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는 그림책 공간 - 예지책방
저는 25여 년간 그림책 연구가로 활동한 엄마 덕분에 우리나라에 단행본 그림책이 들어오기 시작했던 1990년대 중반부터 그림책을 보고 자랐어요. 저에게 그림책은 일상이자 인생이었습니다. 엄마가 운영하던 그림책연구소가 새로운 공간을 준비하면서 한편에 책방을 열게 되었어요. 책방 이름은 제가 ‘예전에도, 지금도’ 그림책을 보고 자랐듯 그림책은 어린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 연령이 함께 보고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라는 뜻을 담고 싶었습니다. 제 이름의 뜻도 품고 있어요. “예쁘고 지혜롭게 자라거라.” 엄마가 직접 지어주신 한글 이름인데 그림책과도 꼭 닮았지요. 그림책은 아름다운데 지혜까지 담고 있으니까요.
예지책방은 노미숙그림책연구소와 ㈔한국그림책문화협회가 공간을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림책 큐레이션도 세 곳이 함께하다 보니 한 권의 그림책에도 다양한 시선과 의견을 나눌 수 있어 좋아요.
책방 창가는 가장 자주 바뀌는 공간 중 하나입니다. 아트프린팅&원화 전시가 열리기도 하고, 싱그러운 화분들이나 귀여운 인형들이 올라가 방긋거리기도 합니다. 지금은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기원하는 뜻을 담아 노란색과 파란색 표지로 된 평화 그림책과 포스터를 전시해두었습니다. 아이와 어른이 손잡고 여자와 남자가 손잡고 있는 포스터 그림은 우크라이나에 모두가 손잡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이 빨리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전합니다.
책방 입구 책상에 놓인 책들은 작가님의 친필 사인본이에요. 책방을 처음 오시거나 사인본을 수집하는 분들께 추천드리는 코너입니다. 전면 서가에는 추천하는 짧은 글과 함께 신간 그림책과 5·18민주화운동 주제를 담은 그림책들이 상시 전시되어 있습니다. 책방 중심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는데 여행 다니며 수집한 각 나라의 앨리스 시리즈와 한국에서 출판된 앨리스 시리즈가 모여있어요. 더불어 페이퍼커팅북, 팝업북, 그림자놀이책 등 아트북들이 한 상자에 담겨있습니다.
책방을 열기 전에 혼자 떠난 유럽 배낭여행에서 느낀 책방이라는 공간과 ‘나’를 찾아 떠난 여행의 매력을 청소년들에게 전하고 싶어서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이며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다’를 주제로 이야길 나누고 있습니다.
여행 이야기를 담은 프로그램 중 남성과 청년들에게 반응이 뜨거웠던 건 ‘맥북데이’에요. 맥북데이는 맥주와 여행과 그림책의 만남으로 청년 맥주 전문가와 함께 유럽과 아시아로 나누어 맥주의 역사와 에피소드를 듣고 책방지기는 여행했던 이야기를 전하고 그림책연구소 대표는 작가의 그림책 낭독을 하며 맥주를 시음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코로나 상황이 좋아지면 꼭 다시 진행하고 싶은 프로그램이에요.
2021년 11월에 진행한 ‘평화감수성, 빼기와 더하기’는 지역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5·18기념재단과 함께 평화, 민주, 인권 그림책을 통해 우리 안에 자리한 편견과 혐오를 빼고 5·18민주화운동에 담긴 공동체 정신을 계승하며 희망과 연대를 더하는 시간이었어요. 책방에서는 그림책을 보여주고 지역에서 5·18민주화운동 활동을 활발히 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민주화운동 사적지에서 현장을 중계하며 설명하는 방식이었는데 서울, 경기, 충청, 경상, 제주까지 전국에서 참여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올해는 ‘평화감수성, 곱하기와 나누기’를 기획 중입니다. 중학생, 대학생의 목소리로 듣는 오월과 평화, 세계 민주시민 이야기와 국제개발협력을 통해 평화를 나누는 KOICA의 활동까지 준비했으니 많이 기대해주세요.
책방이 자리한 광주 광산구 신창동에는 이한열 열사의 모교인 광주진흥고가 있습니다. 신창동 마을네트워크와 함께 ‘우리동네 오월역사 - 이한열을 찾아라’ 기획 전시 및 행사에도 매년 참여 중입니다. 이한열 열사의 그림책이 학생들의 손에서 탄생되기를 기대합니다.
광주 동네책방 셋이 모여 춘하추동 계절마다 한 권씩 총 세 권의 책을 골라 만드는 블라인드 북 꾸러미 ‘ㅅㅇㄹ’ 계절 구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에세이, 소설, 그림책 한 권씩과 누구나 풀 수 있는 계절고사 시험지, 특별한 굿즈를 담았답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는 분들, 소중한 사람에게 책 선물을 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드려요.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밤 9시에 ‘파자마 입고 그림책 한 잔’을 진행 중입니다. 잠잘 준비를 마치고 소개하고 싶은 그림책 한 권과 마실 것 한 잔을 들고 줌에서 모이지요. 제주도민이 제주 방언으로 그림책을 낭독하다가 퀴즈를 내면 어떤 말일까? 맞추어 보기도 했습니다.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담은 그림책,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담은 그림책 등을 소개하며 전국에서 모여 웃음과 감동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세 번째 만남부터는 참여자 중 희망하시는 분이 진행을 맡고 있으며, 네 번째 만남 때는 일곱 살 어린이가 진행을 맡아 어른들을 울리기도 하고 웃게도 하는 행복한 밤이었습니다.
그림책은 ‘예전에도 지금도 만나는 일상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책방에 와서 무엇을 골라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책과 아름다운 그림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힘을 줄 수 있는 가치를 담은 책을 오래오래 권하고 싶어요. 가족끼리 책방에 와서 같은 책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 내가 어렸을 때 봤던 그림책을 내 아이에게 다시 들려주는 경험, 부모님과 친구에게는 하지 못할 마음속 이야기를 책방지기에게 털어놓고 그림책으로 위로받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싶습니다.
•위치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로 162번길 30, 4층
•연락처 : 062-369-7216
•인스타그램 : @yaejee_book
차예지_예지책방 책방지기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2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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