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들려주는 그림책 이야기
라마 씨, 퇴사하고 뭐 하게?
계남 글·그림 / 72쪽 / 18,000원 / 요요곰
회사를 그만두고 멀리 여행을 간다는 저를 보고 사람들은 왜 너는 다르게 살려고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저 평범하게 남들처럼 살길 바랐지요. 오랜 기간 디자이너로 일했지만, 마음속에 그리는 ‘나’와 현실에서의 ‘나’가 자꾸만 부딪혀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남미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처음 브라질에 도착했을 때 너무 두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공항 밖을 나서는 것조차 무서웠고 숙소에 도착한 후에도 발을 떼기가 어려웠습니다. 숙소 직원의 조언으로 도미토리룸에서 만난 친구에게 말을 걸었고 함께 돌아다녔습니다. 그렇게 용기를 내자 여행이 시작되었지요. 6개월 동안 배낭을 짊어지고 여행하며 가도 가도 끝없이 이어진 허허벌판 길을 지나고 에메랄드빛 호수를 품은 산을 오르고 바람이 부는 대로 모양이 바뀌는 얼음 사막에도 갔습니다. 세상은 경이 그 자체였지요.
여행을 다녀와서는 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남미 여행에서 만났던 라마를 그렸습니다. 처음 보는 낯설고 신비로운 동물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지요. 시간이 지나 또 다른 곳을 여행하고 그림을 그리던 어느 날 문득 라마도 자신이 살던 고산지대를 떠나 열대식물이 가득한 새로운 곳에 가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국적인 풍경 속에 라마를 그려 넣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라마가 이전의 제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라마는 원주민들이 기르는 가축입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인에 의해 길러지지요. 주인이 있는 곳에 소속되어 있다는 점에서 직장 생활을 했던 저와 비슷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라마를 내세워 그림으로 제 이야기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라마 씨, 퇴사하고 뭐 하게?』는 관광객들의 모델로 일하는 직장 생물, 라마 씨가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난 후에 직장 동료 라마, 비쿠냐(여행지에서 만난 친구), 나에게 쓰는 편지 형식의 그림책입니다.
현실을 묵묵히 살아내는 이들을 위한 위로이자 여행을 통해 얻게 된 깨달음의 이야기이고, 앞으로도 마음과 자연에 귀 기울이며 잘 흘러가면 좋겠다는 스스로를 위한 바람이 담겨있어요. 실제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회사에 다녔고, 고민 끝에 다들 말리는 퇴사를 했고, 여러 여행길에서 저에게 삶의 의미를 되짚어준 비쿠냐들을 만났습니다. 그 속에서 저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지요. 비쿠냐는 라마의 친척으로 같은 낙타과지만 절대 길들여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축인 라마와 달리 야생에서 자유롭게 지내지요. 라마의 세계에서 온 저에게 자유 영혼인 비쿠냐들은 저도 모르게 내면화된 신념들을 깨뜨려주고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해주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제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기준이 무엇이었나 다시 묻게 되었어요.
책은 일여 년간 작업했습니다. 초고를 쓰고 고치고 그림을 그리고 다시 그리고. 쉽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제 이야기를 늘어놓은 저만을 위한 책이었는데 편집팀과 디자이너의 아이디어가 더해져 우리 모두를 위한 책이 되었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분들에게도 위로와 격려를 해줄 수 있게 되었지요.
그림을 그릴 때는 여행지에서 받았던 깊은 감동을 잘 전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여행 사진들을 보고 또 보며 그때의 기분을 되살려보기도 하고 여행 직후에 그렸던 그림들을 책 그림으로 변형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글을 다듬을 때는 최대한 부정적 단어를 순화하거나 없앴습니다. 책이 더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지요.
제 그림 속에서만 존재하던 라마 씨가 또 다른 세계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책을 통해 더 생생하게 살아서 그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라마 씨와 함께하는 여정이 여러분에게도 의미 있는 여행이 되길 바라고, 책을 접하는 짧은 순간이라도 순하고 다정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계남 작가는 디자이너로 일하다 퇴사 후 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아트숍 토도비엔을 운영하며 일러스트와 회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바다 건너 세상에 관심이 많으며 자연과 사람, 동물이 어울려 지내는 풍경 속에서 기쁨을 느낍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3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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