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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책으로 채우는 일상

경기서적 책방지기 추천책

by 행복한독서

커피 한잔

권영민 지음 / 256쪽 / 15,000원 / &(앤드)



내가 사는 수원화성이 자리한 행궁동은 다양한 맛과 개성을 가진 카페들이 즐비한 소위 ‘행리단길’이라고 불리는 동네다. 집에서 200미터 이내에 60여 개 가까이 되는 카페가 있을 정도니 동네에 얼마나 많은 카페가 있을지 알만하다. 이 많은 카페들 틈바구니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주문하다가 커피 실용서는 많은데 왜 커피와 문학이 어우러진 책은 없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시의적절하게 눈에 띈 『커피 한잔』은 덕수궁 정관헌을 마주하며 이해하는 문화 해설만큼이나 커피가 우리들에게 알려지게 된 유래를 흥미롭게 알려주며 시작한다. 저자의 커피 취향과 커피에 대한 에피소드도 적당히 수다스럽고 다채롭게 이야기하고 문학 속 커피와 공간으로서의 카페에 대한 이야기까지 무엇 하나 지루할 틈 없이 열심히 풀어낸다. 여느 카페의 메뉴판에 소개되어있는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여러 날에 걸쳐 호기심에 한 잔씩 모두 마셔보고 음미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특히나 내가 유년 시절을 보내었던 대학로에 자리한 학림다방에 대한 부분은 놀랍도록 반가운 이야기로 남는다. 꼭 한 번 가보겠다는 로망이 있던 그곳은 전혜린이 앉았다던 자리에 다른 손님이 커피를 마시고 있어 빈자리 아무 곳에나 앉아 소심하게 한 잔 마신 것이 전부였지만 수없이 드나들었을 서울대 문리대를 주변으로 한 당대의 인물들이 토해내는 시름과 고뇌, 창작의 공기들로 가득했을 그 공간이 주는 분위기가 커피맛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것은 확실하다. 격동의 역사가 담겨있거나 암흑의 시대를 보여주는 소설 자체였던 그 카페.


또한 책 속에서 한국의 전근대문학에서 엿볼 수 있는 커피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어가며 우리가 김기림, 김동인, 박태원의 소설을 통해 그 시절의 커피를 엿볼 수 있었듯 후에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이 탄생한다면 지금의 유행을 반영한 느낌의 문장들도 쓰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상상도 해보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


“그는 도저히 일의 진전이 없다는 듯 괴로워하며 마른세수를 하고는, 지금 당장 커피를 ‘수혈’해야겠다며 외투를 집어 들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문학과 커피의 조합 그리고 그 두 가지에 대한 흥미롭고 다양한 지식을 전하는 저자의 책은 적당히 가볍고 조금은 상큼한 커피 같은 맛이다. 복숭아와 요거트 그리고 백향과의 맛이 나는 콜롬비아 커피, 거기에 터비나도 설탕이 가득 올려진 따끈한 스콘이 곁들여지면 더욱 좋은, 일상의 행복까지도 느낄 수 있는 그런 책이다.


책과 카페는 내 취향에 맞는 것이 눈에 쉽게 들어오다가도 때에 따라 비슷한 것들이 너무 많아 질려버리기도 하고 적잖은 실망을 안겨주기도 하다가 오래 간직해두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는 점들이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커피는 문화, 그리 요란 떨 것도 없다”라는 저자의 말이 갑자기 묘하게 이해가 되면서도 아리송해지며 하루가 지나간다. 내 주머니를 털어가는 커피가 오늘도 어떤 모습으로든 일상을 채워내고 말았다.


이유리_경기서적 책방지기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2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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