2000년대에 들어 일본 사회는 한류 붐이 일자 그림책 업계도 시장성을 노린 번역본 출판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출판사와 번역자의 미숙은 초판 절판과 개발도상 한국 그림책이란 이미지를 남겼다. 제2단계인 이 시기에는 일본인의 노스탤지어를 채우는 작품으로 이어졌다.

『백두산 호랑이(山になった巨人)』(류재수 글·그림 / 후쿠인칸쇼텐 / 2000년)

2010년 이후, 해외전시장에서 만난 개성적인 작품이 한국 그림책이란 사실에 놀란 출판인들이 한국 그림책에 관심을 갖게되었다. 바로 제3단계의 시작이다.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그림책’을 찾아 번역 출판하는 일본 출판계에 기존의 한국 그림책 이미지에서 벗어난, 작가의 분명한 세계관과 어린이의 상상력을 키우며 유머 넘치는 매력적인 표현의 그림책이 번역 출판되었다. 뚜렷한 개성과 뛰어난 작품성이 매력인 이수지와 조은영, 단순한 어린이 호기심이 유쾌함과 즐거움으로 남는 안녕달, 누구나 한 번은 겪은 일상의 에피소드를 개성적인 사진 기법과 이야기로 다루어 갈등과 아픔을 공감과 이해로 담아 표현한 백희나 등이 해당된다.

『おどりトラ―韓国・朝鮮の昔話(춤추는 호랑이-한국/조선의 옛이야기』(쇼사쿠 가나모리 글 / 정숙향 그림 / 후쿠인칸쇼텐 / 1987년)

최근 일본에서의 한국 그림책을 둘러싼 활동

최근 한일 간 정치문제가 국제관계의 암운을 드러내자 ‘정치가 어린이와 그림책과의 만남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며 일본 활동가들이 한국 그림책 소개를 위해 ‘이웃끼리(おとなりとうし) 프로젝트’ 활동에 나섰다. 지금까지 번역 출판된 한국 그림책 목록을 작성하고 2019년 일본 최대 규모 서점인 준쿠도 오사카점에서 구입 가능한 한국 그림책을 모아 소개·판매 전시 코너도 마련했다. 필자가 참여한 기획으로 도서전을 여는 서점에 목록을 무료 제공하고 그림책작가 포스터 제작으로 1년 간 지속되었다.

이 행사는 JBBY가 ‘2020년도 어린이책의 날 기념행사’ 테마로 다루었으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중지되었다. 10월에 코로나 이후 첫 행사인 「한국과 일본의 그림책 교류전」이 개최되면서 국제 교류장으로 많은 출판 관계자가 발길을 옮겼다. 기획을 함께한 필자의 한국 그림책 신작 소개도 세 차례 강연으로 이어졌다.


일본 출판사와 연구자들이 관심과 호감을 보이지만 한국 그림책의 번역 출판은 미흡하다. 2020년까지의 번역본은 120~130여 권, 그중 절반이 구입 불가능하다.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로 ‘그림책을 읽고 즐기는 환경 차이, 요미키카세 대상의 그림책인가’라는 독서 환경 차이라 하겠다. 어린이 독자는 국적을 떠나 호기심에서 책을 펼치고 책장을 넘기는 흥미에서 읽고 또 읽는다. 그러나 출판사와 편집자와 부모가 내용과 묘사를 따지고 문화와 위화감을 판정한 다음, 리드미컬한 문장으로 읽혀야 비로소 출간이 결정된다.

두 번째로는 한국 그림책에 호감을 지닌 전문가의 한국 그림책 이미지는 도서관이 아닌 미술관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매년 열리는 볼로냐 원화전과 비엔날레로 열리는 브라티슬라바 원화전에는 매회 많은 한국 작가와 작품이 전시된다. 강열하고 개성적이며 신선한 시각 이미지로 그림책을 펼치지만 귀와 소리로 펼쳐지는 이미지가 일본인에게는 뭔가 부족한 것이다. 내 상상으로 이야기를 즐기는 한국 그림책 독서 문화와 눈에 담긴 이미지와 귀에 전달된 리듬의 조화로 이야기를 즐기는 일본 그림책 문화의 차이다.


세계에서 가장 그림책 원화전이 활발하며 시공립미술관에서 회화전처럼 원화전이 열린다. 게다가 한국 그림책에 대한 관심에서 올 11월부터 개최되는 2021년 브라티슬라바 국제그림원화전(BIB)은 「한국 그림책 특별전」이 마련되어 많은 한국 그림책이 소개될 예정이다.

같은 이야기를 함께 듣고 즐긴 어린 시절, 그 추억이 아름다운 정서로 남은 요미키카세 문화권에 한국 그림책이 수용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원화전을 찾은 관객은 그림책 원화를 보면서 육아의 어려움보다 웃음과 행복한 추억을 떠올리듯이 한국 그림책도 행복과 마음의 휴양지가 될 것이다.

그림4-그림5 준쿠도 한국그림책전시.jpg 준쿠도 오사카점의 한국 그림책 도서전

2021년에 센다이 한국 영사관 주최로 한국 그림책 행사가 열렸다. 4회 강연으로 한국 그림책 역사와 이영경 작가의 강연, 한국과 일본에서 활약하는 일본과 한국 작가 강연과 한국 그림책 테라피, 그 후 2회의 강연이 추가되었다.

도쿄가 아닌 지방 도시에서 처음 열린 행사에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 그림책을 본 적이 없지만 흥미와 관심을 갖고 참석했다는 사실이 한국 그림책에 대한 기대와 가능성을 읽게 한다. 한국 그림책의 보급을 위해서는 도서관 사서와 일본 가정문고 활동가의 이해, 유치원과 보육원에서 요미키카세를 맡는 이들이 한국 그림책과 만날 기회 제공이 늘어나야 할 것이다.

일본에서 한국 그림책을 둘러싼 환경은 ‘어린이들은 정치와 상관없이 문화를 즐길 권리가 있다’라는 이슈에서 관심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한국에서도 어린이 문화환경에 장애 제거를 위한 행동에 많이 동참하기를 기대한다.



신명호_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 『그림책의 세계』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2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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